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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eo and Juliet (1968)

posted Nov 24,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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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본능이다

꽃은 식물의 성기(性器)다. 식물은 스스로 움직여 짝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성기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드러내고 자랑한다. 바바리맨들 같다고나 할까. 나도 안다. 그리 아름답지도, 적절하지도 않은 비유라는 걸. 하지만 꽃을 이런 시각으로 (게슴츠레하게) 바라보노라면, 꽃이라는 사물을 안개처럼 덮고 있던 온갖 선입견과 은유와 신화가 걷히는 것도 같다. 생물학적 진실이 오롯이 보인다는 얘기다.

어쩌면 사랑이라는 감정의 생물학적 근원도 꽃의 정체처럼 당황스러운 건지도 모른다. 단백질 덩어리들이 자기복제 능력을 갖추는 과정에서 어떤 세포들은 고집스럽게 무성생식을 반복하는 길을 택했지만, 다른 세포들은 감수분열을 통해 유성생식을 하게 되었다. 유성생식이 자연선택에 크게 유리했으므로, 단세포 생명체가 고등동물로 진화해 가는 과정에서 암수의 구분은 보다 더 또렷해졌다.

정세포는 활동성이 큰 대신 수명이 짧다. 난세포는 많은 자양분을 비축하고 있지만 운동력은 떨어진다. 모험적인 정세포와 안정적인 난세포의 전략이 서로 다르므로, 수컷의 전략과 암컷의 전략도 당연히 다르다. 대체로 수컷은 자신의 유전자를 되도록 널리 퍼뜨리는 전략을 선호하고, 암컷은 가급적 생존가능성이 확실한 외부의 유전자를 받아들이는 전략을 선호한다고 한다.

이러한 유전자적 차원의 생물학적 드라마가 인간의 삶 속에 발현되는 것이 남녀간의 사랑이다. 그렇다면 사랑의 임무는 분명해 보인다. 그것은 짝을 고르는 일에 관심을 갖게 만들고, 일단 목표물이 포착되면 (최소한 번식이 가능한 기간 동안) 상대에게 집중할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것이리라. 기나긴 진화 과정에서 자연선택에 의해 벼려졌으므로, 사랑의 힘은 강렬하다. 그런데 그만 어쩌다 사랑해서는 안될 상대를 향해 그 감정이 발화되면 일이 복잡해진다.

종종 이런 사고가 생겨나는 이유는, 인간의 사회제도가 성적 본능에 비해 일천한 역사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제도를 규율하는 것은 이성이다. 진화 과정에서 가장 늦게 덧붙여진 대뇌의 피질이 이성을 관장한다. 그러나 본능을 좌우하는 것은 뇌의 더 깊숙한 부위(R 복합체와 번연계)다. 특히 생식기능을 관장하는 호르몬들이 들끓는 나이의 청소년들은 본능의 이끌림에 취약하다. 제도가 금지하는 사랑의 열병을 앓는 남녀를 소재로 삼은 예술작품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역시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그 대명사라 하겠다.

뮤지컬 <Moulin Rouge!(2001)>를 만들었던 바즈 루어만 감독이 1996년 레오나도 디카프리오와 클래어 데인즈를 기용해서 만든 <Romeo + Juliette>도 기념비적인 영화이긴 하다. 몬태규 집안과 카플렛 집안이 서로 총질을 해대는 현대판 번안본이긴 하지만, 기특하게도 이 영화는 셰익스피어의 대사들을 그대로 살려두고 있다. 열대어 어항을 사이에 두고 두 선남선녀가 만나는 시퀀스는 90년대에 청춘을 보낸 많은 이들에게 인상적으로 각인되어 있을 터이다.

하지만 역시 영화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면, 고전을 영화화하는 일에 일평생 매진해온 프랑코 제퓌렐리 감독의 1968년 작품을 먼저 꼽게 된다. 제퓌렐리는 재능이 출중한 감독이고, 자기 재능을 적절한 방식으로 활용해 왔다. 1967년에 그가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리처드 버튼을 주인공으로 영화화한 <Taming the Shrew(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셰익스피어의 놀라운 유머감각을 셰익스피어가 되살아나서 봤더라도 깜짝 놀랐을 법한 유려함으로 화면 위에 펼쳐 보였다. 멜 깁슨 주연의 <Hamlet(1990)>도 괜찮았다. 하지만 피렌체 태생인 제퓌렐리에게 역시 가장 잘 어울렸던 건 이탈리아 베로나를 배경으로 하는 <Romeo and Juliet>였던 것 같다.

제퓌렐리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극중 나이와 같은 배우들을 기용할 것을 고집했다. 그래서 당시 15살이던 올리비아 핫세가 줄리엣을 맡게 되었다. 1951년생인 그녀의 줄리엣 역할 홍보사진은 한국에서 무려 1980년대까지도 책받침이나 연습장 표지가 되어 여드름 투성이 남학생들의 마음을 뒤흔들곤 했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빠져든 건 로미오만이 아니었던 게다. 뭐 딱히 목숨까지 걸 정도는 아니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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