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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리본(Das weisse Band) (2009)

posted Jan 20,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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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사람은 잔인할 수 있습니다. 순수하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미카엘 하네케의 2009년작 <하얀 리본(Das weisse Band)>은 순수한 악(pure evil)과 고요한 폭력에 관한 영화입니다. 1913년, 지극히 평화롭고 고요해 보이는 독일의 한 작은 마을에서 의사가 누군가 설치해 놓은 줄에 걸려 낙마하는 사고가 일어납니다. 이를 시작으로 방화, 사고사, 실종사건에 심지어 한 아이의 눈이 도려내지는 끔찍한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지만 범인은 잡히지 않습니다.

마을의 목사님은 자기 아이들에게 순결한 영혼의 상징인 ‘하얀 리본’으로 복종과 순결을 강요하고, 존경 받는 의사는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며 자신의 딸을 범합니다. 동네 아이들은 음산한 유대감을 형성합니다. 이 마을에 부임한 교사는 마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아이들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1차대전이 벌어집니다.

이 영화는 2차대전 당시 독일인들이 도대체 어떻게 그토록 잔혹한 일들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라는 고민으로부터 탄생한 것처럼 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그렇게 읽고 있습니다. 그 해답으로서 이 영화가 제시하고 있는 것들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것이 <하얀 리본>이 가진 영화적 힘입니다. 본성을 거스를 만큼 복종과 규율을 강조하던 당시의 기독교 문화, 어른들의 이념에 순종하는 것을 미덕으로 강요받으면서 자란 세대의 비뚤어진 자아. 이웃 나라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끼친 군국주의 시절의 일본에서도 이렇게 순종이 미덕인 문화가 존재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하네케 감독의 문제의식은 어느 정도 보편적인 울림을 가집니다.

특히, 요구받는 기준이 너무 높기 때문에 현실에 적용가능한 윤리기준을 별도로 은밀히 만들어 공유하는 아이들의 이미지는 강렬합니다. 아이들이 순수하다는 것은 순수하게 무시무시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얀 리본>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파리 대왕>에 나오는 아이들보다도 무섭습니다. 2차대전과 반유대주의의 실현은 우리가 이미 경험한 사건이기 때문에 <파리 대왕>보다 더 실감이 나기도 하지요.

그러나 이것은 반성일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변명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하얀 리본을 매고 유난스럽게 유년시절을 보내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잔혹한 짓을 벌일 수 있습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한 책임을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어떤 일의 원인을 뭐라고 정의하는 일은 언제나 흥미롭지만, 또 언제나 위험한 일이기도 합니다.

<하얀 리본>은 영화에서 재미를 추구하는 사람이 찾아볼 영화는 아닙니다. 작년에 아이들에게 이 영화를 관람시킨 대가로, 우리 아이들은 지금까지도 “아빠랑은 영화를 안보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뭔가 생각할 거리를 위해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이 영화가 2009년 최고의 수작이라고 주저 없이 말하더군요. 저는 어느 쪽이냐면, 잘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고, 영화 보는 동안 시계도 여러 번 봤습니다.  저는 이 영화가 말하려는 주된 메시지로부터는 아무래도 조금 벗어난 것 같은, 엉뚱한 상념을 떠올렸습니다.(딴 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보면 이렇게 됩니다) 제게 떠오른 생각은 이런 거였습니다.

"상대방이 유난히 순수한 사람이라고 느껴진다면, 조심하는 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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