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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forgiven

posted Dec 22,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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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수는 물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용서할 줄 아는 능력은 개인적으로 고귀하고 사회적으로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에는 용서받아야 할 일과, 용서받기 어려운 일도 존재한다’는 생각과 공존할 때만 의미를 가집니다. 원수를 물에 새긴다는 말은 적어도 용서를 빌어야 하는 쪽에서 할 말은 아닌 겁니다. 상상해 보시죠. 누구도 용서를 구하지 않지만 모든 것이 용서되는 사회, 모든 사람이 면책특권을 누리는 국회의원들처럼 구는 사회가 얼마나 끔찍할 것인지를!


    용서를 구할 줄 아는 능력은 용서할 줄 아는 능력 못지않게, 아니, 때로는 그보다 더 중요합니다. 용서를 비는 용기가 용서하는 도량보다 더 위대하다고는 말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최소한 더 근원적이고, 일차적이며, 따라서 우선적입니다. '다수 속에 있으면 안전하다(There is safety in numbers)'는 서양의 격언은, 우리가 언제든지 군중 속으로 숨어버릴 수 있다는 사정을 잘 표현합니다. 싸이버스페이스가 대중의 익명성을 거의 무한대로 확장시키고 있는 오늘날, 자기 책임을 인정하자면 거의 영웅적인 면모를 필요로 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 사회처럼 경쟁이 각박하고,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일상적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만큼 신뢰의 관습이 얕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곳에서,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은 일종의 금기처럼 여겨지기조차 합니다. 아무도 용서를 구하지 않는 곳에서 용서를 베풀 능력이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은, 실은 신의 능력도 미치지 못하는 일입니다.


    ‘용서’라는 단어를 들으면 저는 조건반사처럼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하고 주연한 Unforgiven이 떠오르더군요. 아시다시피, 이스트우드는 A Few Dollars More,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같은 마카로니 웨스턴으로 스타가 되었고 Dirty Harry 시리즈로 70년대 영웅으로 군림했던 배우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고 뚜거덕 뚜거덕 말 타고 나타나 더러운 악당들을 처단하던 카우보이. 이스트우드 만큼만 폼이 나 준다면, 눈가의 잔주름인들 어디 마다할 일이기만 하겠습니까?


    그런데 그의 필모그라피를 살펴보면, 그가 의외로 일찍인 1971년부터 감독으로서 메가폰을 쥐고 카메라 뒤에서 야심을 불태웠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그는 Pale Rider(1985), Bird(1988), White Hunter Black Heart(1990), Mystic River(2003)의 감독으로 네 번이나 깐느 영화제 황금종려상 후보에 지명되었고, Million Dollar Baby(2004) 같은 문제작을 들고 나와 두 번이나 감독상과 작품상을 휩쓸어간 불세출의 영화감독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들 사이 어딘가에 Unforgiven이 자리 잡고 있는 거죠. 이스트우드의 진정한 속내를 알 수는 없습니다만, 전형적인 액션 스타에서 진지한 영화감독으로 변신하려고 애쓰던 그가 내놓은 영화의 제목이 하필 unforgiven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을 스타로 만들어준 웨스턴 장르의 상투성에 대한 반성을 담고 있다는 사실에 저는 늘 마음이 움직입니다.


    19세기말 와이오밍 어느 마을에서 두 카우보이가 술집 여자의 얼굴을 칼로 난자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보안관(진 해크먼)은 이들을 벌금형에 처했을 뿐인데, 거기에 격분한 동료 작부들이 돈을 갹출해서 1천 달러의 현상금을 걸죠. 그 돈을 노리고 멀리서 총잡이가 오지만, 보안관은 자기 방식대로 유지하고 있는 질서가 어지럽혀지는 꼴을 못보는 사람입니다. 그 총잡이는 보안관에게 치도곤을 당하고 쫓겨납니다. 보안관은 그에게 소리칩니다. 다음에 또 이 마을에 나타나면 쏴 죽여 버릴 거고, 그건 정당방위라고.


    현상금 사냥군이 되겠다는 포부를 가진 스코필드라는 청년도 이번 현상금을 타서 유명해지고 싶어 합니다. 그는 은퇴한 총잡이 뮤니(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찾아가 동업을 제의합니다. 뮤니는 왕년에 서부에서 가장 악명이 높았던 건맨이었는데, 양가집 규수와 결혼한 후에 총을 놓고, 술도 끊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 결혼을 반대했던 장모가 예언한 것처럼 뮤니의 총에 죽은 것은 아니었지만 - 천연두에 걸려 세상을 떠났고, 뮤니는 두 아이를 키우면서 돼지를 사육하고 있습니다. 몇 마리 안남은 돼지들이 전염병으로 죽어가자 생계가 막연하던 터여서, 그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총을 잡기로 결심하고, 옛 친구 네드 로건(모건 프리먼)에게도 도움을 청하죠.


