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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론 몇 권

posted Jul 2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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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선생은 <축소지향의 일본인>에서 "일본에 하루 머무는 외국인은 아키하바라에 가서 전자제품을 사고 일주일 머물면 후지산을 보러 가고 한달 넘어 체류하면 일본론을 쓴다고 할 정도니 전쟁 전에는 그만 두더라도 전후 일본에서 나온 일본론 저술이 1천권 이상이라 해도 이상할 게 없다. '국화와 칼' '아마에의 구조' '종적인 사회' 등 그 책 제목에서 유행어가 된 것도 있고 거꾸로 '일본주식회사' '이코노믹 애니멀' 등 떠돌아다니던 유행어가 책의 주제로 둔갑하는 일도 적지 않다"고 적었다. 일본은 일본론을 쓰고 싶게 만드는 묘한 나라다. 뭔가가 손에 잡힐 것 같은 특이한 성격을 지닌 공동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 와和! 일본
성호철 지음, 나남 2015

조선일보 성호철 기자의 일본인론이다. 명민한 기자가 성의를 가지고 애쓴 흔적이 독자에게 이웃 나라에 대한 또렷한 인상을 남기는 성과로 남는다. 일본에 관한 수많은 책들에 한 권을 더한 입장에서 보자면, 입안에 맴돌던 얘기를 누군가가 해줄 때 느끼는 통쾌함 같은 것이 있었다. 저자는 고교시절 시인 지망생이었다더니, 과연 사물의 뒷면을 살펴보는 데는 문인적 상상력이 유용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한편, 이 책은 야마모토 시치헤이 저 <공기의 연구>를 한국 독자의 눈높이에 맞추어, 그리고 2010년대의 시의성을 갖추어 설명한 해설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
저자는 여러 곳에서 야마모토 시치헤이의 <공기의 연구>를 언급하고 있다. <공기의 연구>를 저술한 야마모토 시치헤이의 시각이 가능했던 것은 그가 '이사야 벤다산'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하고 스스로 일본계 유태인이라고 주장할 정도로, 어떤 의미에서는 "일본사회에서 내놓은"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성호철 기자의 <와! 일본>은 야마모토 시치헤이의 <공기의 연구>를 한국 독자들의 눈높이에서 잘 풀어 설명하는 해설서 역할도 겸하고 있다.

"...2014년, 다시 도쿄에 갔다. 게이오대학 방문 연구원으로 1년간 머물렀다. 다시 일본 열병이 들었다. 마흔이 넘어 든 열병은 열감에 잠 못 들어 하루키를 집어 드는 스무 살 청년 때와 달랐다. 끊이지 않는 미열의 밤엔 야마모토 시치헤이의 일본론인 <공기의 연구>를 읽었다. 세상이 모두 아는 일본을 나만 모르는 것인 양 닥치는 대로 읽고, 눈이 충혈되도록 고민하고, 다음날 일본인 지인을 만나 물어볼 질문을 생각하며 설렜다." - 저자소개

"예컨대 '학교에선 친구에게 편지를 전달해선 안 된다'라는 소학교의 룰(가정통신문에 이런 내용을 고지하는 학교가 있음)이 있다. 룰을 모른 한 학생이 "네가 좋다. 친하게 지내자"는 내용의 편지를 친구에게 준다. 주변의 눈은 이를 보면서 반응하기 시작한다. 다른 학생이 이를 질서를 깨는 행위로 보아 선생님한테 고자질을 하고, 선생님이 이를 확인 후 그 학생에게 주의를 준다. 이때부터 '학교에서 친구에게 편지를 주는 행위'는 메이와쿠로 정해지며, 이를 어기는 이는 교실의 '와'를 해치는 이가 되고, 반복되면 이지메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반대로 처음 이런 일이 생겼을 때 다른 학생도 이것을 묵인하고 따라하면서 같은 일이 반복되면 이 같은 행위는 더는 메이와쿠가 아닌 질서 안의 행동이다. 누구도 이런 행동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학교의 정해진 룰을 넘어선 교실 안의 공기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런 질서가 구축되는 과정에서 하나의 교실 '와'가 만들어진다." pp21-22

"일본에는 세켄世間이란 말이 있다. 사회의 시선이라고 할까, 늘 이를 의식하며 살고 있다. 자신의 욕망과 행동을 제약한다. 한국식으로는 눈치를 본다고 할까. 항상 주변의 공기를 읽는다. 슬픈 일이 닥쳐도 너무 과도하게 울지 않는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이다." - 최보식이 만난 사람 - NHK 출신 후지모토 도시카즈 경희대 초빙교수 인터뷰 (조선일보 2011.3.21, 33면)

2.

르완다에 근무하는 한 유럽 외교관은 나에게 르완다인의 특징으로 (1)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2) 권위에 복종한다 (3) 다수의 추세를 거스르지 않는다는 점을 들면서, 자신이 보기에는 이러한 점이 일본인들과 유사해 보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1994년 르완다 제노사이드는 하나의 거대한 불가사의다. 모든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를 궁금해 한다. 그 복잡한 미궁 속으로 들어가볼 수 있는 많은 열쇠 중 하나는 관동대지진이나 남경학살 등에 대한 일본인의 의식을 들여다보는 데서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남북통일 이후 우리는 르완다를 비롯한 몇몇 국가가 가진 경험으로부터 사회통합과 국민화합을 위한 교훈을 도출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목적을 위해서도, 르완다 제노사이드의 원인과 경위를 깊이 들여다보는 것은 필요하다.

"최악의 사례여서 언급하기 조금 과하지만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사건을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해석이 가능하다. 예의 바른 일본인 (군인이 아닌 민간인)이 어떻게 갑자기 죽창을 들고 조선인을 색출해 이유 없이 두들겨 패고 6천 명 이상을 죽이는 사건이 가능했을까? 차 한 잔 마실 때도 그런 번거로운 권유와 거절을 반복하는 일본인이 말이다.
  관동대지진으로 '안의 세계'의 다수가 일제히 입은 피해는 '안의 세계'를 흔드는 나쁜 행동이었다. 일부만 죽는 '나만의 피해'였다면 균일한 개개인은 "내 피해를 떠벌리면 이는 '안의 세계'에 대한 메이와쿠'라며 분노의 표출을 엔료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만의 피해'가 아닌 '안의 세계'가 인정한 다수의 피해이자, '안의 세계'의 피해였기 때문에 균일한 다수는 일제히 분노를 표출했다. 물론 분노가 '지진을 일으킨 자연'을 향할 순 없는 노릇이다. 대체제가 필요했다. 그 분노는 결국 '안의 세계'에서 배제된 존재를 향했다. 그것이 당시 도쿄에 거주하던 조선인이었다. (생략) 당시 '조선인을 죽여야 한다'는 하나의 메센이었으며, 이를 따른 조선인 살해는 다테마에였다. 다테마에의 광기다. 다테마에는 메센을 따르는 행동이다. 일부 일본인은 '왜 조선인을 죽여야 하지?'라는 의문을 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혼네를 숨기고 다테마에로 조선인 살해에 직.간접으로 참여했거나 묵인했을 것이다. 문제 제기를 한다면 자신도 '안의 세계'에서 배제돼 조선인과 같은 처지가 될지 모른다는 공포가 있었을 것이다.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대학살이 '혼네의 폭주'라는 설명도 있다. 조선인을 싫어하던 혼네를 예의바른 다테마에가 눌렀는데, 대지진을 계기로 혼네가 폭주해서 뛰쳐나왔다는 식이다. 혼네와 다테마에가 다르다는 전제에선 이런 해석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는 '혼네의 폭주'가 일시적이고 순간적이란 의미를 내재한다. 냉정을 찾은 일본인은 다시 다테마에의 예의바른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란 기대가 깔려 있다. (생략) 하지만 이를 '혼네의 폭주'라는 식의 일시적 사건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조선인에 대한 차별의식과 그들을 위협으로 느끼는 의식이 '안의 세계'의 메센으로 이미 존재했었고, 조선인 대학살 후에도 이런 인식은 한동안 이어졌다. 조선인에 대한 메센 자체가 변화하지 않는 한 낮은 수준의 약한 차별(무시와 경멸의 발언)은 지속된다. 일본이란 이웃과 지내기 위해 이들의 메센을 알아야 하는 이유다.
  관동대지진에서 학살을 자행하거나 방조한 일본인은 죄의식을 느낄까? 현재 일본인의 태도를 보면 침략 전쟁에 대한 사죄를 주저하듯 관동대지진의 조선인 대학살에 대해서도 사죄하는 마음은 찾기 어렵다. 일본인이 죄의식을 못 느끼는 이유는 '안의 세계'를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스스로 믿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안의 세계'를 위협하는 행위는 악이며 죄다. '안의 세계'를 지키는 모든 행위는 그 목적만으로 죄가 아닌 정당한 행위가 된다. '안의 세계'를 사는 일본인의 의식 세계는 밖의 사람들이 들여다보기엔 이해하기 어려운 저 너머에 있다." - pp85~88

3.

성호철 기자가 말하는 일본 사회에서의 '눈目의 힘'에 관해서 미쉘 푸코의 <The Eye of Power : Panopticon>과의 접점을 설명할 수 있겠는지를 고민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만약 눈의 힘이 일본 너머로 일반화할 수 있다면, 일본인의 태도에 관한 분석을 북한인들의 체제에 관한 (표면적) 순응에 관해 적용할 부분은 없는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4.한.일의 세대 구분

이 책은 오다 토시오가 2006년 책 <6세대일본>에서 현재의 일본인을 역사, 세대인구, 부모세대 등 3가지를 기준으로 분류한 6가지 구분을 소개한다. 우리나라도 (1) 1945년까지의 해방전 세대 (2) 1953년까지의 전쟁세대, (3) 그후 이른바 386세대, (4) 70년생 이후의 올림픽 이후 세대, (5) 80년대생 이후 전교조 교육 세대(이해찬 세대 포함)와 그 이후의 불황 세대로 구분이 가능하겠는데, 그 구분이 대략 20년의 낙차를 두고 일본과 유사성을 띤다는 점이 흥미롭다.

