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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dnight Express

posted May 20,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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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ssion Impossible과 The Rock이 액션 영화의 속도와 규모를 다시 한 단계 덜커덕 올려놓던 96년 여름, 알란 파커의 영화 Midnight Express가 제작된 지 무려 18년만에 서울에서 개봉되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뛰어난 영상 작가의 작품들 중 그때까지 국내 개봉관에 걸렸던 것은 Mississippi Burning과 Angel Heart 딱 두 편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98년에 The Road to Wellville이 개봉되었고, The Wall은 17년이 흘러, 핑크 플로이드에 열광하던 까까머리 학생들이 중년에 접어든 99년에야 개봉되었으니까요.


    여자친구와 터키에 여행 왔다가 마약을 몸에 지니고 밀반출하려던 미국청년 빌리 헤이즈는 공항에서 검거됩니다. 그는 스무살 난 미국 청년이 터키라는 곳을 찾을 때 가질 법한 가벼운 일탈의 심정으로, 하쉬시 몇 봉지를 몸에 지니고 반출하려던 것처럼 보입니다. 스무 살 때 우리가 가졌던 그런 어리석음으로 말이죠. 흔히 마리화나 또는 하쉬시라고 불려지는 대마초(cannabis)는 양귀비나 코카나무에서 추출되는 마약류라든지 암페타민 계통의 합성물질처럼 강력한 향정신성 물질은 아니지만, 환각작용을 일으키고 유해하기 때문에 네덜란드를 제외한 모든 나라들이 법으로 엄격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빌리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분명한데, 이 영화에서 그는 적어도 전문 마약상인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Midnight Express는 억압과 자유의 주관적인 느낌을 주인공의 시점에서 전달하기 위해 마약사범임에 틀림없는 빌리를 처음부터 편들어주기로 마음먹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실재 인물인 빌리 헤이즈 자신이 쓴 책을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죠. 공포영화들은 종종 관객을 쫓기는 피해자의 시점에 놓음으로써 긴박한 공포감을 전달하는데, 관객이 범죄인과 동일시하도록 만들어진 영화는 많지 않습니다. Midnight Express는, 관객이 범죄자의 시점에서 가슴 졸이는 경험을 해볼 수 있는 몇 안되는 영화들 중 하나이고, 그런 일을 이보다 더 잘해내는 다른 영화를 저는 아직 본 적이 없습니다. 특히 빌리가 기내에서 체포될 때까지의 시퀀스는, 나쁜 짓을 하고 두근두근 가슴 졸여본 경험이 있는 모든 사람들의 기억을 자극해서 아주 효과적으로 관객을 공범자로 만들어 줍니다. 빌리는 구타와 남색이 난무하고 비위생적이기 그지없는 감옥에서 자신이 선고받은 4년을 버팁니다. 그러나 형량을 거의 다 채워가던 무렵, 터키정부가 본보기로 종신형을 선고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은 그는 이른바 ‘midnight express’, 즉 탈옥을 감행합니다.


    영화가 상징조직이나 선전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으면, 저는 Midnight Express를 떠올립니다. 이 영화는 정치적 선전물과는 거리가 먼 수작이지만, 잘 만든 영화로 사람들을 속일 수 있는 가능성을 분명히 보여주기도 하니까요. 이 영화는 터키 공권력의 부당성과 터키 감옥의 비참함을 묘사한 까닭에 외교적인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 미국-터키간 범죄인 인도조약이 체결되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특징짓는 것은 정치성이 아닙니다. 만일 진정한 의도가 터키에 대한 정치적 비판에 있었다면, 보다 냉정한 객관성을 가지고 사건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더 무서운 심판자의 눈을 획득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코스타 가브라스가 Z에서 보여주었듯이 말이죠.


    하지만 알란 파커는 수술칼을 든 집도의처럼 주인공의 내면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시선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Midnight Express는 그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부조리한 거대조직과 그에 대항하여 자유를 갈구하는 개인의 대립구조를, 그 구조의 안쪽에서 바라보는 영화가 됩니다. 우리를 끊임없이 가두고 감시하는 그 큰 눈... 미쉘 푸코가 영화를 만들었다면 Midnight Express 비슷한 영화가 나오지 않았을까요? 자유로운 바깥세상과의 의사소통수단을 박탈당한 주인공이 억압적인 권력에 짓눌려 신음하는 구조는 The Wall이나 Birdy 같은 그의 영화에서도 낯익은 모습입니다. 백인들로부터 소외된 흑인들, 그 틈 속에서 또다시 소외되는 두 백인형사를 다룬 Mississippi Burning도 이러한 인식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정형화에 대항하는 個性主義에 대한 그의 예찬이라고 할 수 있을 Fame과, 영혼의 지도를 현미경 같은 시선으로 해부하던 Angel Heart도, 실은 같은 테마의 변주곡이라고, 저는 느낍니다만.


