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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endly Persuasion, Working Girl

posted Jun 17,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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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1956년작 Friendly Persuasion과 마이크 니콜라스 감독의 1988년작 Working Girl은 서로 비슷한 점을 찾기 어려운 영화들입니다. 그러니까, 이 두 영화를 묶어서 한 번에 소개하는 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어떤 취향에서 연유하는 일입니다. 그저 저한테는 이 두 영화가 항상 동시에 연상되는 것일 따름입니다. 그 이유는 나중에 말씀드리죠.


    제사민 웨스트의 소설을 영화화한 Friendly Persuasion의 주인공들은 1860년대 인디아나주에 사는 퀘이커 교도 가정입니다. 이들은 성서가 가르치는 비폭력 원칙을 글자 그대로 지키며 삽니다. 독특하게 전통적인 방식으로 평화로운 일상을 누리던 그들도 남북전쟁의 소용돌이를 피해갈 수는 없습니다. 북부지역을 초토화시키면서 남부군이 인디아나주를 통과하는 거죠. 사랑하는 이웃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겠다는 아들(앤토니 퍼킨즈)와 이에 반대하는 아버지(게리 쿠퍼)의 대립이 드라마의 큰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렇게 소개하고 만다면 저는 훌륭한 영화를 부당하게 폄훼하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양심적 집총거부는 Friendly Persuation의 중심적 소재이기는 하지만, 이 영화는 결코 그것만으로 졸아들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좋은 작품이란, 항상 그것을 이루고 있는 모든 재료들의 합계보다 큰 법이죠. 와일러 감독은 이 영화를 무척 조심스럽게 연출한 것 같습니다. 영화의 전반부는 흡사 Seven Brides for Seven Brothers를 (이를테면) 연상시킬 만큼 가볍고 경쾌합니다. 그러다 전쟁의 그림자가 문턱에 다가옵니다. 그 후반부에도 등장인물들은 적어도 겉으로는 일상의 경쾌함을 유지하지만, 영화의 분위기는 사뭇 달라지죠.


    남북전쟁에 대해 쥐뿔도 아는 게 없더라도 이 영화의 줄거리를 이해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영화는 남북전쟁이 미국인들에게 미친 영향을 가장 잘 그려낸 작품들의 반열에 포함될 수도 있을 겁니다. 퀘이커 교도라는 비폭력 집단을 주인공으로 삼았기 때문에 전쟁의 광포함이 더 두드러져 보인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선택한 전략은 절제였다고 생각합니다. 메시지를 잘 전달하기 위해서 큰 목소리로 말하는 웅변가가 아니라, 주위를 조용하게 만드는 연설가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게리 쿠퍼 집안 애완동물인 거위가 남부군에게 꽥꽥거리며 대드는 모습이 오히려 Patriot에서 도끼를 들고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싸우는 멜깁슨 못지않게 영웅적으로 보일 수 있었던 거죠.


    거위와 줄곧 다투는 열살 박이 막내아들에게, 군인을 사랑하게 된 딸에게, 싸우기로 마음먹는 큰아들에게, 신앙을 지키는 부모들에게 전쟁은 제각각 다른 얼굴로 다가옵니다. 저항을 독려하는 북군 장교 앞에서 게리 쿠퍼는 퀘이커 교도가 싸우지 않는 것은 싸움이 두렵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점을 시인해서 마을 노인들의 분노를 사기도 합니다. 스스로의 비겁함을 시인하려면 도대체 얼마나 용감해야 하는 걸까요. 이 영화 속에서 게리 쿠퍼는, 마을 전체의 비겁자들의 운명을 홀로 어깨에 걸머지고 악당들과 외롭게 싸우던 High Noon에서보다 더 진정으로 용감해 보이더군요. 아들을 나무라는 아내를 말리면서, 그는 “사람이 자기 양심을 저버리면 쌓아놓은 콩더미보다 값어치가 없어지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사실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더없이 인본주의적인 가장의 역할을 맡았던 셈이죠.


    앤토니 퍼킨스는 히치코크 감독의 Psycho에서 소름끼치는 다중인격자로 깊은 인상을 남긴 이래 줄곧 “Psycho의 주인공”으로 불려졌습니다. 성격파 배우로 분류된 그에게 맡겨지는 배역들도 주로 뒤틀린 내면연기를 하는 것들이었죠. 하지만 Friendly Persuasion에서만 해도 앤토니 퍼킨스는 준수하기 그지없는 꽃미남 배우였었습니다. 아, 화무십일홍이라지만.