"전쟁 참여 세대 : 1926년까지 출생해 태평양전쟁 때 20대 이상의 성인으로 참전했거나 그 시기를 보낸 세대들이다. 메이지유신 때 '덴노 중심의 일군만민론'을 배우고 '서양의 군사와 문물을 배워, 제국주의 열강 대열에 올라서야 한다'는 메센 속에서 자라났다. 어른이 됐을 때는 배운 대로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 나갔다. 자신이 직접 총을 들고 '와의 세계'를 지켜야 했다. 메이지유신 세대의 선후배이자 부모 자식으로서 메이지 유신을 계승한 자부심 높은 세대다. 하지만 패전과 함께 황폐화된 조국을 목도했고 좌절을 경험한 세대다.
  전쟁을 겪은 세대: 1927~1945년 출생으로 태평양전쟁 때 유년기를 보낸 세대로 전혀 딴판이 두개의 교육을 경험했다. 메이지유신 체제의 교육을 받다가 1945년 패전과 함께 앞의 교육이 전면 부정되었다. '안의 세계'도 전혀 딴판이 되었다. 이른바 '자학사관'(연합군이 침략 전쟁을 행한 일본과 일본인이 나쁘다는 교육을 일본인에게 심었는데 우익들은 이를 자학사관이라 주장한다)의 교육을 받은 것이다. 딴판인 교육에 혼란을 겪은 것이다. 유년시절엔 미군의 공습을 경험했으며 성인이 되어 고도 성장기를 이끄는 주역이 되었다.
  단카이 세대 : 1946~1949년 출생으로 '전쟁 참여 세대'를 부모로 둔 베이비붐 세대이다. 이들은 앞서 '참략 전쟁을 행한 일본, 일본인이 나쁘다'는 교육을 받았으며, 중고등학교 때인 1964년 도쿄올림픽 개최와 함께 패전국에서 선진국으로 복귀하는 것을 보았다. 또한 베이비붐 세대로서 많은 인구로 줄곧 주목받는 세대였다. 일본의 세대 중 상대적으로 반미 정서가 강하며 버블 시기를 향유했다. 사회에 가장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면서도 사회의 과실은 고스란히 챙긴 세대다.
  중간에 낀 세대 : 1950~1969년 출생으로 베이비붐 이후의 세대다. '전쟁을 겪은 세대'를 부모로 둔 이 세대는 선배 세대인 단카이 세대의 좌파 운동을 보면서 동참하기도 하고 냉소하기도 했다. 단카이 세대가 줄곧 주목받을 때 소외되었던 세대이기도 하다. 버블 시기를 단카이 세대와 함께 누렸고 해외관광에 눈을 뜬 세대이기도 하다. 해외에 나가 달라진 '밖의 1세대'의 대접을 누렸다. 과거사에 대한 부채의식이 없으며 친미 의식이 상대적으로 강하며 독자적인 부국강병 의식도 강하다.
  단카이 주니어 세대, 그 이후의 세대 : 단카이 주니어 세대는 1970~1975년 출생으로 '단카이 세대'를 부모로 둔 '제 2의 베이비붐 세대'이다. 그 이후의 세대는 1976년 이후 출생으로 패전세대의 손자, 손녀 세대이다. 이들은 버블 시기에 유년기를 보냈지만 어른이 되었을 땐 '잃어버린 20년'이라는 긴 경기 불황을 견뎌야 했다. 흥청망청의 버블 시기와는 다르다. 일부(1980년대 후반 이후 출생)는 '유토리' 교육을 받았는데 이른바 '유토리 세대'는 학력과 자질이 떨어진다는 사회의 평가를 받기도 한다."

"'아사히적 사고 vs. 애국론'과 '혐한 vs. 한류'라는 두 메신 전쟁에서 중요한 열쇠는 40대 초반이 된 '잃어버린 세대'다. 이들은 예전 단카이 세대처럼 친절하진 않다. 넘쳐나는 부를 경험하지 못했으며 그렇다고 전쟁의 부채를 짊어질 생각도 전혀 없다. 비정규직 세대이자 앞으로 일본의 초고령화 짐을 떠안아야 하는 좌절과 불만의 세대이기도 하다. 한국의 '88만원 세대', 유럽의 '1,000유로 세대' 등과 마찬가지다. IT 진화와 글러벌 물류의 발전이란 경제 효율성 극대화에 의해 '사회의 부를 나눠 가질 권리'를 빼앗긴 세대다. '밖의 세대'는 일본으ㅟ '잃어버린 세대'와 만나야 한다. 이들은 일본 '와의 세계'의 균열이다. 균일성을 더 맞출 수 없는 경제적 환경에 빠졌다.  이들은 균일성 의식을 여전히 따르지만 실생활에서 부의 격차를 절감하며 점차 이를 외부를 향해 분노로 방출한다. 그것이 때론 혐한이 되기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 혐한은 '와의 세계' 균열의 한 증상이다. '잃어버린 세대'에게 한국은 외부에 있는 '국가'다. 앞선 세대와 같이 무의식 속에서 한국을 일본의 일부로 보거나 하지 않는다. 세계의 부를 놓고 경쟁하는 외부의 국가이며, 더는 시혜의 대상도 아니다. 현재 일본을 휩쓰는 혐한 바람을 타고 큰 고민 없이 한국을 싫다고 말한다. 역으로 말하자면 20세기 과거사와 결별하고 국가와 국가로서 정상적인 친교를 맺을 수 있는 오롯한 '남'이란 것이다. 한국, 중국 등 이웃 국가들이 눈여겨 보고 다가서야 할 세대는 이들 '엃어버린 세대'인 것이다. '부의 향유 세대'의 리더십은 '잃어버린 세대'를 어떻게 이끌어갈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반대로 이들이 평화시대를 바란다면 일본이 과거와 같은 집단주의 폭주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340~341

5. 전쟁 책임

저자는 에니메이션을 주로 예로 들었지만, 일본인이 스스로를 피해자로만 조망하는 사례로 치자면 영화나 드라마도 예외가 아니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8월의 광시곡>, <꿈>, 오즈 야스시로의 <꽁치의 맛>, 여러 번 NHK 드라마로 다시 만들어지고 있는 시바 료타로의 <언덕 위의 구름> 같은 것들이 이러한 사실을 드러낸다.

"일본인의 마음 속엔 '침략자인 일본군이 누군가를 죽였다'는 이미지가 별로 없다. 줄곧 일본열도에 살았던 대다수 일본인의 입장에서 침략 전쟁은 '미구느이 공습을 받은 전쟁'이었다. 그렇다고 패전 이후 점령군으로 들어온 미군을 악으로 볼 수도 없었다. 미군은 '패전한 일본군이 악'이었다는 메센을 강제했고, '안의 세계'는 이를 받아들였다. 그 결과가 이런 애니메이션에 나타나는 메센이다.
  일본 에니메이션은 '전쟁의 참혹함'을 다루면서 '일본인이야말로 정말 가장 큰 전쟁의 피해자'라고 말한다. 실제로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에 죽은 일본인은 8백만 명이 넘는다. 반면 일본군이 한국과 중국에서 서민을 학살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일본인 피해자 메센을 믿는 일본인으로선 식민지 지배에 대해 일본을 비판하는 한국인을 상대로 진심어린 사과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메센 속에서 전쟁으로 더욱 고통받는 일본인이 식민지 지배의 울타리에서 직접 전쟁의 참화를 겪지 않은 한국인에게 사죄하려니 자꾸 갈등이 불거지는 것이다." 188

"정확하게 집계되진 않지만 전쟁 당시 일본군이 자행한 민중 학살은 542만 4천 명( R.J. Rummell의 추정) ~ 2천 36만 5천 명(Werner Gruhl의 추정)으로 추정된다." 190

6. 기타 인상적인 부분 인용

한 번도 외부의 질서가 내부의 질서를 간섭한 적이 엇는 독특한 역사를 가진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안의 세계'가 하나의 절대적 가치와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은 외부의 문물을 받아들일 땐 오히려 도움이 된다. 내부의 절대적 준거가 있기 때문에 외부의 문물이 들어올 때 이를 자기네 방식대로 이해하고 흡수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것이다. 외부 문물이 내부 준거를 흔드는 힘일 때는 반감으로 흐르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안의 세계'를 강화해 주는 중요한 자극이다. 폐쇄적 섬의 발전을 위해선 외부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107

일본인의 삶에 대한 태도에 지진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자신이 발을 딛고 선 땅이 흔들리는 상황이 반복되면 땅을 절대적인 존재가 아닌 상대적인 존재로 인식한다. 삶의 공간이자 위험한 파괴자인 땅이 언제든지 생명을 앗아갈 수 있음을 한 달에도 서너 차례씩 깨닫는다. 자기 자신의 생명이 절대적인 가치라는 인식이 약화되는 것이다.... 자신의 생명이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라는 인식은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에게 부여하기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찾으려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의미를 잃으면 개별 개체로서도 의미를 상실한다.
  사람이란 뜻으로 쓰는 '닌겐'이란 표현이 바로 일본인의 의식 단면을 보여준다. 일본의 심리학자인 에노모토 히로아키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메센의 구조>에서 닌겐에 대한 고찰을 했다.... 정신의학자인 기무라 빈은 일본에선 자신을 우선한 뒤 타인과 만나는 게 아니라 사람 간의 관계가 우선하며, 거기에서 자신이 자각되고 타자가 등장한다.... 우리(일본인)는 '개인'으로서 존재하지 않고 '사람과의 관계'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일본에 과민형 자기애가 많고, 시선공포 등 대인공포가 많고, 상대에게 모든 걸 맡기는 마조히즘적인 자기애가 많은 것과 관련 있다. 112~113

