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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esome Dove

posted Jun 02,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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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하는 배우를 한 명만 꼽으라면 저는 주저 없이 로버트 듀발을 꼽습니다. 그런데 서운하게도, 그게 누구냐고 묻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더군요. 심지어 The Godfather에서 콜레오네가의 변호사 톰 헤이근 역할을 맡았던 사람이라고 설명을 해도 기억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MASH, The Godfather, Apocalypse Now, Colors, The Handmaid's Tale, Days of Thunder, Rambling Rose, Falling Down, The Scarlet Letter, Phenomenon, Deep Impact, Gone in 60 Seconds, The 6th Day, John Q 등등 그가 출연한 수많은 히트작들에도 불구하고, 그가 명실공히 주연을 맡았던 영화는 THX 1138 등 두어 편 뿐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만.


    로버트 듀발은 성격파 배우입니다. 어떤 역할이건, 그는 늘 그 배역을 다른 누군가가 맡아서는 도저히 그렇게 소화했을 것 같지 않은 존재감으로 가득 채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연기로 영화를 압도하는 법이 없습니다. 눈에 띄려고 빨간 옷을 입고 결혼식장에 나타나는 신부의 친구 같은, 그런 연기를 하는 법이 없다고나 할까요. (쓰다가 생각해 보니, 이런 설명은 제가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관한 암시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로버트 듀발이 모처럼 주인공으로 화면을 유감없이 누비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 Lonesome Dove입니다. 이 영화는 극장용 영화가 아닌 6시간 정도 분량의 TV 미니시리즈(1989)로 제작되었습니다. 국내에 <머나먼 대서부>라는 제목으로 방영되기도 했었는데, 연속극 시간에 맞춰 TV를 시청할 만큼 부지런하지 못한 저는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고맙게도 AFKN이 시청자의 요청에 부응해서 89년 어느 날 자정부터 연속상영을 해준 덕분에 날밤을 새면서 단번에 볼 수 있었습니다. 식구들을 깨울까봐 중간 공익광고 시간에 까치발로 뛰어 다니며 라면을 두 그릇 끓여 먹으면서 봤지요.


    TV 드라마는 극장영화보다 호흡이 길고 배우들의 대사에 많이 의존하기 때문에 배우들이 자기 밑천을 다 드러내지 않으면서 연기의 긴장감을 지속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가끔 어떤 배우들은 정말 뭔가에 쓰인 것처럼 평소에 보여주지 않던 자신의 저력을 끄집어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용의 눈물>에서의 유동근, <청춘의 덫>의 심은하, <커피 프린스 1호점>의 윤은혜 같은 경우들이 떠오르네요. 그런 멋진 연기가 매번 나오지 않는 것은, 배우 혼자만의 기량만이 아니라 배역과 대본과 연출과 다른 연기자들과의 앙상블이 전부 좋은 화학작용을 일으킬 때만 가능한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유동근씨는 용의 눈물에 태조 이방원으로 출연하던 당시에, 하루치 촬영을 마칠 때마다 스탭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더군요. 이런 현상은 캐스트와 스탭들의 노력 전체가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집단적 고양상태가 될 때만 가능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로버트 듀발은 어떤 사소한 배역을 맡더라도 호연을 보여주는 훌륭한 배우입니다. 그런 그에게, Lonesome Dove는 모처럼 제대로 깔아준 멍석이었습니다. 여기서 그는 자신이 가진 최상의 기량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다른 배역들을 좀 더 생동감 있게 만들어주는 촉매같은 역할도 하죠. 그렇긴 합니다만, 이 영화를 이런 식으로 소개하는 것은 별로 공평한 일이 아닙니다. 주연 배우를 제가 얼마나 개인적으로 좋아하느냐, 또는 작품의 길이가 얼마만큼 기냐 하는 문제와는 상관없이 완성도가 높은 드라마이기 때문입니다.


    지나간 드라마의 DVD도 쉽사리 구입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 방송사의 호의에 기대지 않고서도 Lonesome Dove를 구해 볼 수 있습니다. 기술적으로 말하자면, 예전에 제가 그랬던 것처럼 여섯 시간동안 꼼짝없이 TV 앞에 붙들려 있지는 않아도 된다는 뜻이겠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지는 한번 시험해 보시죠. 일단 드라마가 시작되면 중간에 한 두번 라면을 끓이러 자리를 뜨는 정도보다 길게 쉬기는 아마 수월치 않을 겁니다.