    예술사학자 아놀드 하우저는 영화를 가리켜 “서구 근대문명이 대중을 위해 예술을 생산하려 한 최초의 기도”라고 썼습니다. 예술을 대량생산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대중이라는 불특정 다수가 소비의 주체라는 점에서, 영화는 본질적으로 선전(propaganda)이기도 합니다. 세계영화사의 첫 페이지를, 인종차별을 정당화하는 「국가의 탄생」이나 혁명을 선동하는 「전함 포템킨」같은 작품들이 장식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기가 쉽습니다. 사실, 동양인으로서 Midnight Express를 감상하면서 감독의 시선을 따라가려면 상당한 정신집중이 필합니다. 인종차별적 태도가 가득하기 때문이죠. 이 영화가 정치적 공정성을 훌러덩 벗어버린 것은, 인간소외의 문제를 부각시키기 위해 권력을 되도록 사악하게 묘사한 결과인지도 모릅니다. 설사 그랬더라도, 알란 파커 감독은 이 영화의 정치적 부채로부터 자유스러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감독이 말하고 싶어하는 바를 표현하기에 충분한 수준 이상의 분량으로 영화 속에 잔류하는 정치성은, 각본을 쓴 올리버 스톤의 몫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Midnight Express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올리버 스톤은 정치적 피해의식이 충만한 음모론의 전도사 같은 데가 있습니다. 저는 그를 보면 어쩐지 뉴스 도중에 뛰어들어 귀 속에 도청기가 있다고 소리치던 사람이 떠오르곤 합니다. 그는 영화 Dave에서 카메오 출연도 했습니다. 케빈 클라인이 1인 2역으로 대통령 Dave와 그의 대역 놀음을 하는 영화였죠. 이 영화에서 그는 올리버 스톤 자신의 역할로 뉴스 인터뷰에 출연해 “대통령이 가짜와 뒤바뀌었으며, 모종의 정치적 음모가 있을 것”이라며 다양한 사진들을 증거로 제시합니다. 미국사람들이 스톤을 보는 시각도 저랑 비슷한 것 같아서 재미있었습니다. 올리버 스톤이 감독한 영화들은 그가 편집의 귀재임을 보여줍니다. Platoon, Born on the 4th of July, JFK 등은 모두 아카데미 편집상을 수상했죠. 물론 편집은 감독이 직접 하지 않는 경우도 많지만, 스톤의 영화들을 현란한 편집과 따로 떼어서 생각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정치성으로 가득 충전된 주제의식이 실력 좋은 편집과 결합된 영화들을 보러 갈 때, 저는 일단 좀 방어적인 마음을 먹습니다. 제 머리 속에서 남이 저 대신 생각하도록 방치하긴 싫거든요.


    Midnight Express에 묘사된 터키인들과 터키 감옥은 피터 헤이즈의 저서 속에 언급된 것보다 훨씬 흉측한 것이었습니다. 빌리 헤이즈 본인조차 이 영화가 터키인들을 괴물로 묘사했다고 비난했고, 올리버 스톤은 터키를 방문하여 이 영화 때문에 상처를 받았을 터키인들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했습니다. 제작자인 데이빗 퍼트넘은 원작소설이 부정직한 책이었다고 책임을 떠넘겼죠. 볼상 사납게도, 이 영화는 갑자기 부모들로부터 버림받은 아이처럼 되어 버렸던 거죠.


    이런 사실은 영화 Midnight Express에 대한 전체적 평가를 내리기에 좀 머뭇거리게 만듭니다. 훌륭한 서사구조와 탁월한 화면으로 이루어진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과연 그것이 이 영화가 지고 있는 정치적 불공정성의 부채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것인가 하고 말이죠. 조악한 오락영화라면 고민할 필요조차 없겠지만, 이 영화는 잘 만들어졌기 때문에 정치적 균형도 그만큼 문제가 되는 셈이죠. 어쨌든, 아카데미가 이 영화에 작품상이나 감독상이 아니라 하필이면 각본상을 안겨주었다는 사실이 헐리우드의 삐딱한 정치성향을 뜻하지 않게 드러내는 것만 같아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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