국제비교지표를 바탕으로 한국의 여성가족부가 2012년 조사 발표한 "국민의 다문화 수용성 조사"에 따르면 국민 정체성을 정할 때 '혈통'을 중시한다는 답변이 일본의 경우 72.1%(매우 중요 42.1%, 대체로 중요 30%)로 나타나 스웨덴의 30%(매우 중요 14%, 대체로 중요 16%)나 미국의 56.5%(매우 중요 32.7%, 대체로 중요 22.5%) 등과 비교해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즉, 일본인의 72.1%는 일본 국민들 정할 때 '부모의 피가 모두 일본인어어야 일본 국민'이라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일본에 태어나 일본ㅇ더를 쓰고 일본에서 일하고 세금을 내는 재일한국인은 '일본 국민'이 아니라고 믿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본이 혈통을 중시한다는 건 예상했던 일이다. '반세잇케이'와 같은 사상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일본 뿐만 아니라 한국, 필리핀, 칠레, 베네수엘라 등 많은 나라들이 혈통을 중시한다는 답변이 높게 나타났고, 스웨덴,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위스 등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그럼 독일은 어떨까? 아리안족 우월론에 젖었던 독일이다. 이 조사에서 주목을 끄는 대목은 '독일-폴란드', '일본-한국'이다. '아리안족 우월주의'와 '반세잇케이'라는 혈통주의를 앞세워 침략 전쟁을 감행한 독일과 일본 그리고 두 나라의 이런 인종우월주의로 참담한 민족적 피해를 입은 폴란드와 한국의 경우다. 한국과 폴란드는 '혈통'을 국민 중체성으로 삼는 비중이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한국은 86.5%(매우 중요 49.7%, 대체로 중요 36.8%)와 폴란드는 84.7%(매우 중요 48.5%, 대체로 중요 36.2%)였다.
  폭행한 이보다 피해를 입은 자의 기억이 보다 오래 가는 법이다. 침략에 대한 경계심을 푸는 데는 보다 오랜 시간이 들어갈 것이고 피해의식은 곧 '민족적 자존심'의 훼손과 이에 대한 복원 의식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자민족 우월주의'로 흐를 위험성을 쉽게 추정할 수 있다. 필리핀, 아일랜드 등 현대사에서 외국의 침략으로 민족적 자존심을 훼손당한 나라일수록 이같이 혈통 중시 비율이 높게 나왔다. 118~119

메센은 여론과 유사하지만 '행동지침'이란 점에서 다르다. 여론에도 '침묵의 나선형 이론'과 같이 소수가 입을 다무는 경향이 있다. 다수의 공기에 의한 압박이 존재한다. 하지만 소수는 토표장에 가서는 자신의 생각대로 투표한다. 메센은 행동지침이다. 한 번 정해지면 구성원에게 메센에 따라 행동하게 하는 힘까지 갖췄다는 측면에서 다르다. 즉, 믿게 만든다.  '안의 세계'에서 모두 '균일하다'는 메센과 다른 행동은 메이와쿠로 여겨지며, 메센에 동의하지 않는 구성원은 자신의 행동과 발언을 조심해야 한다. 남에게 자신의 생각을 들킬까 두려워해야 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입장을 바꿔 메센의 입장에 서서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변화를 낳는다. 배제의 공포는 구성원에게 메센이 주는 메시지를 자기 자신에게 내재화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단순이 입을 다무는 게 아니라, 자신이 메센에 동조화하고 이를 따르는 것이다. 162

皆と一緒なら赤信号も怖くない。"모두 함께 건넌다면 빨간 신호도 무섭지 않다"는 뜻이다. 169

■ 일본 열광
김정운 지음, 프로네시스, 2007

'휴테크', '여가학'으로 유명한 김정운 박사의 저서다. 그는 명지대학의 교수였으나, 소모적인 일상에 회의를 품고 교수직을 버리고 일본을 방문했다. 그는 일본 문화를 '도덕적 마조히즘'으로 본다. 이웃나라를 좀 더 잘 알 필요가 있다는 그의 지적은 합리적이고, 갈채를 받아 마땅하다. 그는 일본문화의 일본적 뿌리를 찾기보다 유럽 문화의 코드로 일본을 읽는다. 그의 아이디어와 통찰력은 신선하지만, 여행자로서의 1차적 경험을 일반화시킨 그의 주장을 좀 더 치밀한 팩트를 바탕으로 증명하는 일은 누군가 다른 사람의 몫으로 남는다.

"싫어하는 것과 무시하는 것은 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감정이다. 싫어하는 것은 정서적인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실체를 인정하고 인식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무시하는 것은 다르다. 정서적으로도 인지적으로도 일본의 실체를 거부한다는 의미다. 정서적 반감에 의한 인지적 왜곡이다. 이런 식의 인지적 왜곡은 항상 아주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게 마련이다. 자기 문제를 그르치게 이끄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언제나 세상이 온통 못마땅하기만 한 사람에게 인간이란 오직 두 부류뿐이다. 내 편과 네 편. 그는 평생 남에게 무시당하며 실패하는 삶을 살게 되어 있다. 다차원적 인간관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여태 장가 못간 마흔 다섯 살 내 친구 녀석에게 여자란 단 두 종류뿐이다. 예쁜 여자와 못생긴 여자. 장담하는데 그 친구는 평생 장가 못 가게 되어 있다. 세상에는 '팔뚝도 굻고 마음도 푸근한 여자', '몸매가 착한 여자', '눈매가 서늘하고 섬세한 여자' 등등.... 너무나 다양하게 사랑스러운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인지적 왜곡 또한 이런 식의 이분법과 관련이 있다. 일본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친일/반일의 단순 이분법으로 나눠야만 편해지는 집단강박증이 바로 그것이다. 모호하거나 복잡한 입장은 그대로 난도질당한다. 아, 그러나 그런 식으로는 항상 우리만 손해다." 10

"도덕적 마조히즘, 즉 자신을 끝없이 괴롭혀서 상대방의 자발적 죄의식'을 이끌어내는 매커니즘으로 일본을 바라보니 숨쉬기가 상당히 가뿐해졌다. 과연 "현상은 개념이 있어야 이해된다."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반복해서 주장하던 "아는 만큼 보인다"는 주장이 옳다. 따지고 보면, 내게 이 도덕적 마조히즘은 상당히 익숙한 전략이다. 집에서 아내에게 아주 자주 쓰는 전략인 것이다. 부부 싸움의 원인은 내가 잘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목조목 따져오는 아내의 논리에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워지면, 나는 아내의 요구를 수용한다. 그러나 절대 그냥 수용하는 법은 없다. 아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아예 내 생활이 망가질 정도로 오버한다. 상황이 이쯤 되면 괴로워지는 것은 오히려 아내 쪽이다. 결국 아내는 자발적으로 자신의 요구를 포기하게 된다. 허나 요즘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아내가 오히려 이 전략을 쓴다. 당해보니 진짜 견디기 어렵다."  36

"천황 신격화가 남긴 무의식 차원의 흔적을 프로이트의 유대인 해석 틀을 차용해 살펴보자. 개체의 발달이란 정서적으로 독립된 주체 형성의 과정이다. 정서적 분리를 강요당하거나, 자연스런 독립이 강요된 애착관계로 인해 방해받으면, 아동은 타인에 대한 과도한 의존적 성향을 보이거나 그 반대의 성향을 보인다. 성인이 되어서도 아주 특이한 방식으로 대인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특히 성적 욕구 충족의 방시기에 가장 두드러지는 문제가 생긴다. 마조히즘과 사디즘이 그 대표적 형태인 것이다. (생략)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일으킨 전쟁에 대한 기억도 상당히 마조히즘적이다. 일본 텔리베전의 채널을 돌리다보면 2차 세계대전과 관련된 드라마가 자주 나온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해자로서의 일본의 모습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반복하며 강조되는 것은 원자폭탄의 피해나 패전으로 인해 고통받는 모습들뿐이다. 고통당하는 피해자의 모습을 괴로워하며 기억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48~49

"푸치니는 자기 마음대로 동양을 만들어냈다. <나비부인>이 그랬고 <투란도트>가 그랬다. <나비부인>에서는 자기가 원하는 일본과 일본 여자를 만들어냈고, <투란도트>에서는 자기 멋대로 중국과 중국 여자를 만들어냈다. 실제의 동양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서양인들이 제멋대로 만들어내는 동양. 이를 에드워드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이라 정의한다. 오리엔탈리즘의 반대편에는 옥시덴탈리즘이 있다. 이는 동양인이 제멋대로 만들어내는 서양이다. 라부호테루와 음악감상실이 만들어내는 그 '결피의 기호학적 매개'의 내용은 옥시덴탈리즘이다. 그렇게 보면 음악감싱실 라이온이 시부야의 라부호테루 언덕에 있는 것은 결코 부조화가 아니다. 실제 서양과는 다른 서양이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점에서 라부호테루나 '라이온'이나 동일한 과정이 일어나는 곳이다. 음악감상실 라이온에서 예배하는 베토벤은 독일에 실재했던 베토벤과 전혀 다르다. 독일에 13년 살면서 나는 그런 베토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푸치니가 나비부인을 만들어내듯이, 시부야의 음악감상실 라이온은 그들만의 베토벤을 제멋대로 만들어냈다. 우에노 공원 뒤의 연꽃 가득한 연못을 지나, 횡단보도를 건너 몇백 미터를 더 가면 미쓰비시를 창설한 이와사키 이에모토의 저택과 정원이 일반인에게 공개되고 있다. 가을 햇볕이 따뜻한 토요일 오전의 이와사키 저택 정원은 정말 아름다운 여인을 만날 것 같은, 가슴 설레는 곳이었다. 서양식 저택과 그 옆에 붙어 있는 일본 전통 가옥 그리고 서양식 정원 한편에 당구장이 있는 아주 특이한 형태의 정원이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저택과 정원에 대한 설명서였다. 일단 1896년 세워진 서양식 본 건물과 그 옆 당구장에 대한 설명서의 내용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조사이어 콘더가 설계, 영국의 자코비언 양식, 르네상스와 이슬람풍의 모티프, 1층 기둥은 토스카나식, 2층 기둥은 이오니아식, 스위스 산장풍, 아제쿠라풍의 벽, 미국 펜시베이니아의 컨트리하우스 이미지, 이슬람풍 디자인의 타일....'등등. 이렇게 다양한 양식으로 설계된 건물은 도대체 어떤 양식의 건물이라 해야 하는 걸까. 답은 매우 간단하다. 일본식! 근대 이후의 일본 문화는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만들어내는 서양으로 구성된다. 일본의 자기 방식대로 서양 만들기, 즉 일본식 옥시덴탈리즘은 일본 최초의 무도회장이라 하는 '로쿠메이칸'에서 극에 달한다 (생략) 근대 일본은 서양에 의해 만들어졌다. 오늘도 일본은 끊임없이 서양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재생산되고 있다. 서양의 환상에 의해 만들어지는 이 오리엔탈리즘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두 가지 모순된 시선이 동시에 진행된다. 동양을 미개하고 계몽되어야 할 문화로 바라보는 시선과 뭔지 알 수 없는 신비한 문화로 바라보는 시선이다. (생략) 이 사회진화론적 오리엔탈리즘을 다른 동양의 국가들에 적용한다. 일본 제국주의의 시작이다. 정말 학습이 빠른 나라다. 오늘날까지도 일본은 이 사회진화론적 오리엔탈리즘으로 한국과 중국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한다." 81~82

