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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posted May 0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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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키 아타루 저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2012, 자음과 모음

 

일본의 철학자 사사키 아타루(佐々木中)는 1973년생이다. 2008년의 저서 <야전과 영원>으로 평단의 주목을 받았고, 같은 해에 이 책을 출간했다. 텍스트를 읽는 행위의 치열함을 이처럼 철저히 묘사한 다른 책이 있을까 싶다. 독서를 좋아한다면서 책의 주화입마에 빠져든 사람을 얼마나 많이 보았던가. 과연, 읽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아타루는 이 책에서 문학의 시대가 끝났다며 성급한 종말론에 빠져드는 호들갑에 관해서도 따끔한 일침을 놓는다.

 

“이제 막 시단에 새로이 등장한 폴 발레리가 스승으로 우러러보던 스테판 말라르메에게 詩作의 충고를 구하는 편지를 쓴 적이 있습니다. 말랄메는 어떻게 답장을 썼을까요? ”유일한 참된 충고자, 고독이 하는 말을 듣도록“이라는 것이었습니다.” p17

 

“현재 대부분의 사회과학이나 심리학적인 지식을, 그것도 윙서 강림한 것 같은 그런 지식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비평가’들은 ‘모든 것’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또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언제 무엇에 대해서도 재치 있는 코멘트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초조감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리고 ‘전문가’들은 ‘한 가지에 대ᅟᅢᇂ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환상에 매달립니다. 결국은 둘 다 환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그드른 이 환상에 대한 신앙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벗어나려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정신분석가 자크 라캉이 말하는 거서럼 거기에는 ‘향락’이 있기 때문입니다. 라캉 자신의 말을 빌리자면 가장 ‘비참한’ 향락인 ‘팔루스Phallus적’ 향락이 말이지요.... 굳이 말하자면 그들은 ‘전체주의적’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p24

 

“지도 없이 이국의 숲을 비틀거리며 방황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발밑에서 나뭇가지가 툭툭 부러지는 소리를 불안한 마음으로 들으며, 문득 숲에서 요란한 소리와 함꼐 날아오르는 새들의 날갯짓에 허둥댑니다. 창피하고 어쩐지 불안하며 한심합니다. 하물며 고통스럽기까지 합니다. 외부의 기준이 아무것도 없다는 건, 요컨대 다른 사람이 보면 아무 일도 하고 있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다는 건, 용서받지 못할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죄책감 비슷한 감정에 시달리게 합니다.”p28

 

“들뢰즈는 철학이란 개념concept의 창조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개념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애초에 ‘잉태된 것conceptus’이라는 뜻입니다. ‘개념으로 한다, 개념화한다conception’라는 말도 ‘임신conceptio’이라는 말에서 유래합니다..... 구성원을 멤버라고 하는데, 이것은 애초에 四肢membrum라는 의미입니다.”p32-33

 

“번역이란 철저한 독서입니다. 한 자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벌거벗은 ‘읽기’의 노정입니다.”p39

 

“서점이나 도서관이라는 얼핏 평온해 보이는 곳이 바로 어설프게 읽으면 발광해버리는 사람들이 빽빽 들어찬, 거의 화약고나 탄약고 같은 끔찍한 장소라고 느낄 수 있는 감성을 단련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p41

 

“藝와 芸는 의미가 정반대입니다. 藝는 초목을 심는다는 뜻입니다. 芸는 풀을 베고 잡초를 뽑는다는 의미입니다.”P45

 

“로빈슨은 해변에서 발자국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놀랍니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있는 건가? 아니, 내 발자국인지도 모른다. 나는 우스꽝스럽게 자신의 발자국에 겁먹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음 날 또 그 장소에 가봤더니 발자국은 말끔히 지워져 있습니다. 무슨 일일까요? 이것은 ‘혼자 본 것은 사실 본 것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뭔가 확실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여러 가지 봐도 거기에 그 확실성을 공유해주는 타인이 없습니다. 그 타인이 그 확실성을 부정했다고 한다면, 중립적인 입장에 서줄 제3자가 필요해집니다. 그러나 무인도이니 그런 사람도 바랄 수 없습니다. 자기 이외의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자신의 지각이 자신의 의해서만 보증된다. 그것은 사실 지각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진 광경과 자신의 망상을 구별하는 선이 갑자기 긁혀 점선처럼 되었다가 완전히 사라져버립니다. 이렇게 하여 문득 공포가 느껴지는 것입니다. 무의식의 공포가.” p53

 

