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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 Man

posted Feb 01,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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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ain Man의 주인공 찰리(톰 크루즈)는 젊고 패기 있지만, 사업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돈에 쪼들립니다. 그는 어려서 부자관계를 절연했던 아버지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는 요양소에 수용된 자폐증 형 레이먼드(더스틴 호프만)이 있다는 금시초문의 사실과, 그 형에게 대부분의 재산이 물려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죠. 화가 난 찰리는 요양소를 찾아가 형을 몰래 빼돌려 데려나오고, 그와 함께 아버지의 장례식장을 향해 긴 여행을 떠납니다.


    이 영화에서 자동차는 물려주고, 태워주고, 이어주는 중요한 매개수단입니다. 그야말로 ‘vehicle’인 셈이죠. 찰리의 직업은 중고차 판매상입니다. 어려서 그가 가출한 계기는 아버지의 차를 훔쳤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유품으로 골동품 컨버터블 자동차를 받습니다. 레이몬드가 비행기를 탈 수 없다고 우기는 바람에 그들은 자동차로 장거리 여행을 합니다. 이 영화는 자폐적 장애의 강박증에 관한 것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자동차적 강박증’의 소산이기도 한 모양입니다.


    이 영화에서 자폐성 장애를 가진 레이먼드 역을 맡았던 더스틴 호프먼이 보여준 것은 연기라기 보다는 묘기였습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 나왔을 때까지 레이먼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으로 말을 더듬는 그를 보면서, 저 인간도 참 어지간하다고 생각하며 혀를 내둘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만 같은 저런 지경으로까지는 가지 않으면서 하는 연기가 더 잘하는 연기가 아닐까 생각하지만 말이지요. 자폐성 장애의 특징인 정적인 부작위는 연기로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더스틴 호프먼은 그 대신 자기만의 규칙을 지키려는 고집이나 뜻 모를 중얼거림 같은 행동을 통해서 레인맨의 특징을 부각시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내부에 가둬둔 자아의 강박적 충동들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린 다들 조금씩은 레인맨들인 것이지요. 아무 것이나 아무렇게나 되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속 편한 사람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 또한 어디 정상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일본계 미국인 정신분석학자 진 시노다 볼린이 쓴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Goddesses in Every Woman)"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볼린은 여성들에 내재한 여성성의 원형을 설명하기 위해 '일곱 여신들'의 특징을 분류했습니다. 지나친 정형화(stereotyping)는 현실을 거칠게 왜곡하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지만, 요령 있게 분류된 정형(stereotype)들은 우리가 현실을 조금 더 명쾌하게 들여다보는 데 도움을 줍니다. 제가 보기에 이 책이 그렇습니다.


    이 책에서, 가정과 화로불의 수호여신 헤스티아는 방해받지 않고 홀로 있는 데서 편안함을 찾으며 서두르지 않고 자신이 하는 열중하는 일의 과정을 즐기는 유형입니다. 제 아내는 영락없는 ‘헤스티아’입니다. 그녀는 바깥으로 나다닌다거나 무리를 짓는 활동에서 즐거움을 누리기보다 잘 정리된 집안에서 방해받지 않는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때 행복합니다. “아무 것도 하지 말지는 말자”는 신조로 살고 있는 저와는 참 다르지만, 지금까지는 제가 우리 가정의 돛으로, 그녀가 닻으로 잘 분업을 해 오고 있습니다. 더러, 돛과 닻이 동시에 부풀려지고 내려질 때는 배가 좀 삐그덕 거리는 일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만.


    저의 헤스티아는 참으로 부지런히 집안을 정리합니다. 그녀의 불만은 저와 아이들이 그녀의 신성한 평화와 질서를 자주 어지럽히는 존재라는 데서 나옵니다. 특히 빨래감을 ‘벗어놓은 자리가 제자리’인 사내 녀석들의 습관은 여간한 꾸지람에도 잘 고쳐지지 않고 있습니다. 한편 저의 짜증은, 아내가 저의 물건을 치워두고는 어디다 두었는지 기억하지 못할 때 커집니다. 저는 나름대로 제가 어딘가에 둔 물건의 위치를 기억 못하는 일은 없습니다. 조만간 다시 쓸 물건들은 눈에 잘 띄는 데에 두는 편이거든요.