"일본식 전통 여관은 사실 따지고 보면 그리 전통적이지 않다. 단체 여행이 보편화되기 시작한 메이지 시대 이후에 서양식 호텔 문화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문화적 잡총일 따름이다." 262

저자 김정운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일본을 또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이 책을 쓰는 동안 의도적으로 혼자"였다고 한다. 처음부터 남들과는 다른 관점으로 일본을 보는 것이 목표였던 것이다. 독일에 오래 체류하면서 서구문화의 정수를 경험한 저자의 자신감이 빚어낸 이 책의 가장 빛나는 에센스가 일본문화를 옥시덴탈리즘으로 설명한 위의 부분이다. 실은 돈까스며 오무라이스 같은 요리들도 이런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득특한 관점을 따라 일본을 주시한 저자는 그리하여, 다른 길을 통해서지만 "거의" 야마모토 시치헤이가 분석한 결론과 흡사한 아래와 같은 지점에까지 도달한다.

"일본의 개인주의는 개인주의가 아니다. 집단주의라는 전제 속에서만 가능한 개인주의다. 구태여 이름을 붙이자면 '집단주의적 개인주의'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일본에는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집단적 시선이 존재한다. 서로 간섭하지 않고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을 최대한 보장해주는 듯하다. 하지만 그것은 정해진 시선 내에서의 자유일 뿐이다. 그래서 일본의 개인주의는 집단주의적 시선에 대한 반항의 형태를 띠기도 한다. 모든 종류의 대인관계를 거부하지만, 여전히 타인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가는 '히키코모리'와 같은 '운둔형 외톨이'가 그 예다." 150

"아동이 자라면서 자신의 시선과는 다른 시선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 자아를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해석한다. 거울에 비친 자신을 알아보는 시기가 바로 그때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시선과 그것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이 같으면서 다르다는 사실, 즉 시선의 방향이 맥락에 따라 분리된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4세가량이 되면 아동은 추상적 시선, 즉 관점이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마음의 이론(theory of mind)'라고 한다. 타인의 관점으로도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는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심리학자들은 실험으로 이를 증명한다. 길쭉한 초콜릿 상자에 연필을 넣는다. 그리고 아이를 불러 묻는다. "이 안에 뭐가 들어있을까?" 그럼 아이는 대부분 이렇게 대답한다. "초콜릿이요." 초컬릿을 받아먹고 싶어 침을 삼키는 아이에게, 심리학자는 상자 뚜껑을 열어 연필이 들어있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상자 뚜껑을 다시 닫고는, 아이에게 또 이렇게 묻는다. "저기 창밖에 놀고 있는 저 아이에게 이 상자를 보여주고, 이 안에 뭐가 들었느냐고 물으면 저 아이는 뭐라고 대답할까?" 물론 초콜릿이다. 그러나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내 관점과 타인의 고나점을 분리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초콜릿 상자 안을 봤지만 창밖의 아이는 초콜릿 상자 안을 들여다보지 못했기 때문에, 나와 저 아이의 생각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피아제는 이를 가리켜 '관점 전환(perspective taking)'이라고 정의했다. 내 관점과 타인의 관점을 머릿속에서 마음대로 전환할 수 있는 이 관점 전환의 능력은 창의력의 기초가 된다. 창의력이란 현실의 정해진 관점에서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가상의 관점에서 사물을 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내가 오카루의 눈밭에서 '오겡키데스카'를 외치고 영화 <러브레터>의 무대를 찾아다니며 행복해하는 감정이입 또한 관점 전환을 통한 투사의 과정이 있어야야만 가능한 것이다? 158~159

이 부분은 재미있다. 일본 보다도, 우리나라 사회에 결여된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데 더 유용하다. 왕조시절과 식민지 시절을, 심지어 북한을 바라보는 많은 이들의 관점은 마치 "창 밖의 아이에게 이 상자를 보여주면 뭐라고 하겠니?"라는 물음에 "연필이요"라고 답하는 것과도 같기 때문이다. 소설적, 영화적 상상력을 결여한 관객에게 영화를 보여주면 그 영화는 프로파간다 이상의 기능을 해내지 못한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상류층의 문화적 향유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을 고쳐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세금 많이 내고 호화주택이나 별장을 지으면, 그게 결국은 건축 문화유산으로 남는 것이기에 호화롭게 사는 것은 오히려 장려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모두 국민에게 돌아오게 마련이기 때문이란다. 부자들이 외국에 별장을 짓고 외국에서 즐기며 그곳의 문화 인프라에 투자하는 까닭에, 한국에는 100년 후에 내놓을 만한 문화적 자산이 없다는 것이 그의 고민이란다. 그러고 보니 내가 지금 요코하마에서 감탄하고 구경하는 것들은 대부분 100년 전에 사양 상인들이 일본을 착취하며 만들어놓으 ㄴ것들이다. 그 잔인한 착취 권력도 100년이 못 간다는 이야기다. 현대 관광 산업이나 각종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같은, 여가 산업의 본질은 '부와 시간의 교환관계'에 있다. '돈은 많고 시간이 없는 사람'과 '시간은 많고 돈은 없는 사람'이 시간과 돈을 서로 바꾸는 것이 현대 여가 산업이다. 상류층의 문화적 사치를 우리는 시간을 주고 살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시간이 흐르면 모두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생략) 오늘날 한국의 문화적 토양을 척박하게 만드는 가장 큰 위험은 '상대적 박탈감'과 같은 용어가 심리학적 진실인 것처럼 여겨지는 풍토라고 나는 생각한다. 심리학에 '상대적 박탈감'과 같은 용어는 없다. 이는 집단적 열등감과 같은, 자기 파괴적 정서의 사회적 합리화일 따름이다. 모두를 불행하게 만드는 말이다. 그런 나라에서는 제일 잘 사는 한 사람만 행복하고, 그 이외의 모든 이들은 끊임없이 열등감에 시달려야 하기 때문이다."234~236

"와세다 대학 심리학과의 마츠보토 요시유키 교수, 이시이 야스토모 교수, 이예진 선생의 정서적 상호작용에 관한 한일 비교연구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정서지능을 측정했을 때 한국인의 정서지능이 좀 더 높은 것으로 나왔다. 정서지능이란 '자신과 타인의 정서를 평가하고 표현하는 능력, 자신과 타인의 정서를 효과적으로 조절하고 활용하는 능력'을 뜻한다. 그러나 이 측정 결과를 잘 들여다보면, 한국 여성의 탁월한 정서지능 능력 덕분에 한국의 전체 점수가 일본보다 높게 나온 것을 알 수 있다. 남녀의 차원까지 포함시켜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국 여성의 정서지능이 월등한 점수로 가장 높고, 그 다음으로 일본 여성, 일본 남성, 한국 남성의 순서로 나타난다. 이 셋의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충분히 납득이 가는 결과다. 가는 곳마다 무턱대로 '들이대고 보는' 한국 남성의 정서지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동시 그 뒷수습을 모두 감당해내는 한국 여성의 의사소통 능력이 세계 최고라는 것은 외국 생활을 오래해본 사람들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정서지능과는 다른 차원인 정서감수성과 정서표현성을 측정한 결과도 무척 흥미롭다. 정서감수성은 타인의 비언어적 정서 표현의 강도를 인식하는 경향성을 뜻한다. 반대로 정서표현성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드러내는 경향성을 뜻한다. 측정 결과, 정서감수성은 일본이 높고, 정서표현성은 한국이 높게 나왔다. 쉽게 말해 한국인은 자신의 정서를 잘 드러내는 반면, 남의 정서에 대해서는 무감각한 경향을 보인다는 이야기다. 일본인의 경우에는 정반대다. 자신의 정서는 숨기고 남의 정서는 예민하게 파악한다. 논리적으로 좀 비약해서 해석하면 이렇다. 한국의 경우, 정서 표현에 막힘이 없는 개인의 정신 건강은 좋은 반면, 타인의 정서에 대해서는 둔감하거나 무시하는 까닭에 사회 전체는 항상 시끄럽고 불안정하다. 일본의 경우는 정반대가 된다. 정서를 억압하는 개인의 심리는 불안정한 반면, 사회 전체는 안정되고 편안하다. 정서감수성, 정서표현성의 데이터를 남녀 차원까지 포함해 분석하면 앞서 이야기한 일본 모성 ㅡ이존적 사회 심리구조가 확연히 드러난다. 정서감수성이나 정서표현성 모두 일본 여성이 가장 높고, 한국 여성, 한국 남성, 일본 남성의 순서로 나타났다. 그러니까 일본 여성이 가장 잘 느끼고 가장 잘 표현한다. 반면 일본 남성은 자신의 정서도 표현하지 않고 남의 정서에 대해서도 둔감하다는 이야기다. 일본 여성의 정서감수성이 높은 것은 납득이 가지만 정서표현성 또한 한국 여성에 비해 높다는 사실이 좀 의아해서 데이터 내용에 관해 구체적으로 물어보았다. 한국 여성은 부정적 정서를 잘 표현하는 반면, 일본 여성은 긍정적 정서를 잘 표현하기 때문이란다. 잘 살펴보니 정말 그렇다. 일본 여성들은 '스로기(대단하다)', '가고이(멋지다)'하는 놀람과 즐거움의 감탄사를 입에 달고 산다. 젊고 늙음에 관계없이 거의 습관과도 같다. 감탄하는 여자는 무조건 예쁘다." 259~261