“책이라는 것은 한 장의 종이를 여러 번 접고 재단하여 만듭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이 접어 ‘책’이 되면, 급하게 한 장의 종이로 만든 문서나 두 장으로 접어서 펼친 서류와 달리 몇 번 읽어도 알 수 없게 됩니다. 몇 번 읽어도, 몇 번 눈을 집중해도 모든 지식을 자기 것으로 했다는 확신이 별안간 완전히 사라져버립니다. 신기한 일입니다만 이것은 사실입니다. 반복합니다. 책은 읽을 수 없습니다. 읽을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책’으로 만들자마자 몇 번 읽어도 알 수 없게 됩니다. 그런 책만이 책입니다.” p85

 

“칸트가 말하길, ‘법의 적용 방법을 정한 법은 없다.’ 어느 사건에 어떤 법을 어떻게 해석하여 적용하면 좋을까요? 법 자체에는 이것이 쓰여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무척 곤란합니다. 법이 있으면 안심이라고 생각했는데, 법이라는 것의 본성에서 볼 때 법의 운용 방법 자체를 법에 적어놓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지요. 이는 ‘법에서의 준거 공포’라고도 해야 할 문제로 무척 중요한 일입니다.... 어쨋든 법을 어떻게 적용할지, rmEO의 기준이 되는 것은 무엇인지 하는 물음에 루터파 법학은 ‘양심’이라고 대답한 겁니다. 재판관의 양심적인 판단이지요. 서구의 현행법이 루터파에 가장 많이 빚지고 있는 것이 이 부분입니다. 법을 구체적인 사례에 ‘공정하게’ 적용한다는 것은 ‘양심에 따라’ 판단한다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p101-102

 

“책을, 텍스트를 읽는 것은 광기의 도박을 하는 일입니다.” p104-105

 

“혁명은 폭력으로 환원되는 것이 아닙니다. 폭력이 선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근거를 명시한 텍스트가 선행합니다. 텍스트를 다시 쓰는 것이 선행하는 것입니다.”p110

 

“자신이 하는 일을 종교라고 생각하는 종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종교 법인인 것에 안심하고 인가를 받아 세제상의 우대 조치라는 은혜에 만족하며 기뻐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p132

 

“이슬람을 고지하는 이 계시는, 전혀 읽을 수 없는 남자와 근원적으로 읽을 수 없는 책 사이의 관계입니다.... 무함마드는 최후의 예언자입니다. 이제 예언자는 나타나지 않고 계시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의 어머니’는 두 번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구히 사라져 잊히고 맙니다. 무함마드가 읽는다는 것, 이는 ‘책의 어머니’에 대한 접근을 소진시키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읽는다는 것은 읽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읽을 수 없다는 것은 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책 같은 걸 읽을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책의 소실, 읽는 것의 좌절.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빛나는 책’이라 불리는 코란(‘읽는다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놀랄 만한 역설일까요? 그렇지도 않겠지요. 우리는 처음부터 말했습니다. 책은 읽을 수 없습니다. 읽을 수 있다면 미쳐버립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그것만이 읽는다는 것입니다.”p145

 

“루터 또는 무함마드에게 ‘읽다’라는 것은 무엇을 전제로 한 것이었을까요? 세계와 자신과 책이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생생한 異物로서 타자성으로 분리되고 구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책’을 읽는 자신이 미쳤는가 아니면 세상이 미쳤는가 하는 물음이 가능해집니다. 이렇게 당연한 일이 원리주의자들에게는 알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런 원리주의적 사고의 함정은 얼마든지 널려 있습니다. 지금도.” p168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이 종식된 무렵이니까 5세기쯤일까요?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로, 유럽인의 마음을 담담하게 압박하고 있던 두려운 말이 있었습니다. ‘세계는 늙었다Mundus senescit.’ 로마의 영광은 사라졌고, 그렇다고 게르만은 문화를 담당할 힘이 없다.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은 쇠퇴하고 이제 우리는 지옥에 떨어지려 하고 있다. 이제 세계의 종말이 오려 한다. 그들의 신앙에서 보면, 이런 비탄은 진지한 것이었다는 걸 의심할 수가 없습니다.” p254

 

“12세기에 해석자 혁명이 일어났다는 건, 세계의 종말이 오지 않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 세계가 끝나지 않잖아. 어쩌면 2000년까지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그럼 어떻게든 살아남는 방법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겠는데, 하고 말이지요.” p256

 

“문자는 그것보다 젊습니다. 문자라는 게 실로 젊은 문화이고, 하물며 문학은 이상할 정도로 젊은 예설이라는 것입니다. 고작 5000년입니다.”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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