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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도시들 (Le Citta Invisibili)

posted Feb 07,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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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도시들 (Le Citta Invisibili)

- Italo Calvino, 민음사

 

    home이라는 영어단어에 딱 맞아 떨어지는 우리말은 없다. 경우에 따라서, home은 ‘가정’이나 ‘근거지’라는 추상명사도 되고, ‘집’이라는 보통명사도 된다. 이 말은 역으로, 우리의 ‘가정(家庭)’에 꼭 들어맞는 영어단어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말에서 ‘가족’(사람)과 ‘집’(장소)의 중간쯤에 자리잡은 ‘가정’은 장소 보다는 관계에 치우친 단어다. 반면에, 영어에서 'family'(사람)와 ‘house'(장소)의 사이에 존재하는 'home'이라는 단어 속에는 인적 요소보다는 장소가 구현하고 있는 구체성이 더 많이 담겨 있다.

 

    우리에게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중요한 만큼이나, 서구인들에게는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지는 장소에 담긴 뜻이 중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서구적 정신의 요체는 합리성이라고들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공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 공간지각력, 또는 耐航性(navigability)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서양에서 작도법이 먼저 발전한 비밀의 근원도 거기에 있는 것은 혹시 아닐런지.

 

    서구의 영화들 중에는 특정한 공간/장소가 체화하는 의미를 소재로 하는 것들이 많다. 얼른 생각해 봐도, ‘Holiday Inn’, ‘New York, New York’, ‘Sunset Boulavard’, ‘Howard's End’, ‘Waterloo Bridge’,  ‘Blame on Rio’, ‘Trip to Bountiful’, ‘On Golden Pond’, ‘Paris, Texas’ 등등, 여러 편이 떠오른다. 이 영화들에서 장소는 주연배우들과 거의 맞먹는 비중을 가진 주인공들이다.

 

    ‘미워도 다시 한번’에서 ‘친구’에 이르기 까지, 우리 영화들은 대체로 관계지향적이다.  장소를 제목으로 삼고 있는 ‘길소뜸’이나 ‘강원도의 힘’ 같은 영화도 장소는 그저 제목일 뿐이고, 영화의 촛점은 등장인물들의 관계에 맺혀져 있다. 그 점은 이웃 나라들도 별다르지 않으니, ‘重慶森林’이건, ‘東京の物語’건 제목에 표기된 장소가 특별히 드러내는 뜻은 적다. Marianne de ma jeunesse(나의 청춘 마리안느), 'Amarcord(나는 기억한다)‘, ‘The Others' 등 처럼, 제목과도 상관없이 장소가 주인공 역할을 하는 서구 영화들이 여러 편 있는 점과 대비가 된다고 할까.

 

    미하엘 엔데의 ‘자유의 감옥’, 또는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 같은 저서들은 특정한 장소에 얽힌 사연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간 그 자체’에 대한 깊은 사색을 담고 있다. 이런 글을 우리나라에서 찾아보기는 어렵다. 공간이라는 소재가 우리 생각의 몸뚱아리에 그만큼 잘 맞지 않는 옷이기 때문이 아닐까, 라고 짐작해 본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굳이 분류하면 환상소설에 속하겠지만, 이 글은 환상소설이라는 장르 속에 가두어둘 수 없을 만치 특이하다. 뭐든지 칸을 질러 구분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라면, 차라리 소설과 시의 중간 어딘가에 놓아야 할 책이다. 원제국의 제왕 쿠빌라이 칸과 마르코폴로가 도시에 관해 나누는 가상의 대화들은, 아름답다. 가슴 속이 환해질 만큼. 이 책은 드물게 발견된 시조새의 화석처럼, 시와 소설이 서로에게 맞닿아 있는 연결고리를 드러내 보여준다.

 

    조금만 마음을 써보면, 공간은 시간 못지않게 마법적인 신비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당연시 여기는 도시라는 공간은, 실은 인간사회가 진화해온 흔적을 한가득 담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진화가 어느 상태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징표다. 도시가 갈수록 복잡하고 정교한 공간이 되어가고 있는 현대에는 더더욱, 인간이 도시를 만드는 만큼이나 도시가 인간을 만든다. 그리고 그 도시들은 하나같이 같은 얼굴을 가지고 있으면서, 제각각 다른 표정을 짓고 있다. 도시는 나를 담고 있지만, 나는 내 속에 도시를 담고 있기도 하다. 우리는 도시를 걷고 보고 만지며 살아가지만, 도시의 전모를 마음속에 그려보려 하면 어느새 도시는 보이지 않는다. 왜 그걸 진작 몰랐을까?

 

    1923년 쿠바에서 태어난 이탈로 칼비노는 자기 가족의 고향인 이태리에서 거의 평생을 보내며 활동했다. 그는 독일 점령 치하에서 반파시스트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다가, 비밀리에 공산당에 가입한 후 공산당 기관지에 글을 썼다. 1956년 소련의 헝가리 침공으로 회의를 느낀 그는 공산당을 탈당하고, 미국을 방문했으며, 뉴욕에서 만난 아르헨티나 여성과 1964년 결혼을 했다. 그 후 그는 파리에서 롤랑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등과 교분을 쌓으며 세계 문필계의 주목을 받았다. 모험적인 작가로 명성을 누린 그는, 1985년 9월 62세의 일기로 이탈리아의 유서 깊은 한 병원에서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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