"미시마 유키오는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생략) 미시마는 일본 육상 자위대 이치가야 주둔지에서 자위대의 궐기를 촉구하다 할복자살하고 만다. 노벨상 후보에까지 올랐던 일본 최고의 소설가가 군국주의의 부활이라는 극우적 주장을 하며 할보자살했다는 사실만으로 세계는 경악했다. 주로 이런 간단한 에피소드만으로 기억되는 미시마 유키오는 문화심리학적 측면에서 보면 '정신 나간 사람'으로 간단히 정리될 대상이 절대 아니다. 그가 옹호하고자 했던 일본의 천황은 현재의 그 황실과는 별로 관련이 없다. 그 스스로도 자신이 주장하는 천황은 '시적이고 문화적이고 신화적인 천황'이라고 이야기한다. 좀 많이 황당하다. 이러한 미시마의 천황제에 대한 신념은 1936년 2월 26일에 있었던 청년 장교들의 반란과 한 맥락에 서 있다고 가라타미 고진은 <언어와 비극>이라는 책에서 주장한다. 2.26 사건의 청년 장교들이나 미시마 유키오에게 일본은 여전히 낡은 에도 시대의 봉건 체제가 끝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새로은 나라가 되어야 하는데, 여전히 속은 텅 비어 있는, 낡은 체제의 연속으로 본 것이다." 267

이 대목을 읽다 보니 금세 떠오르는 것이 있다. 국내 주사파들의 "빛나는 사회주의 조국"이라는 것도 현실과는 별로 연관이 없는 관념 속의 존재였을 터이다. 이데올로기란 게 그렇게 헛헛한 거다.

■ 일본 내면 풍경
유민호 지음, 2014년 살림출판사

SBS 기자 출신이라는 유민호의 글은 확신에 차 있고 명료하다. 복잡한 사안을 명료하게 설명하기 때문에, 일본에 관한 그의 설명은 언제나 과도한 단순화가 지니는 위험 속으로 뛰어든다. 논리나 데이터보다는 에피소드와 직관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그의 일본론은 일본적이지 않고 한국적이다. 그의 글은 일본 사회를 엿본 한국 지식인의 흥분과 우국충정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가 마쓰시타정격숙에 입숙하면서까지 목격한 겻은 일본 사회의 표면적인 (이를테면 음식 같은) 특질들이 아니라 일본의 정치문화적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역사적 맥락이다. 얼른 보면 거칠어보이는 그의 진단과 처방을 오늘날 한국인들이 경청해야 하는 것은 그때문이다. 좀 더 정제된 논리로 차분히 풀어냈어도 될 것처럼 보이는 당연한 이야기들이지만, 유민호가 지적하고 있는 것 같은 내용이 전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고 있는 것이 오늘날 한국사회의 일본에 대한 평균적 식견의 안타까운 수준이기 때문이다. 책의 뒷부분의 처방적 주문들은 다소 단조롭게 여겨지지만 앞부분에 해당하는 그의 진단은 빛나는 안목을 보여준다.

"한국은 이기는 야구에 주목한다. 이본은 어떨까? 지지 않는 야구 게임을 우선시한다. 말장난처럼 들릴지 모르겠다. 이기는 경기는 이기기 위한 자세를 필요로 한다. 적극적이고도 공격적인 정신과 육체를 전제로 한다. 상대방에 주목하는 경기라기보다, 내가 가진 힘과 능력을 상대에게 퍼부어 승부를 낸다. 내일이 아니라, 지금 당장 승부를 걸어 끝장을 내는 식이다. 지지 않는 경기는 어떨까? 내가 가진 능력보다 상대가 가진 장점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나아간다. 내가 가진 약점을 보강하는 식의 전략 전술을 필요로 한다. 주변을 살피고 다소 위축된 상태에서 수동적이고 수비적인 자세를 갖기 십상이다. 그렇지만, 결코 진다는 생각은 안 한다. 무승부라도 좋고, 이기면 더더욱 좋다.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를 기다리는 식이다. (생략) 한국 스타일의 이기는 야규의 전형은 돌직구, 강속구, 스트라이크, 삼진, 혼런, 장타다. 명쾌하고 박력이 넘친다. 일본의 지지 않는 경기는 어떨까? 포볼, 진루, 번트, 안타, 커브, 슬라이드, 범실타다. 홈런 한 방에 기대를 걸고 엄청나게 휘둘러대는 것이 한국이라면, 일본은 작은 안타 4개로 홈런 하나를 만들어낸다. 한국이 강속구, 스트라이크, 삼진으로 타자를 잡아내는데 비해, 일본은 스트라이크처럼 보이는 볼을 던져 실타나 범타를 유도해 아웃을 잡아내는 식이다. 타자로 나간 일본인도 배트를 휘두르기보다 피처의 실수를 유도해 포볼로 진루하려고 한다. 홈런, 장타가 아니라, 살아서 1루에 발을 붙이는 것이 중요하다." pp8~9

"일본론의 기본 교과서로 1977년, 야마모토 시치헤이가 쓴 <공기의 연구>라는 책이 있다. 간단히 말해, 일본 사회와 조직은 '공기'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 책의 핵심이다. 누가 나서서 주장하고 끌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와 흐름 속에서 의사를 결정하고 집행, 평가한다는 것이 야마모토의 일본론이다. 사실, 공기론은 일본만이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모든 곳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굳이 일본을 공기론으로 설명하는 이유는 공기에 대한 일본인만이 가진 예민한 반응 때문이다.
어떤 공기가 지배하면 일본인 대부분이 빠르게 반응하고 또 적응한다. 반응하는 속도가 빠른 것은 물론, 공기에 의해 결정된 결과를 신속하게 집행한다. 원래 야마모토가 말한 공기론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이뤄진 국가적, 군사적 차원의 이슈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메이지유신 이후 1945년 패전에 이르기까지, 공기론의 정점은 물론 천황이다. 천황을 앞세운 공기가 정치, 경제, 사회, 군사, 문화, 심지어 이불 속까지 파고든다.
태평양전쟁 중에 나타난 '공기'의 본보기로, 전함 야마토가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린다. 항공모함 시대로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1차 세계대전의 전설인 거함대포 전함에 집착하는 과정에서 야마토가 탄생한다. 배와 대포의 크기는 물론, 각종 시설들이 당시 전 세계 모든 전함을 압도하는 수준이었다. 당시 일본 해군 수뇌부는 전함에 기대를 거는 것이 시대착오적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 당시 전투력을 발휘한 미국과 영국의 전함을 능가하는 배를 만들자는 기운이 해군 내에 만연한다. 결국 기동성과 작전 능력은 무시한 채 상상을 초월하는 초대형 전함 야마토가 탄생한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의 표상인 항공모함을 앞세운 미군을 상대로 무모한 전투를 벌이다가 그대로 침몰하고 만다. 거함대포에 집착한 건조 과정은 물론, 질 줄 알면서도 전장에 투입한 만용의 배경에 일본 특유의 비합리적, 비이성적 공기가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패전과 함께 야마모토가 말한 공기의 영역은 천황이나 국가가 아닌 조직, 즉 회사로 넘어간다. 1980년대 일본의 버블경제가 세계를 압도할 당시 일본은 국가가 아니라 ㅏ'일본 주식회사'의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패전으로 국가적 규모의 전략과 발상이 금기시되는 상황에서 주식회사가 뒤를 잇게 된 것이다. 종신고용제, 노사협조와 같은 일본식 경영 모델이 전 세계 비즈니스맨의 교과서로 자리 잡는다. (생략) 버블경제가 끝나면서 공기의 영역은 회사에서부터 한층 작은 단위로 나아간다. 대표적인 공간이 학교다. 최근 유행하는 한국식 표현으로 말하자면, 공기의 흐름을 잘 파악할 경우 갑에 포함되고 그렇지 못할 경우 을로 전락한다. 갑과 을의 경계선은 '이지메', 즉 왕따이다. 갑은 왕따의 맛을 보여주는 가해자, 을은 왕따를 당하는 피해자가 된다. 회사에서 공기를 읽지 못할 경우 그대로 퇴출이다. 학교에서 공기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할 경우 집단 왕따의 길이 기다리고 있다. (생략)
2011년 3월 11일의 동일본 대지진은 '국가'라는 공기가 열도 전역으로 확산된 기화점이다. 쓰나미와 함께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가 엉망이 되면서 1억 2,000만 일본인 전체가 공포에 떨었다. 해일에 떠내려간 사상자의 수도 경악할 정도지만, 이후에 일본 전체에 닥친 방사능 오염의 공포는 상상을 초월했다." pp23~26