    하지만, 멋모르고 마을 술집에 총을 찬 채 나타났던 뮤니는 보안관에게 거의 죽을 지경으로 린치를 당합니다. 작부들의 간호로 간신히 회복한 뮤니와 그 일행은 ‘작부 상해범’들을 살해하는데 성공합니다. 도중에 사람을 더 이상 못 죽이겠다며 귀가한 네드는 그만 보안관에게 붙들려 잔혹하게 심문을 받던 끝에 죽습니다. 보안관은 술집 밖에 본보기로 그의 시신을 걸어두는데, 이 소식을 들은 뮤니는 현상금을 자기 아이들에게 전해주라며 마을로 복수의 길을 떠납니다. 오랜 세월의 개과천선이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순간이죠. 쓰러진 보안관이 이를 갈며, 그에게 지옥에서 만나자고 합니다. 그는 ‘그러지’라고 대답하고 방아쇠를 당깁니다.


    이 영화에서 이스트우드는 마치 자신의 흉한 자화상을 그리듯, 왕년에 숱하게 야비한 살인을 저지르면서 영웅행세를 했던 늙은 총잡이의 초라한 만년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사람을 많이 죽여 본 사람만이 할 수 있을 법한 대담하고 치사한 수법으로 그가 총잡이들을 처치하는 장면에서 멋들어진 속사수나 명사수의 모습을 찾아볼 수는 없습니다. 그는 술집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문을 빠져 나오며 고래고래 소리칩니다. “거기 밖에서 내 눈에 띄는 놈들은 다 죽여 버릴테다!  나한테 대고 총질을 하는 개자식은 마누라와 친구까지 다 죽이고 집에 불을 싸지를 거다!” 그가 겁을 내면서 남에게 겁주려고 악을 쓰는 이 대목에서, 일순간 이 영화는 그가 예전에 주연했던 60-70년대의 모든 서부극과 거대한 한 덩어리가 됩니다. 망토자락 휘날리며 유유히 등을 보이던 그의 젊은 시절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이죠.


    이스트우드는 Unforgiven에서, 자신이 1959년 서부극의 주연으로 데뷔한 Raw Hide에서 신었던 장화를 신었답니다. 그 장화가 왠지 클린트 이스트우드 서부극을 수미쌍관하는 일종의 상징물처럼 느껴집니다. Unforgiven에서 그는 젊었을 때 철없이 떠벌인 영웅담이 사실은 다 미화되고 과장된 거짓이었다고 고백하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웨스턴이라는 거대한 장르 전체가 이 영화 한편을 통해, 초신성이 폭발후에 휘익 하고 블랙홀로 빨려드는 것처럼 정리되는 것만 같은 느낌을 저는 받았습니다. 아마도 이스트우드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왜냐면 그는 마이클 조던이 현대 농구를 체화하고 있는 것처럼(또는 그보다 더한 정도로, 훨씬 더 장구한 세월동안) 웨스턴을 한 몸에 체화하고 있는 하나의 아이콘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용서받지 못한다는 제목이 더 깊은 울림을 가집니다. 술을 끊고 아이 둘 딸린 평범한 홀아비 농부가 되어보려고 애를 쓰다가 결국 회심에 실패하고 마는 주인공의 처진 어깨가 더 안쓰러워 보이기도 하죠.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고 나오면서 저는 상상해 봤습니다. 스타 시스템에 올라타고 유명인이 되었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꿈꾸는 진지한 감독이 되기 위해 긴 세월동안 씨름하던 한 노배우를. 그가 어느 순간, 자신이 예전에 이룩한 어떤 부분을 "용서받을 수 없는" 그 무엇이라고 정의하고 그것을 만천하에 고백하지 않고서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다고 결심하는 대목을.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겠습니다만, 이 영화 한 편으로 이스트우드 감독은 진지한 영화작가로서 책임감을 보여주었고, 온다 간다 마침표 없이 옛 것으로 잊혀져가던 웨스턴 장르라는 용 그림에 멋진 눈알을 그려 넣었습니다. 무엇보다 저에게는, 용서 받으려고 나서는 용기가 지닌 적지 않은 뜻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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