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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nkirk

posted Aug 2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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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nkirk_Film_poster.jpg



Dunkirk


크리스티앙 메츠라는 프랑스 학자는 영화관람(spectatorship)의 방식을 세 가지로 구분했습니다. 첫째는 나르시스적인 동일시(narcissistic identification)입니다. 특히 연기자의 시점으로 찍은 장면들(point-of-view shots)은 관객들이 주인공과 동화되게끔 잘 도와주지요. 관객이 스스로를 극중 인물과 동일시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불건전하다고 여긴 브레히트는 일부러 “이건 연극일 뿐입니다”라고 큰 소리로 알려주는 장치들을 사용해서 관객의 지나친 몰입을 방해하는 효과를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둘째로, 관음증(voyeurism) 그러니까 엿보기입니다. 어두운 객석에 앉아서 화면 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남몰래 지켜보는 거죠. 관객은 화면을 보지만 화면은 관객을 보지 않습니다. 멀쩡해 보이는 신사숙녀의 내밀한 치부를, 미남 미녀의 정사장면을, 또는 주인공의 남모르는 고민을 우리는 더러 제3자의 시선으로 엿보기도 한다는 얘깁니다. 예컨대, 알프레드 히치코크는 바로 이 엿보기 방면에서 도사 같은 감독이었죠.


세 번째는 페티시즘(fetishism)입니다. 메츠에 따르면 이른바 영화 페티시스트들이란, 영화라는 매체의 특별한 성능에 매료되어, 영화를 만드는데 사용된 수단과 결과물을 (또는 영화에 담겨진 것과 담겨지지 못한 것을) 비교하고 그 틈새를 관찰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비교영화론에 재미를 붙인 사람은 메츠가 말한 전형적인 ‘영화 페티시스트’에 해당되겠습니다.


저더러 영화관람의 양태를 나누어 보라고 한다면, (1) 착각 (2) 피선동 (3) 서사라는 세 가지로 나누어보고 싶습니다. 하나씩 따져봅시다.


첫째로, 사람들은 속기 위해서 영화관에 갑니다. 감각적 충격을 원하는 거지요. 1895년 12월 28일 프랑스의 한 카페에서 뤼미에르 형제는 자신들이 만든 작품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여기서 상영된 세계 최초의 영화는 <열차의 도착>이라는 50초의 짧은 동영상이었습니다. 아무런 스토리도 없이 화면을 향해 열차가 도착하는 장면을 보여준 것에 불과했지만 영화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진짜 열차가 돌진해 오는줄 알고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는군요. 최초의 영화는 시각적 속임수에 불과했지만, 이후 시청각을 총동원하는 감각적 충격의 종합예술로 발전합니다. 특수효과의 꾸준하고도 눈부신 발전은 현대 영화를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기둥 중 하나입니다. 요즘은 저예산 영화들도 아무렇지 않게 CG를 사용합니다. 소설가 올더스 헉슬리는 영화의 이런 오락 기능을 잘 이해했습니다. 그가 1932년에 쓴 <Brave New World>에는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느낌을 재생시켜주는 feelie라는 장치가 등장했었으니까요. 요즘 무비(movie)들의 지향점은 단순한 동영상이 아니라 인간의 오감을 놀래키고 속이는 ‘필리’가 되려는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둘째, 사람들은 속는 줄 모르면서 영화를 봅니다. 영화는 탄생 직후부터 관객을 세뇌시키는 선전물의 수단으로 주목을 받았고, 아주 이른 단계부터 실제로 그렇게 활용되었습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기념비적인 시도는 1915년 데이비드 그리피스 감독의 미국영화 <국가의 탄생>과 1925년 세르게이 아이젠시테인 감독의 소련 영화 <전함 포템킨>이었죠. 적당한 편집과 음악을 동원하면, 영화는 관객들을 원하는 방향으로 가장 쉽게 감동시킬 수 있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쓰임새는 지금도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특히 과거에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이나 벌어졌던 사건을 소재로 하는 영화들은 관객이 역사를 편향적으로 바라보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수필에서 "경험상 실화에 기초한 할리우드 영화라는 것만큼 수상쩍은 것도 없다"고 쓴 것도 이런 점을 지적한 것이었다고 봅니다. 어찌 할리우드 영화만이겠습니까? 