"일본에서 흔히 사용되는 말로 'KY'라는 영어 이니셜이 있다.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그 사람은 KY 캐릭터! KY니까 출세를 못하지....."라는 식으로 사용되는 단어다 '공기를 못 읽는(쿠우키오요메나이)'이란 말 속에 '공기'와 '못 읽는'의 이니셜인 K와 Y가 합쳐진 유행어이다. 첨단은 아니지만, 6년이 지난 지금도 일상용어로 정착돼 젊은이들의 대화중에 자주 등장한다. '공기를 못 읽는다'는 말은 한국식 표현으로 바꾸면, '분위기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한다'는 식으로 풀이될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우울한 분위기인데 혼자서 조크를 던지는 '푼수' 스타일을 일컫는 말이다. 유행어의 대부분이 그러하듯, KY란 말의 근원지는 10대를 중심으로 한 젊은 층이다. 학교에서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동급생이나 스승을 비하하려 사용하는 말이 KY다." pp35~36

"<국화와 칼>이 미국인이 쓴 일본론의 정수라 한다면 <공기의 연구>는 일본인 스스로가 쓴 일본론의 하이라이트다. 이 책은 도쿄 세타가야구에 있는 야마모토 서점의 주인, 야마모토 시치헤이가 썼다. 앞서 살펴봤듯이, 야마모토는 전함 야마토의 실패와 교훈을 공기론에 근거해 분석한 인물이다. 분위기와 흐름 속에서 의사를 결정하고 집행하고 평가한다는 것이 야마모토의 일본론이다.
1921년생인 야마모토는 태평양전쟁 당시 야전 관측 장교로 필리핀 루손전투에 참전한다. 루손은 태평양전쟁에서 일본군의 피해가 극에 달했던 곳 중 하나이다. 미 해병대에 맞서 일본군 25만 명이 방어에 나섰다가 21만 7,000명이 몰살을 당한다. 10명 중 8명이 숨진 곳이 루손 섬이다. 야마모토는 기적처럼 살아남은 생존자이다. 극단을 달린 전쟁 당시 상황이 이후 그의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줬을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 서점 주인이자, 작가로 이름을 날린 야마모토는 전쟁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일본론에 집중한다.
야마모토의 일본론에서 주목할 점은, 일본인이 느끼는 공기론의 구조가 상명하복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국의 텔리비전이나 영화를 보면 일본인을 상명하복에 철저한 집단으로 그려낸다. 초폭들이 흉내 내는 90도 인사 같은 촌스러운 모습을 통해 명력에 살고 죽는 일본인 정도로 묘사된다. 일본은 개인이 아니라, 집단을 바탕으로 한 나라다. 물론, 상명하복과 일사불란을 원칙으로 하는 곳이 일본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 같은 행동양식은 구체적인 결정이 내려진 뒤 이뤄지는, 실천 단계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들이다. 구체적인 실천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뤄지는 방향이나 방침은 일사불란이나 상명하복과 무관하다. 카리스마나 파워를 앞세운 개개인이 앞에 나서 주도하는 조직이 아니다. 정보를 공유하면서 서로의 예안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결론이 도출되고, 더불어 공통분모 즉 공기가 탄생한다." pp38~39

"공기론을 통해 일본을 분석할 때, 공기를 만들어내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현재 볼 수 있는 우향우의 공기는 어떤 배경하에 만들어졌을까? 그 같은 의문에 대한 답을 한마디로 합축한 키워드는 바로 '세켄'이다. 원래 불교 용어인 세켄은, 변하귀 쉬우며 부서지고 혼란에 빠지기 쉬운 세상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한국어로는 세속 사회, 세상 쯤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간단히 얘기해서 '세상 사람들은, 삼라만상이, 세상의 이치가....'라는 표현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세켄은 공기와 함께 일본과 일본인을 이해할 수 있는 기본 개념이다.
일본은 대화중에 세켄이란 말을 유난히 많이 사용하는 나라이다. '세상이 켤코 허락하지 않는다.(世間が許さない), 세상의 평가가 좋지 않다(世間体が悪い)'와 같은 표현들이다. 일본의 경우, 범죄 용의자가 잡히면 가장 먼저 '세상에 볼 면목이 없다(世間に申し訳がたたない)'라는 말을 던진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경우 '(언젠가) 세상에 보답하겠다(世間に恩返しする)'라는 감사의 말을 전한다. 한국의 경우라면 어떨까? '부모에게(자식에게) 볼 면목이 없다''언젠가 국가에 보담하겠다' 정도의 표현이지 않을까?
세켄은 한국의 '세상'이란 개념과 비스하게 와 닿지만, 일본인의 경우 자신을 객관화하는 나침반과 같은 의미로 세켄을 받아들인다. 세켄을 자신에게 맞춰 합리화하기보다, 자신을 세켄에 맞춰서 재평가 받는 신이다. 세켄은 신과 같은 전지전능한 존재가 지배하는 윤리와 도덕의 방향타라고도 볼 수 있다. 일본인들은 8000만 신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유일신 사상으로 보면, 세상의 귀신이 모두 모인 미신대국이 일본이다. 세켄은 그 같은 800만 귀신들에 의해 구축된, 언어, 사고, 행동, 도덕, 윤리, 가치관의 기준이자 틀이라 볼 수 있다." pp43~44

"단카이는 운동회의 2인3각 달리기를 학교 내 이지메의 출발점이라 비난한다. 자유롭게 혼자서 뛰지 않고, 왜 두 사람, 세 사람, 아니 수십 명을 하나로 묶어 달리게 만드냐는 것이다. 스스로가 판단하는 결과가 아닌, 집단 속에서 패자를 가려내 공격을 가하는 것이 2인3각 달리기라는 것이다. 빡빡머리가 최저점에 달했던 1990년대는 2인3각 달리기의 쇠퇴기이기도 하다. 줄을 풀고, 혼자서 뛰는 경주가 장려됐다. 그러나 2013년 가을 운동회에서 2인3각 달리기를 시행한 학교의 수가 엄청 늘었다고 한다. 3.11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인에게 밀어닥친 국가적 슬러건은 '키즈나'다. 모두를 하나로 묶는 '마음의 줄'이란 의미이다. 2인3각 달리기에 사용되는 연결 줄의 이름도 키즈나다." p53

"한국인이 보면 주신구라는 광신도들의 집단 자살극 정도로 느껴진다. 도대체 개개인의 생각이 없다. 주군과 오이시로 연결된 수직 관계에 모든 것을 건다. 47명의 사무라이가 과연 주군을 존경하는지의 여부도 불투명하다. 자존심 때문에 감히 궁중에서 칼을 휘두른 주군의 어리석음에 대한 비판도 없다. 상관에 대한 불만보다, 원수를 어떻게 처단할지에 관한 전출, 전략만이 주신구라 전체를 지배한다. 오이시가 한 번 믿은 부하를 끝까지 믿듯이, 사무라이가 한 번 주군으로 받아들이면 무슨 일이 있어도 충성을 다한다. 현대 일본에서도 볼 수 있는 똑같은 가치관이다. (생략)
주군을 지키고 부하를 믿는 가치관은 아름답고 존경스러운 미덕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다른 각도로 보면, 범주 밖의 외부 사람들을 부정하는 편견으로 발전될 수 있다. 같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아닐 경우,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게 된다. 이방인으로 대하게 된다. 구별이 아니라, 차별로 나가는 것이다. 태평양전쟁 이전만 해도, 자신드로가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차별을 정당화했다. 이후 전쟁에서 패하면서 자신들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차별하기 사작했다. 태평양전쟁 때와는 다른 논리지만, 차별을 받는 입장에서 보면 결과는 똑같다.
태평양전재잉 벌어지기 직전, 일본과 미국 간 국력의 차이는 721배에 달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공부를 한 해군참보들은 그 같은 상황을 잘 알고 있어싿. 그걸 수뇌부에 전달하지도 않았고, 육군에 알리지도 않았다. 물론, 알렸다고 해도 듣지 않았을 것이다. 서양이나 한국에서 말하는 내부자 고발은 소수의 잘못된 비리나 독단에 대한 외부 유출이다. 일본의 경우 조직 전체의 문제를 밖에 고발하는 것이다. 집단 전체를 상대로 싸우는 고발인 셈이다. 혁명가가 아닌 이상, 그 같은 행동에 목숨을 걸 사람은 없다." p62~64

"세대론에 입각해 일본을 조명해 볼 때, 무대 중심에 선 주인공은 40대와 50대이다. 이들은 일본을 지탱하는 머리이자 허리에 해당한다.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에 출생한 세대로, 전후 베이비붐 세대에 해당하는 '단카이'를 잇고 있다. 일본의 시대정신이 우향우로 돌변한 계기는 이들이 일본의 정치, 경제, 회시, 문화 모든 부분을 지배하면서부터다. 정확이 말해 단카이의 대표격인 간 나오토 총리를 이운,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 체제부터다. 간 총리는 1946년생, 노다 총리는 1957년생이다. 노다 총리는 각료의 절반 이상을 자신과 비슷한 50대로 물갈이 한다. 이것이 4050 시대의 서막이다.  4050은 버블 경제를 발판으로 한 버블세대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버블경제는 1985년부터 1991년까지 지속된, 고도성장기의 하이라이트에 해당되는 시기이다. 1964년 도쿄올림픽 이후 1990년대 초 버블 붕괴 때ㅐ까지 일본은 매년 10%에 가까운 경제성장률을 기록한다. 뉴욕, 아니 미국 전체를 통째로 사버리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일본 주식회사의 위력이 전 세계에 울려 퍼지던 시기이다." p96~97