    자, 이제 극장을 바꿔서, Working Girl은 하급 전문직에 종사하는 여성의 좌절과 꿈과 사랑과 성공을 그린 로맨틱 코메디입니다. 직장인들의 애환을 그린 비슷비슷한 분위기의 영화들은 많지만, Working Girl은 “이렇게 생긴 영화중에서는 제일 재미있는” 영화라고 서슴없이 말할 수 있습니다. 테스(멜라니 그리피스)는 평소 쌓인 것도 많고, 잘 풀리는 일도 없는 여비서입니다. 직장에서 상사는 그녀의 아이디어를 가로채고, 그녀의 남자친구는 딴 여자에게 한눈을 팔죠. 멜라니 그리피스는 이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알콜중독 치료를 병행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덕분인지는 몰라도, 그녀는 모든 우리 직장인들이 경험하는 시지푸스적인 노동의 피로감을 호소력 있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영화가 우리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피곤한 일상의 수레바퀴 밑에서 신음하면서도 꿈과 희망을 저버리지 않는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스테튼 아일렌드에서 맨하탄으로 통근하는 배로 허드슨강 하구를 건너는 동안 출근시간을 이용해서 경제신문을 꼼꼼히 읽는 그녀의 모습 속에서 자기 자신과 동료들의 자화상을 보지 않는 월급쟁이들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녀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야간학교에서 학위를 받기도 했습니다. 마침 직장상사(시고니 위버)가 스키장에서 다리가 부러져서 치료를 받는 동안, 그녀는 우연히, 또 우연찮게 스스로의 능력을 증명할 기회를 얻습니다. 그녀는 미남 투자 브로커인 잭(해리슨 포드)와 팀을 이루게 됩니다. 사무실 안에서, 또 밖에서도.


    그녀가 출퇴근때 이용하는 페리선은 영화의 중요한 상징물입니다. 배로 출퇴근할 수 있는 여건이 흔한 것이 아니다 보니 독특한 풍물에 해당되기도 합니다만 그보다도, 그녀에게 그것은 마치 신데렐라가 집이라는 현실과 무도회장이라는 기회 사이를 건너다니는 마차 같은 것이기도 합니다. 배가 맨하탄을 향해 가는 장면에서 주제가 “Let the River Run”의 멜로디도 강물처럼 흐릅니다. 칼리 사이먼이 부른 Let the River Run은 이 영화에게 유일한 오스카를 안겨준 주제가였습니다. 최우수 작품상, 최우수 감독상, 최우수 여우주연상 등 여섯 개 부문 후보에 오르고도 주제가상 딱 하나만을 받았지만, 그게 별로 억울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이 노래는 노래 자체로서 좋기도 하고, 영화의 분위기도 잘 살려줍니다.


    이 영화에는 기억에 남는 재치 있는 장면들이 많지만, 마지막 장면은 압권입니다. 자신의 노력의 결과 그녀는 새 직장의 '초임 직급(entry-level)'을 선사받습니다. 첫 출근후 비서의 책상에 짐을 풀어놓으며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그녀에게, 방안에서 다리를 꼬고 전화통화 중이던 그녀의 비서가 다가와 안쪽 방의 상사 자리가 그녀의 것임을 알려줍니다. 자기 행동이 마음에 안 들면 말로 하시지, 첫날부터 왜 이러냐며. 이런 안배는, 테스의 놀라움에 관객들을 효과적으로 동참시켜 줍니다. 만세를 부르는 그녀의 모습을 카메라가 창밖에서 점점 멀리 줌 아웃 하면서 건물을 비춰줍니다. 여담이지만, 그곳은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세계무역센터였습니다. 그래서 9-11 테러사건이 발생했을 때, 저는 졸지에 희생된 수많은 테스들을 마음속으로 애도했습니다.


    Friendly Persuasion과 Working Girl 두 영화를 제 마음 속의 지도 속에서 한 덩어리로 묶어주고 있는 것은 두 명의 남자 주인공입니다. 주제의 무게나, 배경이나, 소재나 무엇 하나 비슷한 게 없는 영화지만, 이 두 영화가 담고 있는 유머(Humor)의 농도만큼은 상당히 비슷합니다. 그 유머는 게리 쿠퍼와 해리슨 포드를 통해 구현되고 있습니다. 깔깔거리며 배를 잡을 장면은 없지만 내내 흐뭇한 미소를 머금게 하는 정도의 건강한 유머. 정직하고 성실하고 성숙한 남성만이 구현할 수 있는 그런 색깔의 유머. 해리슨 포드는 그것을 굉장히 ‘게리 쿠퍼스럽게’ 해내고 있었습니다.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 라든가 하이눈에서의 게리 쿠퍼가 아니라 우정 있는 설복에서의 게리 쿠퍼. 그래서 비슷하더라는 얘기였습니다. 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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