    거스 맥크리(로버트 듀발)와 우드로 콜(토미 리 존스)은 텍사스의 퇴역군인(retired ranger)들입니다. 이들은 군대시절 동료로부터 몬타나라는 신개척지에 새로운 기회가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듣습니다. 우드로는 거스를 설득해서, 그 동안 조용히 지내던 텍사스의 소읍 Lonesome Dove를 떠나 서부로의 대장정에 나섭니다. 거스와 우드로 두 사람의 성격은 서로 정반대랄 수 있을 만큼 서로 다릅니다. 거스는 낙천적이고, 잘 웃으며, 두주불사에다, 재미있는 게임이라면 마다하지 않는 성품인 반면, 우드로는 늘 심각하고, 농담이란 걸 당최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서로에 대한 존경과 신뢰에는 제삼자가 비집고 들 틈이 없습니다.


    우드로와 거스는 4천킬로미터나 떨어진 몬타나로 소떼를 몰고 가기 위해 군대시절 동료를 포함하여 믿을만한 동료들을 불러 모읍니다. 이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대장정에 참여하죠. 몬타나를 향해 초원과 사막과 태풍과 강물을 가로지르며 겪는 간난신고는 우드로와 거스, 두 명의 잊혀진 영웅들에게는 이제 여생에 마지막으로 남은 한판의 모험이자, 이제 그들이 스스로의 삶을 정리하는 방법입니다. 잊혀진 영웅이라니까 생각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두 늙은 카우보이를 업신여기며 모욕하는 어떤 술집에서 거스는 급한 성미를 못참고 바텐더들을 혼내주고 나서, 카운터 너머에 떡하니 걸려 있는 자신들의 빛바랜 사진을 가리킵니다. 그는 애수 어린, 그러나 장난꾸러기 같은 눈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하죠. “저거 누군지 알어? 약간의 존경심을 표해줬으면 해. 나는 오거스터스 매크리 대위고, 이 사람은 우드로 콜 대위지. 저 사진에 찍힐 무렵엔 사람들이 우리를 상원의원으로 만들려고 야단들이었거든.”


    Lonesome Dove가 선사하는 긴 여운을 한 두 마디로 정리하려는 시도는 부질없습니다. 다만, 어디선가 외계인이 나타나서 영어의 “frontiermanship”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관람을 권해줄 영화가 아니겠나 생각합니다. 돌이켜 생각건대, 무릇 프론티어 정신이란, 이 영화가 구현하고 있는, 소략하게 정리하기 어려운 정서의 몸뚱아리 전체에 가깝습니다. 어쩔 수 없이 ‘개척자 정신’이라고 번역되곤 합니다만, 프론티어 정신은 산악인들이 산에 오르는 이유 비슷하기도 하고, 연어가 고향으로 회귀하는 것과 정반대로 낯선 곳에 뼈를 묻는 역(逆)노스탈지아 같은 정서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未知의 그리움”이라고나 할까요.


    퓰리처 상을 수상한 래리 맥머트리의 소설이 원작인데, 재미있는 것은 그가 이 소설을 당초 영화 시나리오로 쓰기 시작했었다는 사실입니다. 70년대초 맥머트리는 이 시나리오를 쓰면서 우드로 콜에 존 웨인, 거스 매크리에 제임스 스튜어트를 기용하기를 희망했었습니다. 그의 시나리오가 소설로 성공하고 다시 한 바퀴 돌아서 드라마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강산이 두 번 더 바뀌어야 했던 거죠. Lonesome Dove가 에미상을 휩쓸고 나서 Return to Lonesome Dove라는 속편이 만들어졌는데, 여기서는 제임스 가너와 존 보이트가 거스와 우드로를 맡았습니다.


    Lonesome Dove를 서부극으로 분류해도 좋을까요? 서부영화 장르의 단조로움에 대한 반성은 요상스런 수정주의적 서부극들을 낳았습니다만, Lonesome Dove는 현실의 어두운 면에 두 발을 튼튼히 딛고 있으면서도 옛날 서부극의 따뜻한 분위기를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오히려, 서부영화라는 장르 전체의 품위와 격조는 Lonesome Dove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Unforgiven 단 두 편만으로도 몇 단계 승격되었다고 저는 믿습니다. 품위 없다는 사실 자체가 서부극의 격조라고 아마도 주장할, 장르 팬들에게는 야유를 들을 법한 말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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