    제가 지저분하게 정리해둔 자리를 그녀가 한번 휩쓸고 지나가면, 그곳은 깨끗하게 어질러집니다. 제가 뭔가를 찾으면 “그러게 제자리에 좀 두지 그랬냐”는 핀잔을 듣게 되는데, 이론적으로 그녀가 둔 곳이 ‘제자리’라면 그녀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건 말이 안된다고, 제 속의 레인맨은 외치는 겁니다. 화구들이 들어있는 서랍에 악기 부속품을 둔다거나, 일대다 분기 잭, 스테레오잭 크기변환용 어댑터, RCA를 스테레오로 전환하는 소켓처럼 특이한 단자들을 보통의 여분 전선들과 뒤섞는데서야 어디 말이 되겠습니까? 청소하는 터미네이터처럼 아내가 그런 일대혼란상황을 만들어 놓으면, 저는 Qantas도 아닌 비행기에 억지로 태워지는 레이먼드처럼 서성대며 물건들의 행방을 뒤쫓곤 하는 것입니다.


    아내에 따르면, 저는 걱정 안해도 좋을 사소한 일을 지나치게 걱정하는 경향이 있으며, 잊어도 좋을 것은 오래 기억하고, 정작 (아내의 생일처럼) 중요한 것은 곧잘 잊는 남편입니다. 그러고 보면, 제 속의 레인맨을 비춰줄 거울이 집에 있다는 점을 저는 다행으로 여기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실은, 자신이 의무감과 강박증을 혼동하고 있지 않은지 가끔씩 면벽하고 짚어보는 것은 누구에게나 건강한 일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훌륭한 조직인이 되기 위해서는 서로 상충되는 두 가지 자질을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첫째, 저는 제가 맡은 일이, 적어도 저에게는,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고 값지며, 다른 누구보다도 제가 많은 기여를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마땅하다고 여겨야 합니다. 이것은 자기 일을 들여다 보는 볼록렌즈 확대경 같은 자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저는 제가 하고 있는 일이 남들에게는, 또는 조직 전체로 보았을 때는 우선순위가 낮거나 상대적으로 작은 의미를 가지는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비유하자면 오목렌즈 축소경같은 관점이지요.


 

    좀 이상스런 비유지만,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마치 근시와 원시를 동시에 가진 사람처럼 볼록렌즈와 오목렌즈를 적당히 조합해서 함께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자기 역할에 대한 과대평가의 볼록렌즈만 지닌다면 윗사람에게는 어느 정도까지 인정을 받을 수 있지만 부하와 동료들을 죽을 지경으로 만들고, 결국은 가엾게도 웃음거리가 됩니다. 겸손한 것은 좋지만, 또 그렇다고 자기비하의 오목렌즈만 가지게 되면, 청승맞고 애처로운 사람이 될 뿐만 아니라, 조직에서 냉소주의라는 해로운 돌림병의 매개체가 됩니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갖추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는 커녕, 머리 속에 다중인격이나 분열증을 기르는 것만큼이나 부자연스럽기 때문에 조직인들에게는 고난도의 자기훈련이 필요합니다. 자신에게 대단히 엄격하다 하더라도, 그 균형을 항상 잘 지킬 수 있을 만큼 내공이 고강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진정한 자신감과 진정한 겸손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의 어려움은, 실은 현실과 이상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처럼 주관적인 것이기도 해서, 얼마만큼의 배합이 적당하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마다 평가의 기준이 다를 수 있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되도록 그 둘 사이의 균형을 찾으려고 애쓰는 사람과 무신경하게 한쪽으로 치우치는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는 크고 또 명백합니다. 불(火)을 잘 다루는 일이 아무리 까다롭고 어렵더라도, 불을 적당히 써서 잘 만들어진 요리는 먹어보면 대번에 알 수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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