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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 Wars

posted Jan 21,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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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님을 조르고 조른 끝에, 드디어 우리 식구들은 녹번동 집 앞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시내로 나왔습니다. 발치로 극장간판을 내려다 보며 국제극장 상영작 목록을 줄줄이 꿰고 계실 이순신 장군 앞을 지나, 종로3가 피카디리 극장으로 향하던 1978년 여름방학의 어느 일요일 오전이었습니다. 저와 제 동생은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였죠. 제작된지 한 해가 지나서야 국내에서 개봉되었지만, 극장 앞에서 올려다 본 Star Wars의 간판은 어찌 그리 멋지던지요.


    Star War는 그냥 여느 영화가 아니라, 20세기 영화사를 그 앞과 뒤로 나누는 하나의 분기점이었습니다. 조지 루카스의 Star Wars는 스필버그의 같은 해 영화 Close Encounter with the Third Kind와 함께 SF라는 장르의 영화적 지위를 한 단계 승격시켰고, 해리슨 포드라는 배우를 일약 스타덤에 올렸으며, 천문학적인 흥행수입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의 더 큰 중요성은 이런 기록들이 아니라 기술혁신입니다.


    조지 루카스는 애당초부터 SF에 관심이 많았던 기술혁신가였습니다. THX1138은 그가 학생시절 제작했던 단편영화를 1971년 로버트 듀발을 주역으로 기용하여 극장영화로 다시 만든 것이었습니다. THX1138 영화 자체도 훌륭하지만 그가 그때 발명한 THX 음향시스템은 지금도 전세계 극장 음향설비의 표준기술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Star Wars를 제작하면서 루카스가 설립한 Industrial Light & Magic사는 특수효과에 관한 한 부동의 지배적 지위를 구축했고,  Indiana Jones, Jurassic Park, Harry Potter 시리즈 등 기념비적인 특수효과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1897년 뤼미에르 형제가 기차의 도착을 무성영화로 찍어서 처음 상영했을 때 관객들은 다가오는 기차를 보고 혼비백산 했었답니다. 영화는 태어날 때부터 마술적 눈속임이라는 역할을 맡아 왔던 것이죠. Star Wars는 놀랍고 즐거운 특수효과로 잘 포장된 웨스턴이었습니다. SF의 하위장르들 중에서, Horse Opera라고 폄하하여 부르던 서부활극의 무대를 우주로 옮겨놓은 것들을 Space Opera라고 부릅니다. TV나 라디오의 연속극들을 Soap Opera라고 부르는 데서 연유한 명칭이죠. (옛날 미국 라디오 드라마들의 광고주들 중에는 비누회사가 유난히 많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답니다.)


    Space Opera라고 불려지는 SF 소설들은 주로 1920년대에 미국에서 전성시대를 구가했습니다. 과학에 대한 지식이 우주에 대한 호기심을 따라잡지 못하던 시절, 과학적 현실성이 부족하고, 오락 위주의 편의주의적인 플롯이 19세기적인 공간개념과 제국주의적 세계관에 기반을 두고 펼쳐지던 소설들이 마구 출간된 거죠. 이런 소설들은 싸구려 잡지를 일컫는 이른바 Pulp류에 실렸던 펄프 픽션(pulp fiction)의 한 부류였습니다. 보수적인 SF 팬일수록 작품 속의 과학적 합리성, 또는 현실적 정합성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과학소설과 환상소설의 경계가 흐리기는 하지만, 우주활극이 문학 속에 설 자리는 애당초 넓지 않았죠. Space Opera라는 이름에서 풍기는 경멸의 어감으로부터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Star Wars는 최신 기술혁신과 구식 우주활극의 추억을 결합해 은막 위에 이식했습니다. 이런 잡종교배의 결과, 이 영화 속에는 놀랄 만큼 세련된 미래주의적 이미지들과, 진공인 우주공간에서 소리를 내며 날아가고 폭파하는 엉터리 같은 장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어울려 있습니다. 거기에는 70년대 말의 여려 장르팬들이 열광할 다양한 하위문화들이 부대찌개처럼 섞여있기도 하지요. 외디푸스 설화의 가장 상투적인 외형과, 동양 무협소설에서 전형적으로 반복되어 온 복수와 성장의 줄거리를, Star Wars는 망설임 없이 끌어안았습니다. 그래서 Star Wars는, 지겨우리만치 상투적인 것들이 새롭게 탄생하는 과정에서 희열을 느끼는 포스트모던 세대의 구미에 잘 맞았습니다. Star Wars는 더없이 상투적이었고, 놀랍게 새로웠으니까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조지 루카스는 작가(auteur)적 재목은 되지 못했습니다. 루카스에게 작가로서의 재능이 없다는 사실은 일찌기 Star Wars의 속편인 Empire Strikes Back과 Return of the Jedi가 나왔을 때 벌써 증명된 사실입니다. Star Wars가 만들어진지 22년이 지난 다음에도 1999년부터 2005년에 걸쳐 The Phantom Menace, Attack of the Clones, The Revenge of the Sith같은 전편(prequel)들을 만들어낸 걸 보면, 환갑을 넘긴 그는 과거의 영광에 집착하고 거기에 기대서 작가(auteur)로서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의 영원한 동료이자 경쟁자인 스티븐 스필버그도 피터팬스러운 집착을 참 어지간히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기는 합니다. 그래서 스필버그의 최근 영화들은 거의 항상 하마터면 좋았을 ‘뻔’하죠. 스필버그 역시 2007년 6월부터 Indiana Jones 4편을 찍고 있다니, 아마도 그들 둘 다, 남이 넘볼 수 없을 지경으로 이룩한 스스로의 이른 성취들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어려운 것 모양입니다.