"일본의 4050은 한국인에게 가장 익숙한 듯하지만, 실제로는 가장 낯선 세대들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4050과 한국 사이의 접점이 없다는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4050은 단카이와 달리 아시아에서 벌어진 과거사를 전혀 모르고 자라난다. 단카이는 전쟁에 패한 부모 세대 밑에서 자라면서, 직, 간접적으로 전재으이 상처와 고통을 이해한다. 4050은 다르다. 이들은 1868년 메이지유신을 전후한 일본사까지 배울 뿐, 일본이 근대화 이후 보여준 주변국을 향한 만행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 한국의 2030이 한국전쟁을 모르는 것처럼, 태평양전쟁 동안의 참단한 상황과 패전 이후 불어 닥친 정신적 공황 상태에 무심하다. 거짓말처럼 들리겠지만, 4050은 실제로 일본이 한국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잘 모른다. 학교 교과서에 그와 관련한 얘기가 없이 때문이다. 일본의 침략사를 중심으로 한 근현대사 부분에 주목하는 교사가 있기는 하지만, 역사적 해석 없이 단순히 연대기를 외우는 식으로 가츠린다. 아시아 주변국으 ㄹ괴롭히고 패전에 접어든 근현대사는 아무도 입에 올리고 싶지 않은 터부이기도 하다. 수모를 당했다는 기억, 빨리 잊고 싶은 악몽이 일본의 현대사이다.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일본의 한반도 침략사에 관한 논의나 글고 드 같은 흐름 속에서 사라진다.
4050은 버블세대다. 한국인들이 간과하고 있지만, 버블경제야말로 4050을 읽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다. (생략) 당시 일본 젊은이들이 주로 간 지역은 교과서에서 배운 문화, 문명대국, 즉 유럽이나 미국이다. 한국, 중국, 아시아권에 대한 과거사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 서방세계가 관심권에 들어선 것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1980년대말 일본 대학생들이 졸업여행지로 가장 선호한 곳은 파리, 로마, 런던, 그리고 뉴욕이다. 2주 동안 이뤄진 대학 졸업여행을 통해 책에서 배운 서방세계의 어제와 오늘을 피부로 절감하게 된다. 21세기 들어 매년 수백만 명의 일본인이 한국을 다녀가지만, 1980년대에 한국을 찾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그나마 한국과 인연이 깊은 단카이 이상의 장로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당시의 20대 전후의 젊은이들에게 비쳐진 한국은 '가깝지만 먼 나라', 북한의 김일성 체제에 버금가는 군사독재 국가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아예 오랫동안 문을 걸어 잠그고 있던 공단당 체제하 중국의 경우, 일본 젊은이들의 머릿속에서 존재하지 않는 다른 행성의 나라쯤으로 인식됐을 뿐이다. 중국은 말할 것도 없지만, 1980년대 한국은 자유로운 외국 여행과는 거리가 먼 나라였다. 한국인의 일본 여행이 본격화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다. 유신세대와 386세대가 이미 사회생활을 시작한 시기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한국인의 일본 4050에 대한 관심이나 지식도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pp100~101

"4050의 특징 중 하나로 탈이념, 나아가 무이념을 빼놓을 수 없다. 4050은 특별한 신념이나 정치적 확신이라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최근에 나타난 4050의 우향후 성향을 보면서 그들을 우익 이데올로기를 가진 세대라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필자의 판단은 다르다. 머릿속에 아예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은 상태로 중국, 한국에 맞서려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우향후의 성향으로 기울었다고 볼 수 있다. 민족주의와 애국주의, 나아가 국가주의는 '무념무상'일 경우 쉽게 등장하는, 감성에 호소하는 이데올로기라고도 볼 수 있다. 덧셈, 뺄셈을 되풀이한 뒤에 얻게 되는 전략적인 사고와는 무관한 경우가 많다는 게, 우향우 이데올로기의 특징 중 하나다." pp105~106

"한국의 양치기 소년, 다시 말해 현재의 한국 지도자들을 보면 400년이 훨씬 넘은 임진왜란 당시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최근 한국 신문을 보자. 임진왜란 2년 전인 1590년, 조선통신사 부사로 일본에 파견된 김성일 스타일의 '통 큰' 발언과 행동이 대한민국 방방곡곡에서 울려 퍼진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누넹 광채가 있고 담략이 남달라 보였다"고 보고한 정사 황윤길 식의 정세 판단은 아예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ㅏ"눈이 쥐와 같고 생김새는 원숭이 같으니 두려울 것이 없다"라고 말한 김성일의 '호연지가'가 커다란 활자와 함께 신문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pp178~179

"일본의 특징 중 하나지만, 총론과 각론이 결정될 경우 대열에서 일탈하는 일본인은 극히 드물다. 어제의 명분이나 논의가 한 순간에 사라진다. 들끓었단 반대 목소리는 소리 없이 사라진다. 일본 사회 특유의 정체성인 '공기'가 지배한다. 아베가 추진한 집단적 자위권은, 한동안 일본이 주장했던 '국제공헌론'을 유명무실하게 만든다. 유엔을 통한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가 국제공헌론의 핵심이다. 1990년대부터 불기 시작한 국제공헌론은 반핵, 평화, 반미로 무장한 단카이 세대의 슬로건이기도 하다." p201

"현재 일본 미디어의 흐름을 보면 1930년대의 상황과 너무도 비슷하다는 니낌을 지울 수가 없다. 공기에 편승하면서 위상을 지키고 확장해나가는 미디어 생존 전략이다. 1930년대 일본 미디어의 출발점은 만주사변이다. 잘 알려져 있읏이 1931년도의 만주사변은 보토의 명려오가 무관하게 이뤄진, 관동군의 작품이다. 정확히 1931년 9월 18일 발생한 남만주철도 폭파사건이 만주사변의 명분으로 활용된다. 철도 보호를 명목으로 남만주를 장악하고 있던 1만여명의 관동군은 중국인이 범이니이라 발표한다. 곧바로 본국으로부터 만주 침략 재가를 얻어낸다. 확전을 통해 불과 6개월만에 만주를 장악한 뒤, 이후 6년 뒤 아예 중국 대륙 전체를 상대로 한 침략에 나선다. 만주국 포기와 중국 침약 중지와 같은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진주만 기습 공격에 돌입한 것이 이후 일본 제국주의의 자화상이다.
1931년 만주 침략은 일본 미디어의 흐름을 근본적으로 바꾼 결정적 사건이다. 만주 침략을 기회로, 모든 미디어가 한순간 극우프로파간다로 돌변했기 때문이다. 일본 정치학자들은 1912년부터 1926년에 이르는 14년간을 '다이쇼 데모크라시'기간이라표기한다. 다이쇼란, 메이지와 쇼와를 잇는, 근대화 일본의 제2대 천황을 말한다. 메이지를 통해 국가적 틀을 완성한 뒤, 서구 헌법에 기초한 보통선거, 인권, 민주주의, 여성, 문화, 출판, 언론, 사회운동에 관한 자유가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진다. 일본 미디어가 제자백가, 백인백색 시대를 맞은 시기가 다이쇼 데모크라시다. 1917년 러시아혁명을 통해 확산된 사회주의 사상도 이 기간 동안 일본 전역에 퍼져나간다. 식민지 한국에 흘러들어온 각종 문예사조나 사회주의 운동도 다이쇼 데모크라시를 배경으로 한 결과물이라 볼 수 있다. 서구를 풍미하던 언론 자유의 열기가 일본 열도 전체에 퍼져나간다. 정부와 특정 정치가를 비판하고, 군부를 비난하는 것ㅉ믕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당시 선봉에 선 미디어의 쌍두마차는 아사히와 마아니치다. 특히 아사히는 정부와 군부의 정책과 정치를 사사건건 부정하는, 가장 영향력이 강한 신문이었다.
미국에 의해 개방된 일본이 미국을 적으로 삼게 된 출발점은 두 개의 군축회의에서 비롯됐다. 1921년의 런던조약과, 1930년의 워싱턴조약이다.ㅇ ㅣㄹ본 해군의 규모를 미국, 영국에 비교하여 대략 7할선에서 통제하기로 한 국제 조약이다. 군부, 국민들이 제국주의 강대국의 횡포라고 조약에 반대했지만, 아사히와 마이니치는 군축을 적극 지지하는 글을 계속해서 내보낸다. 국민 부담을 줄이고 전쟁이 아닌 평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 당시 두 신문사의 지론이었다. 정부가 군부의 불만을 무릅쓰고 조약에 비준한 것은 두 신문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21세기 아사히조차 부러워할 당시의 언론 자유 분위기는 만주사변에 들어서면서 180도 바뀌게 된다. 가장 앞정선 곳은 아사히였다. 아사히 지국 가운데서도 가장 리버럴한 곳으로 알려진 아사히 오사카 신문이 하루아침에 논조를 바꾼다. 군비 확산이나 전쟁에 대한 반대 논조를 대신해, 만주 침략 찬성과 군비 증강에 대한 사설이 등장한다. 만주 침략 한 달째로 접어든 1931년 10월 중순이다. 이후 변신은 '아사히 도쿄'를 비롯해 전국으로 확산된다. 마이니치도 마찬가지다. 다이쇼 데모크라시가 언제 있었냐는 듯, 일본 미디어 전체가 한 목소리로 군국주의 선전대로 전락한다. 그 같은 목소리는 1945년 8월 15일 패전 때까지 이어진다.
일본 국민 모두가 놀란 아사히와 마이니치의 변신은 어떤 배경 하에서 나타난 것일까? 정부나 군부가 언론 탄압에 나서면서 어쩔 수 없이 굴복한 것일까? 아니다. 외부 간섭이나 강압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편집진과 경영진 스스로가 내린 결정이 더 큰 원인이다. 편집진과 경영진 가운데 굳이 주역을 찾으라면, 펜을 잡은 편집진이 변신에 더더욱 적극적이었다. 이유는 바로 경영, 즉 '돈'에서 찾을 수 있다. 돈은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신문사의 목을 조른다.
첫째, 라디오 보급이다. (생략)  반대 세력에 대한 적극적인 불매운동은 리버럴 신문을 코너로 몰아세운 두 번째 이유다." pp261~265

