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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Women Want (2000)

posted Jan 08,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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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속아주는 것이다

이태 전, 친구와 술 한 잔 걸치며 객쩍은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가 친구가 마침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내가 어떤 여자한테 들은 얘긴데, 여자는 남자와 말을 나누는 동안 그 남자가 엉큼한 생각을 하면 아무리 점잖게 시치미를 떼도 다 안다더라. 정말일까?”
  “에이 아무렴, 설마.”
  “그런데 정말 자신 있게 말하더라고. 알아채지만 모르는 척 할 뿐이라고.”
  “그게 정말이면 큰일이게.”

그 뒤로 가끔씩 친구의 말이 생각나서, 그런 걸 물어봐도 큰 흉이 안 될 만한 여성들 몇 분에게 물어봤는데 대답은 제각각이었다. ‘나는 전혀 모르겠더라’에서부터 ‘남자들은 다 그러는 거 아니냐’에 이르기까지. 아마도 내 친구에게 호언장담을 했던 여자분은 남자 경험이 풍부하거나 그런 방면으로 탁월한 감수성을 갖춘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다행이다. 나야 뭐 피 끓는 이팔청춘도 아니고, 연애 방면으로 탁월한 소질을 가졌거나 노력을 기울이는 스타일도 못되니 심각하게 걱정할 일은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 그 말이 사실이었다면, 방심하다 나도 모르게 실수할까봐 매력적인 여성분들과는 눈도 못 마주쳤을 거 아니냐 말이다.

연애에 소질은 커녕, 나는 여자들의 생각의 회로를 알 길이 없다. 존 그레이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든지, 그보다 더 명저라고 여겨지는 피즈 부부의 <말을 듣지 않는 남자 지도를 읽지 못하는 여자(Why men don't listen and women can't read maps?> 같은 책을 읽어보기도 했지만, 그저 고개를 끄덕였을 뿐 실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느끼진 못했다. 결혼생활을 통해서 내가 얻은 교훈은, 남자는 자기가 원하는 걸 여자에게 말하지만, 여자는 자기가 원하는 걸 남자가 하나 안하나 두고 본다는 정도다. 만일 여자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생각들을 남자가 다 알아낼 수 있게 된다면, 아마도 남자는 쾌재를 부르거나 아니면 감당을 못하고 돌아버리거나 둘 중 하나일 거다. 이런 생각을 나만 하는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낸시 마이어즈라는 여성감독이 2000년에 만든 <What Women Want>에서 전형적인 마초 사업가이던 닉(멜 깁슨)은 어느 날 감전사고를 당한 뒤 여자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초능력을 얻게 된다. 그는 자기가 여자를 유혹하는데 뛰어나다고 생각했었지만 여자들은 그를 비웃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이혼한 전 부인이나 자기 딸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처음 알게 된다. 그는 자신의 새로운 능력을 이용해서 여자들에게 진정한 호감을 사는 방법을 배워 나간다. (잠자리에서 여성을 만족시키는 방법을 포함해서) 그 뿐 아니라, 그는 승진 경쟁에서 자기를 밀어낸 여성 동료(헬렌 헌트)를 이기고 그녀를 해고당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그제서야 자신이 그녀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후회하게 되지만.

그러다가 그는 또다시 우연한 사고로 그 특이한 초능력을 잃게 된다. 이 영화가 자꾸만 떠오르는 이유는 그 다음부터다. 그가 자신의 딸과 화해하고, 헬렌 헌트와의 사랑에 성공하는 것은 정작 그들의 속마음을 더 이상 훔쳐듣지 못하게 된 이후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내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해 주길 바라는 건 우리 모두의 희망이겠지만, 일거수 일투족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행동하고 대꾸하면 무섭고 징그럽지 않을까? 그런 사람과 사랑을 나누는 것이 가능할까?

한 번쯤 생각해 볼만한 일이다. 상대방의 온갖 원초적인 생각과 느낌들을 다 알아버리게 된다면, 그걸 알게 된 쪽에서도 과연 상대를 사랑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아마 나는 어림없을 거다. 나는 내가 알아서는 안 되는 사실들을 알고 나서도 무덤덤하게 행동하는 쪽으로는 젬병이다. 그리고, 많이 애를 쓰면 용서받고 사랑받을 정도의 행동을 하면서 지낼 수는 있지만, 나의 모든 깊고 어두운 상상과 생각을 다 들키고도 사랑받을 수 있을 만큼 착하지도 않고, 그러기를 원할 만큼 나쁘지도 않다.

나는 거짓말을 무척 싫어한다. 하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반드시 말로 해야만 하는 것이 정직은 아닐 터이다. 그래서 우리는 말과 다르게 행동하는 것을 거짓이라고 부르고, 생각과 다르게 말하는 것을 예의범절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머릿속은 상상력의 해방구다. 그곳을 그렇게 남겨두는 것이 아마도 사랑의 비결이리라. 적어도 그 만큼은, 속아주는 것이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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