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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현대미술에 대해...

posted Sep 18,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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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미술이 스스로 무가치해지고 추해짐으로써 현대사회의 부조리를 자각하게 한다는 것이 곧 예술의 프로파간다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프로파간다로서의 예술은 우리나라의 경우 80년대 민중미술이 대표적이고 지금은 그나마 공공미술쪽으로 전향하거나 근근히 명맥만 유지하는 정도지요.) 오히려,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은 주창이나 이즘을 철저히 거부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인간 사회가 아름답고 고상하기만 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더니즘은 인간이 이성과 의지와 노력으로 계속해서 발전하면서 꿈꾸는 세상에 근접해 나갈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고상함과 합리성은 늘 그것을 부정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갖추려고 노력하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한시적으로 지켜지곤 했던 것이다"라는 말을 아도르노가 봤다면, 야속한 소리겠지만, 그런 생각조차 현대사회가 그렇게 기획했기 때문이라고 말했을 겁니다, 정말 역사상 가장 우울하고 슬픈 책을 쓴 사람답게.


    아도르노만큼은 아닐지라도, 절대적인 합리성이나 진리는 불가능하다는 건 오늘날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할 것입니다. 비록, 지금까지 인류가 이룩한 엄청난 발전의 원동력은 절대성에 대한 믿음에 상당부분 빚을 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마르쿠제는 "에로스와 문명"에서 사회억압과 문명의 발달의 상관관계에 대해 흥미롭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어차피 인간은 사회를 떠나 살수 없고, 현대문명이 주는 혜택도 어마하니 이 뜨거운 감자는 필요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이 감자가  필요악이라는 걸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감자는 맛있는 거라고만 생각하다가는 자칫 손을 데이니까 말입니다.(정말 심각한 문제는 손을 데고도 데였다고 자각 못하는데 있지만) 그리고 아도르노 같은 사람은 이것이 손을 데게 할 수도 있다 혹은 너의 손이 지금 데이고 있다라고 계속 일깨워주는 것이 예술의 역할이자 존재의미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는 부조리하다는 것을 고발하고 뒤집자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고 거대한 전체로 통분해 버리는 소용돌이에서 살아남아 하나하나 눈부시게 반짝이는 개별자로 “존재”하자는 의미일 것입니다. 날씨 좋은 휴일 오후에 기분 좋게 둘러보는 미술관은 우리가 속한 사회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단지 다음 날 사회의 일부분으로서 원활히 생산하기 위한 재충전의 역할을 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부정적인 의미에서 그는 문화산업이라는 용어를 썼던 것입니다. 작품을 볼 때 그냥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체험을 하는 것만으로, 뭐 이런 게 다 있나 잠시 주춤하고 생각하게 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뜻입니다.


    그런 태도를 저널리즘적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현대미술에는 저널리즘이고 뭐고 내용 자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냥 쓰레기 같은 잡동사니를 갖다놓고 현대사회의 무가치함을 "암시"할 뿐입니다. 주제는 내용에서 사라지고 형식 속에 침잠되는, 그런 점에서 알레고리적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추해질대로 추해진 현대미술이 새롭게 다가오진 않습니까.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을 고양시키는 현대미술도 있습니다. 그 한 예가 바넷 뉴먼. 가로세로가 3m, 6m가 넘는 거대한 캔버스에 빨강 노랑 파랑 세 색면만 칠해져 있는데 그 앞에 서면 어떨 것 같습니까? 분명 턱하고 숨을 멈추게 하는 먼가가 있을 것입니다. 아름다운 건 아니지만 추한 것도 아니고, 뭔가 초월적인 존재를 대하는 듯한 압도적인 느낌.(작품제목이 "누가 빨강, 노랑, 파랑을 두려워하랴"라니, 의미심장하지요?) 리오타르는 이걸 "숭고"라고 했고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개념 중 하나로 사용됩니다. 숭고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는 또 다른 작가가 로스코인 것 같습니다. 조용조용하게 스며들어 있는 두개의 커다란 색면을 보고 있으면 정말로 가슴이 먹먹해져 옵니다. 마치 "먹먹하다"라는 표현이 로스코 작품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밖에 예쁘고 화려하고 알록달록한 가벼운 느낌으로 작업하는 젊은 작가들도 많고, 코미디 버금가게 웃기는 팝적인 작업을 하는 작가들도 많고, 현대미술은 꽤나 다양합니다. 모든 작품 하나하나의 가치를 인정하고 목소리를 수용하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작품을 보고 해석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도르노 식으로 작품을 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는 것일 뿐, 그게 전부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것이 옳고 저것은 그르다는 것이 아니라 이것도 옳을 수 있고 저것도 옳을 수 있다는 걸 수용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볼 것인지는 관람자의 몫일 따름입니다.