    비평가들로부터 높은 평점을 받지만 손님은 들지 않는 좋은 영화들을 일컬어 소위 ‘저주받은 걸작’이라고들 부릅니다. 하지만, 제작자나 감독의 입장에서는 너무 일찍 상업적으로 대박을 터뜨려버린 영화도 저주받은 걸작에 해당할 터입니다. 마흔이 되기도 전에 Gone with the Wind를 제작한 데이비드 셀즈닉은 이 영화의 초연장에서, ‘자신이 죽으면 부고(obituary)의 첫줄이 Gone with the Wind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었습니다. 그의 부고는 실제로도 그러했었죠. 셀즈닉이 Gone with the Wind를 제작하기 전에도, 또 이후로도 대작을 만들기 위해 많은 애를 썼고, King Kong, Rebecca, A Farewell to Arms 등과 같은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틀림없이 그가 죽은 후에 ‘Star Wars의 감독’으로 기억될 조지 루카스는, 70년대 3부작의 전편에 해당하는 후속작은 아마도 만들지 않았던 편이 나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Star Wars의 팬인 저의 개인적인 입장에서야 그 후속편들이 저예산 영화로 나온대도 쌍수를 들어 반겼을 테고, 훨씬 재미가 덜했더라도 희희낙낙 좋아라 했을 것입니다. 요다와 다쓰 베이더의 결투장면은 거의 30년 가까이 팬들이 품어왔던 궁금증을 풀어준, 센스 있는 팬 서비스였습니다. 잘생긴 제다이 아나킨의 머리에 다쓰 베이더의 가면이 천천히 씌워지는 장면을 보면서 세월을 거꾸로 건너뛰어 78년 여름을 회상하지 않은 Star Wars 팬은 없었을 겁니다. 저도 70미리 스크린 속에서 그의 독특한 숨소리를 처음 듣던 열두살 무렵으로의 생생한 시간여행을 찰라지간에 경험하고 심호흡을 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후속 3부작은 만들어지지 않았던 편이 작가(auteru)적 재능은 키우지 못한 채 나이 들어가는 조지 루카스 감독의 위신을 지키는 데에는 더 나았을 겁니다. Episode I을 먼저 접한 요즘 후배들은 그만하면 오락물로서 뭐 어떠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70년대의 젊은이들의 눈에 비쳤던 Star Wars는 2000년대의 Episode I같은, 그런 정도의 영화가 아니었거든요.


    너무 이른 거대한 성취는 커녕 세상에 이렇다 할 흔적조차 못남기며 살고 있는 저는, 최소한 내일 할 일이 어제 한 일보다는 많을 거라는 기대는 가지고 지낼 수 있다는 점에서 행운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어제의 자기 자신이 최대의 경쟁자인 사람 쪽이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걸까요? 어느 쪽이든, 자기가 가진 자산을 최대한 활용하고 가늠하며 분투하는 것은 중요하겠습니다. 이른 성공을 쟁취하는 경우, 자신이 이미 이룩한 성취에 지나치게 기대지 않고 새로운 목적지를 탐색하고 도전하는 것도 중요한 덕목이라는 점을, 2000년대의 Star Wars 시리즈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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