셋째, 사람들은 다른 인생을 경험하기 위해 영화관에 갑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점이 영화의 가장 멋진 쓰임새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에게는 서사의 욕구가 있습니다. 선사시대부터 ‘이야기’가 맡아오던 역할을 소설이 이어받았고, 그것을 영화가 다시 이어받은 것이지요.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의 동물이 발현시킨 가장 특이한 능력이 ‘픽션’을 만들어내는 능력이라고 보았습니다. 직접적 소통을 통해서는 150여명 이상의 집단을 유지하기 어렵지만, 종교, 민족, 이념 등의 픽션을 만들어냄으로써, 인류는 거대한 집단으로서 행동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가 가장 광범위하고도 강력한 픽션으로 지적한 것은 돈(화폐)입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지폐가 그 자체로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거기에 부여하는 믿음 이외에.


서론이 길었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만든 <Dunkirk>는, 지금까지 그가 만든 가장 특이한 영화입니다. 쏟아내고 싶은 말이 많아 관객이 난해하게 여길 만큼 복잡한 메시지를 담은 영화를 만들던 그가, 이번에는 던케르크 해변의 전투현장에 관객을 풀어놓고 아무런 안내를 해주지 않습니다. 그런 탓인지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조금 당황해 하는 것 같습니다. 영화에 대한 평은 갈립니다. 매우 좋았다와 거지 같았다가 거의 비슷한 비율인 것처럼 보입니다.


이 영화에 대한 가장 흔한 악평은 ‘서사의 부재’인 것 같습니다. 픽션으로서의 영화를 중시하는 관객에게, 이 영화는 거의 아무런 이야기를 전해주지 않습니다. 그런 관객은 이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벌어지는 사건들이 뭔가 좀 더 사적으로 의미있는 다른 ‘이야기’의 재료가 될 법한 배경에 불과했다고 느끼는 것 같습니다. 이 영화가 서사를 ‘거의’ 결여하고 있으므로, 그런 그들의 불평은 타당하다고 봅니다. 서사가 영화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만 빼면 말이죠.


영화가 감각적 경험이라고 믿는 관객에게 이 영화는 기립박수의 대상입니다. 이런 관객은 친구들에게도 이 영화만큼은 꼭 아이맥스로 관람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던케르크의 해변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도록, 이 영화는 만들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놀란 감독은 큰 성취를 거두었고, 서사를 의도적으로 생략한 그의 접근은 그가 의도한 종류의 충격과 감동을 더욱 크게 만들어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를 칭찬하는 분들의 흥분도 타당한 겁니다.


정치적 선전물로서의 <Dunkirk>에 관해서는 정치적 입장에 따라 호오가 갈리는 것 같습니다. 공동체로서의 국가의 생존을 중시하는 분들은 이 영화의 결말에 기꺼이 감동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국가 공동체를 개인을 억압하는 성가신 상상의 산물로 생각하는 분들은 이 영화를 <전함 포템킨> 류의 선전물처럼 느끼는 것 같습니다. “다 좋은데 막판이 영국판 ‘국뽕’ 영화가 되어서 불편했다”는 분도 만났습니다. 그렇게 느낄 여지도 있다고 봅니다. 어느 나라든 국가적 영광과 자존심을 영화에 담으면 어느 정도든 치기어린 ‘뽕끼’가 들어가기 마련이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의 견해를 말씀드리자면, 영국 국민과, 특히 그들이 2차대전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공동체로서 보여준 강철 같은 결기에 관한 한 그 누구도 함부로 비아냥할 수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뽕’도, 진정한 ‘국뽕’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랄까요.


<덧>

이 영화에 악평도 흥분도 소리높여 하지 못하고 그저 착찹하게 극장문을 빠져나온 분들도 많으시죠? 차가운 해변과 해협에 수장되는 수많은 젊은 목숨이 아프기 때문입니다. 새끼를 군대에 보내 놓은 부모들에게는 그 아픔이 더 뾰족하게 만져질 터입니다. 어쩌면 그 아픔이 이 영화에 대한 호오를 소리없이 더 증폭시키고 있는지도 몰라요. 저희 어머니는 영화를 다양하게 섭렵하는 영화의 고수이신데도 이건 괜히 봤다며, 끔찍하고 싫더라고만 하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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