    관람자의 해석이 무한이 나올 수 있고, 그 가치를 제각각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비평가 또한 적극적인 관람객이라고 불러질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비평가의 해석도 수많은 해석의 하나일 뿐이지 절대적인 건 아니라는 의미에서 말씀입니다. 물론, 현실 속에서 비평가는 분명히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때로 말도 안 되는 엄청난 가격을 매기거나 작품에 작품 외적인 아우라를 만들고 있기는 합니다만. 이것 또한 미술계가 굴러가기 위한 필요악인 것 같아서 매몰차게 몰아세우기만 하진 못하겠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궁극적인 체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성적 합리주의가 극한으로 가면 응당 포스트모더니즘적 성향으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내적 필연성에 의한 당연한 결과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은 그 다의성과 불명확성 때문에 그 필연성에 관해 설명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전혀 자연스럽지가 않고, 허무주의의 위험을 안고 있기는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은 규범화되지 않는 자유로움, 포용력, 가벼움 에 힘입어 앞으로도 한참 대세를 이루지 않을까 싶습니다.


    미술(fine art)의 정의에 대해, 미美라는 것도 무척 상대적이고 시대적인 개념이 아니던가요. 중세에는 그리스 로마 조각의 육체미가 추악하다고 여겨 여기저기 이파리로 덮어 땜질을 했던 것이고, 지금 우리 눈에 너무나 매혹적으로 보이는 들라크루와 같은 낭만주의도 그 감정적 격렬함 때문에 아름다움과 거리가 멀다고 여겨졌더랬습니다. (낭만주의때부터 醜도 美 의 일부로 생각했다니 재미있지 않습니까.) 오늘날과 비슷한 의미의 "fine art"라는 개념이 사용된 것은 19세기에 들어와서였고, 그 이전에는 수공예나 기술 같은 "techne"의 의미가 더 강했다고 합니다.


    "craftmanship"이 작가의 생명이라는 데에는 동감입니다. 하지만, 시대정신이 변하듯 장인정신 역시 변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현대에 와서는, 기발하고 개성 있는 창의성 여부가 진정한 craftmanship의 지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말입니다. 마치, 그리스 로마시대의 심미안으로 중세미술을 볼 수는 없듯이, 사상과 양식이 바뀌었는데 고전의 기준을 그대로 적용시키는 건 어쩐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건 좀 더 고민해 봐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미술평론이 쓸데없이 어렵다는 점에는 동감입니다. 작품과 유리되어서 저혼자 어려운 평론은 정말 문제라고 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떤 평론의 난해함이 쓸데 있느냐 없느냐는 문제는 예컨대 영화에서 꼭 그 장면에 베드신을 넣어야 했었나 아닌가 하는 문제만큼 미묘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현대미술에서는 내용도, 양식도 없다 보니 얘기할 게 주로 철학밖에 없는데, 철학이라는 것이 쉽게만 쉽게 얘기하다 보면 미묘하고 다층적인 의미를 놓치는 위험이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지나치게 단순화한 글은 중요한 오해를 일으킬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글, 그것은 어느 평론가든 종국에 도달해야 할 경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 win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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