"'팔굉일우'라는 말이 있다. 서기 720년에 완성된 <일본서기>에 나오는 말이다. 문자 상으로 보면 '여덟 개의 줄을 하나로 엮어 하나로 만든 집'으로 풀이된다. 일본인들은 '도의적으로 세계를 통일해서 하나의 집처럼 만들자'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노년의 한국인이라면 팔굉일우를 듣는 순간 '무운장구'라는 말을 연상할 듯하다. (생략) 70여 년 전의 상황을 되돌려보는 이유는 팔굉일우의 21세기판 슬로건이 최근 재등장했기 때문이다. '자유와 번영의 활'이라는 구호이다. AFP 는 아베가 추진하고 있는 일본 외교의 기본 이데올로기에 해당한다." pp271~272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던 2013년 7월 9일. 한 일본인의 부음 속보가 전 세계에 전해졌다. 부음의 주인공은 58살, 요시다 마사오. 부음 기사의 대부분은 흰 방제복 차림의 사진을 전면에 내세웠다. 요시다는 2011년 3.11 동일본 대지진 발생 당시, 후쿠시마 원전소장으로 재직한 인물이다. (생략) 위안부로 끌려간 사람이 분명히 있고, 식민지 당시의 일본인과 조신인과의 수직적 관계를 고려할 때 강제성이 있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을 텐데 왜 틈만 나면 부정으로 일관할까? 과정과 결과는 있는데 왜 원인은 없다고 주장할까?
필자는 그 답히 후쿠시마 원전소장 요시다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쓰나미 재해를 미리 막아내지 못한 책임을 현장소장에 불과한 요시다에 전가하는, 공기론에 근거한 일본의 조직문화가 위안부 문제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안 좋은 일이 생길 경우, 본부의 총 수뇌부는 전부 빠지고 하급 집행관이 책임지는 구도가 일본 조직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책임 문제가 생길 경우, 아예 처음부터 총 수뇌부를 궁지로 몰아넣을 만한 문서나 서류를 작성하지 않는다. 단언컨대, 도쿄 본부의 수뇌부가 후쿠시마 원전을 인재로 몰아간 주범임을 증명하는 서류는 단 한 장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pp307~316

■ 일본 직설
유민호 지음, 정한책방, 2016

이 책의 부제는 '일본의 오늘에서 한국의 내일을 읽다'이다. 저자 유민호는 이른바 '잃어버린 20년의 원년인 일본의 1995년이 한국의 2016년과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이승환 노래 가사처럼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그의 예언은 카산드라의 말처럼 불길하다.

"빠른 경제성장, 중화학공업과 경공업을 통한 대기업 중심의 경제 체제, 세계 1,2위를 다투는 긴 근로시간, 넘치는 비정규직 근로자, 청년 자살자, 학교 내 왕따, 경제인구 감소, 독신 여성 증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악화, 관피아에 휘둘리는 무책임한 조직,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정부 부처 간 권한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어제와 오늘은 한국의 오늘과 내일이 된다." 102


"안 돼요. 안 돼, 안 돼. 2014년, 일본을 대표하는 유행어 1위에 오른 말이다. 출판업체 자유국민사가 제작한 <현대 용어의 기초 지식>에 등장한 2014년 최고 유행어이기도 하다. 2014년 하바닉부터 인기를 끌면서 2015년에 들어서도 열기는 한층 뜨거웠다. 일본 에레키테르 연합 소속의 1983년, 1984년생 여성 코미디언 2명이 벌이는 만담에 등장하는 말로, 아케미란 이름의 젊은 신부 로봇과 70대 남성이 주인공이다. 남성은 외로움을 호소하며 손을 쓰다듬는다.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아케미는 '안 대ㅗ요, 안 돼, 안 돼(다메요, 다메, 다메)'라고 답한다. 함께 온천에 가자고 아케미에게 애원해도 안 된단다. 늙어서 비행기를 못 타니까 배로 여행을 떠나자는 말에도 아케미 로봇은 무표정하게 '안 돼요, 안 돼, 안 돼'라고 반응한다. 인내심을 잃은 남성은 아케미를 판매한 업체에 전화를 걸어서 다른 로봇 신부로 바꿔달라고 요구한다. 전화 내용을 들은 아케미는 큰 목소리로 말한다. '안 돼요, 안 돼, 안 돼!'
  이 말이 유행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3분짜리 만담을 5번이나 돌려봤다. 왜 인기를 끄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로봇 분장을 한 아케미의 섬뜩한 표정과 '안 돼요, 안 돼, 안 돼'라는 애교 섞인 목소리가 인상적일 뿐, 딱히 흥미롭거나 특이한 점이 없었다. 말이 인상적이라기보다는 로봇이 하는 유일한 말이 '안 돼요, 안 돼, 안돼'라는 점이 기억에 남는 정도랄까? 그저 그런 3류 코미디처럼 보였다. 최신 유행어에 대한 둔감함은 워싱턴을 찾은 일본인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깨달았다. '너무 1차원적이고 황당한 대사만 반복하는 저급 코미디로 보이던데, 왜 인기를 끄는 거죠?' 일본인 친구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면서 이유를 알려줬다. '웃으면서 보는 코미디가 아닙니다. TV에서야 웃고 떠들지만, 세상사에 민감한 일본인이라면 다른 각도에서 심각하게 바라보는 내용입니다.' 로봇이 내뱉는 대사가 심각하다고?
  '잘 아시겠지만, 일본인은 좀처럼 '노'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부정적인 것에도 '좀 생각해보고'라든가, '시간을 달라'는 식으로 대응할 뿐입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 오에 겐자부로가 <모호한 일본의 나>란 책을 쓴 것 알고 계시죠? '노'를 외치는 순간 상대방을 적으로 만들고 상황이 한순간에 어색해지기 때문입니다.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쿄도 지사가 쓴 <단호히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란 책도 기억할 겁니다. 미국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내라고 하지만, 사실 전후 일본은 미국만이 아니라 다른 어떤 나라에 대해서도 '안 돼!'라고 단언한 적이 별로 없습니다. '안 돼요, 안 돼, 안 돼'는 전후 세계관에 대한 부정입니다.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분명히 말하는 자세죠. 3 번이나 연거푸 부정하는 일관된 입장이라고나 할까요? 이는 유행어일뿐 아니라 일본인의 의식으 ㄹ바꾸는 '안 돼 신드롬'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안 돼 신드롬'의 출발은 ㅗ이부가 아닌 내부, 즉 일본인 스스로에게 던지는 결의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특정 국가가 아니라 일본인 스스로가 일본의 모두에게 던지는 단호한 결의인 셈이죠. 결국, 유행어로 진화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체를 통해 되풀이 방송됩니다. 내부만이 아니라 외부를 대상으로 한 '안 돼 신드롬'으로 발전합니다.'
  '구체적으로 외부의 무엇을 대상으로 합니까?'
  '정치적으로 볼 때 좌파와 우파가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좌파는 아베가 추진한 집단적 자위권을 안 된다고 말합니다. 우파는 종군위안부 문제나 중국의 영토 침범 문제를 대상으로 합니다. 한국의 종군위안부나 중국의 영토 침범 문제를 대상으로 합니다. 한국의 종군위안부나 중국의 영토 침범 문제에 대한 일본의 대응 방식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도 '안 돼 신드롬'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안 된다고 말해야 할 부분을 어정쩡하게 말하는 바람에 한층 문제가 복잡해졌다. 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안 된다'라는 것입니다. 종군 위안부의 국가 관여 문제는 아사히 신문에서 오보였다고 공표한 상태입니다. 한국에서는 잘 모르는 듯한데,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대부분의 일본인은 '안 돼'로 기운 상태입니다. 아베 혼자 하는 일이 아닙니다."pp19~22

"전 세계에서 샐러리맨이 노벨상을 받는 나라는 일본밖에 없다. 노벨상을 받을 떄는 물론, 받고 난 뒤에도 샐러리맨으로 일한다. 노벨상 상금이 전달되면 회사에 바친다. 회사가 있기에 연구가 가능했고, 그 결과 노벨상까지 받을 수 있었다는 식이다. 겸허해 보이지만, 내막은 그렇지 않ㅁ다. 노벨상을 받은 뒤 박차고 나가서 혼자 무엇인가를 이루려 해도 일본 사회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튀는 순간, 약속이나 한 듯 모든 관련 기업과 연이 끊어진다. 버틴다고 해도 길어야 1년이다. 드물게는 외국으로 나가는 사람도 있지만, 외국에 나가도 일본과 연이 없으면 오래가지 못한다. 샐러리맨 노벨 수상자, 동사무소 직원 출신 올림픽 금메달리스터 같은 예는 집단을 전제로 하는 일본의 가치를 잘 보여준다. " p91

"막부시대가 끝나고 메이지유신이 단행된 것이 1867년이고, 근대적 일본 헌법인 제국헌법이 탄생한 것은 1889년이다. 메이지 천황을 기점으로 하여 국가 체제를 어떻게 헌법으로 연결시킬지 연구하는 데 무려 22년이 걸렸다. 독일, 영국, 미국으로 사람을 보내고, 전 세계 헌법을 전부 모아 연ㅁ구한 뒤 모두가 만족할 만한 공통분모로서의 헌법이 탄생했다. 따라서 일본 제국헌법은 집단 차원에서 성립됐다. 탁월한 헌법학자가 만든 것이 아니다. 한국의 경우, 1889년 3권 분립을 전제로 한 근대 국가인 대한제국이 탄생했고, 국가의 골격인 헌법이 만들어진 것은 1891년이다. 집단이 아니라 몇몇 개인이 만든 헌법이다. 2년만에 헌법을 만든 사람들이 보기에는 20년이나 걸린 것이 한심해 보일 수도 있다." pp9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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