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elcome Page
    • drawing
    • photos
    • cinema
    • essay
    • poems
    • music
    • toons
    • books
    • mail

Love Story

posted Jul 06, 200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사랑은 미안함이다

꽃이 진다. 화사함을 뽐내던 꽃이 떨어지는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러나 한 철 피었다가 져버리는 존재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꽃으로부터 별다른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벛꽃이 피는 곳에 사람들이 그리도 몰려가는 이유는 벛꽃이 유난히 짧게 피었다가 스러지기 때문이 아니던가.

사랑도 그러하다. 이루어진 사랑을 찬미하는 노래나 시를 보신 일이 있는가? 짧고 뜨겁게 타오르는 사랑은 사람들의 가슴을 저리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가들은 자기 주인공들을 폐병으로, 교통사고로, 또는 자살로 내몰곤 한다. 연인이 약물을 이용해서 가사상태에 빠진 줄 미처 모르고 음독자살의 길을 택해버리는 무대 위 로미오의 모습을 보면서 관객들은 이루지 못한 사진의 옛사랑을 추억하며 신음한다. 뜨거운 사랑은 짧다. 짧아서 강렬하고, 아름다우며, 동시에 슬프다. 폴 사이먼의 명곡 <April come she will>은 이처럼 짧은 청춘의 사랑에 바치는 헌시다.

April come she will (4월에 그녀가 오리)
When streams are ripe and swelled with rain (봄비가 냇물울 가득 불릴 때)
May, she will stay, (5월에 그녀는 머물리)
Resting in my arms again. (또다시 내 품 안에서)
June, she'll change her tune, (6월에 그녀의 기분은 변하리)
In restless walks she'll prowl the night; (그녀는 정처없는 걸음으로 밤길을 헤매리)
July, she will fly (7월에 그녀는 날아가 버리리)
And give no warning to her flight. (아무런 예고도 없이)
August, die she must, (8월에 그녀는 세상을 떠나리)
The autumn winds blow chilly and cold; (가을의 바람이 차갑게 불고)
September I'll remember (9월에 나는 기억하리)
A love once new has now grown old. (한때는 신선했으나 이제는 낡아버린 사랑을)

짧고 강렬한 사랑을 찬미한 영화도 무수히 많지만, 대표선수는 역시 1970년에 상영된 <Love Story>라고 할 수 있다. 하버드 법대에 다니는 남학생 올리버(라이언 오닐)는 음악학도 제니퍼(알리 맥그로우)를 만난다. 둘은 사랑에 빠진다. 올리버의 부친은 둘의 결혼에 반대한다. 두 사람은 가난한 신혼살림은 시작하지만, 몇 해 지나지 않아 제니퍼는 불치의 병에 걸린다. 이제 막 변호사가 되어 생활고를 벗어나게 된 순간, 올리버는 자신의 아내를 떠나보낸다. 수많은 영화들을 제치고 <Love Story>가 애절한 사랑영화의 대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것은 영화로서의 완성도 덕분이다. 이 영화의 속도(pace)는 늘어지는 데가 없는데다가, 절제된 태도로 슬픔을 말하고 있다. 스스로 울음을 참는 이야기꾼만이 진정한 슬픔을 전달할 수 있는 법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대사는 "사랑은 미안하다는 말을 할 필요가 없는 거에요(Love means n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다. 영화의 중반부에 제니퍼가 사랑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며 읊는 대사다. 또한, 그녀가 죽은 뒤 올리버가 제니퍼를 추억하며 자신의 아버지에게 반복하는 대사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사랑을 하면 미안하다고 말할 필요가 없다니! 사랑은 사람을 파렴치한으로 만드는 걸까? 설마 그럴 리가.

오히려 사랑은 끊임없이, 밑도 끝도 없이 상대방에게 미안한 것이다. 나의 모자람을 감싸주는 상대에게 한없이 고마운 것이다. 그래서 뜨겁게 사랑에 빠진 연인들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은 다르지 않다. 그 강렬한 고양상태 속에서는, 상대방의 존재 전체를 감싸 안고 싶고, 그럴 수 있을 만한 도량이 절로 생기는 법이다. 혹여 상대방이 나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대신 "미안하다"고 말하면, 그것이 마치 내 사랑에 대한 질책이나 모욕처럼 느껴지는 법이다. 만일 당신이 상대방에게 미안한 마음을 "고맙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면, 당신의 사랑은 아직 따끈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증거다.

서로에 대한 사랑이 뜨거운 발효과정을 마치고 안정기에 접어든다면, <Love Story>의 제안을 함부로 따르지 않는 편이 신상에 이롭다. 그러나, 가급적 자주 “미안하다고 말해야만 하는” 지경이 되었다고 해서 당신의 사랑이 망가져버린 건 아니다. 상대방의 미안하다는 말이 듣기 싫을 정도로 뜨거운 사랑이라는 건, 영원이 지속되지 못하게끔 되어 있기 때문이다. 때가 되면 떨어지는 꽃처럼, "미안함을 거부하는" 강렬한 사랑은 짧기 때문에 비로소 아름다운 법이다. 꽃이 지는 걸 너무 슬퍼하지 마시라. 꽃이 지지 않는다면 열매도 없는 법이니.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70 부성애, 모성애가 헐리우드에서 다뤄질 때. 2009.02.14 1238 10
69 As Good As It Gets file 2009.05.06 1090 21
68 Star Trek (2009) file 2009.05.10 1114 10
67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file 2009.07.06 1092 10
» Love Story file 2009.07.06 1140 11
65 정윤희 file 2009.07.26 9832 16
64 Casa Blanca (1942) file 2009.09.24 1066 18
63   →절절함은 틀린 표현이다. file 2009.09.25 1213 19
62 Revolutionary Road(2008) file 2009.11.21 964 23
61 Amadeus(1985), Holiday Inn(1942) file 2009.11.21 1135 26
60   →윈슬렛과 디카프리오 2009.11.22 1155 18
59 色․戒 (Lust Caution) (2007) file 2009.11.23 1168 25
58 Romeo and Juliet (1968) file 2009.11.24 1102 19
57 Wings of Desire (베를린 천사의 시) (1987) file 2009.11.25 1553 25
56   →올리비아 핫세 file 2009.11.26 1599 29
55 Boxing Helena (1993) file 2009.11.26 1853 28
54 War of the Roses (1989) file 2009.11.29 1052 21
53 Searching for Debra Winger (2002) file 2009.12.02 999 17
52 You Call It Love (L'Étudiante) (1988) file 2009.12.07 1344 24
51 Moonstruck (1987) file 2009.12.12 1093 59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Next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