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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원조

posted Oct 2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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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원조(Dead Aid)
담비사 모요, 김진경 옮김, 알마

담비사 모요는 1969년 잠비아 태생의 여성 경제학자다. 잠비아 대학에서는 화학을 전공했지만 아메리칸, 하버드, 옥스퍼드 대학에서 경영, 행정, 경제학을 전공한 후, 세계은행과 골드만 삭스에서 근무를 했고, 지금은 바클레이즈 은행, SAB밀러, 바릭골드 사 등의 이사로 근무 중이다. 그녀의 2009년 저서 <죽은 원조: 왜 원조는 작동하지 않고, 아프리카에 더 나은 길은 무엇인가(Dead Aid: Why Aid Is Not Working and How There Is a Better Way for Africa)>는 뉴욕 타임즈가 꼽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에는 그녀가 골드만 삭스에 사하라 남부 아프리카 경제 전략 연구 팀장으로 근무하면서 세계 거시경제와 국제 채권시장에 대한 개도국의 접근 문제를 다루었던 경험이 진하게 녹아 있다. 이 한 권의 책으로 그녀는 아프리카의 개발 문제를 다루는 스타급 저자 겸 강연자가 되었다.

그녀의 두 번째 저서인 <How the West Was Lost: Fifty Years of Economic Folly – And the Stark Choices that Lie Ahead>(2010)도 베스트 셀러 목록에 올랐다. 이것은 서구, 특히 미국의 경제정책의 오류를 신랄하게 지적하는 책이었다. 연타석 홈런 같은 후속작 <Winner Take All: China's Race for Resources and What It Means for the World> (2012)를 통해서는 역사상 전례가 없는 중국의 경제적 팽창(특히 1차 산품에 대한 수요)이 세계 경제에 초래할 결과를 진지하게 전망한 바 있다.

사실 원조의 효용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설파하는 견해는 뿌리가 깊다. 뉴욕대 윌리엄 이스털리(William Easterly) 교수나 프린스턴대 앵거스 디튼(Angus Deaton) 교수 등도 공적 원조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오래 전부터 설파해 왔고, 영향력도 크다고 한다. 그러나 아프리카인인 모요의 주장은 독특한 울림을 지닐 뿐 아니라 유난히 명쾌하고 도발적이다. 대표적인 원조 옹호론자로 알려진 제프리 삭스(Jeffrey Sachs) 교수가 아프리카의 상황 개선을 위해서는 더 많은 원조가 필요하다고 지적하자, 그녀는 하버드에서 자신에게 “항구적인 발전으로 가는 길은 민간 부문의 관여와 자유 시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가르쳐준 사람이 다름 아닌 삭스 교수였다고 받아쳤다. 그녀는 정부간 공적 원조가 아프리카를 돕기는커녕 해를 끼쳤고, 그러므로 중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십 년 간 아프리카에 무한정 퍼부어온 서구의 원조가 의존성을 키우고 부패를 조장했을 뿐 아니라, 가난과 악정을 영속화시켰다는 것이다. 이 책을 접하고 내게 퍼뜩 떠오르는 서양의 속담이 있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모요의 모기장 비유는 유명하다.

“아프리카에 한 모기장 제조업자가 있다. 그는 일주일에 약 500개의 모기장을 만든다. 열 명의 직원들은 다른 아프리카 사람들처럼 각각 열다섯 명 이상의 친족들을 부양해야 한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그들은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를 퇴치할 만큼 충분한 양의 모기장을 만들지 못한다. 그런데 여기에 목소리를 높여 대중을 단결시키고 고통받는 지역에 100만 달러를 들여 10만 개의 모기장을 보내라고 서구의 정부들을 압박하는 할리우드 스타가 개입한다. 결국 모기장이 도착해 사람들에게 배포된다. 그는 분명 '좋은' 일을 했다. 그러나 외제 모기장이 시장에 흘러넘치면서 아프리카 모기장 제조업자는 업계에서 즉각 퇴출된다. 그가 고용한 열 명의 직원들은 더 이상 150명의 딸린 식솔들(이제 이들은 정부 지원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을 부양할 수 없다.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길어야 5년 안에 수입된 모기장의 대다수가 찢어지고 망가져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 <죽은 원조> pp.82-83

담비사 모요가 설명한 원조의 해악을 거칠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원조는 부패한 국가로 흘러들어간다. 둘째, 원조는 사회자본을 감소시킨다.(모기장 사례를 상기하라.), 셋째, 원조는 내전을 막지 못한다. 넷째, 원조는 저축과 투자를 감소시킨다. 다섯째, 원조는 인플레이션을 야기할 수 있다. 여섯째, 원조는 수출의 숨통을 조인다. 일곱째, 원조는 병목현상을 야기한다.(수원국이 행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것보다 많은 양의 원조가 주어진다.) 여덟째, (그리고 어쩌면 가장 치명적인 문제로서) 원조는 의존성을 조장한다.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원조무용론에 대한 반론도 거세다. 원조를 본업으로 삼는 (따라서 원조가 실제로 중단되면 직업과 명성을 잃게 될) 수많은 사람과 조직이 있다. 그보다 더 강력한 원조의 기반은 개도국에 대한 원조의 발단이 “선의”라는 사실이다. 정상적인 인간은 자기보다 못한 인간을 보면 도와주고 싶은 ‘측은지심’을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다.(적어도 그렇다는 것이 공자의 주장이다.) 따라서 못 사는 나라에게 원조를 주어야 한다는 주장은 우리의 직관과 감성에 아주 잘 부합하는 반면, 빈국을 발전시키는 역할을 시장에 온전히 맡겨야 한다는 담비사 모요 식의 주장은 상당한 지적 훈련을 쌓은 후에야 수긍할 수 있는 내용이다. 게다가 원조가 잘 작동한 것처럼 보이는 사례도 (흔치는 않지만) 찾아볼 수 있다. 담비사 모요가 자신의 책에 쓴 것처럼 “미국은 1957~1990년까지 아프리카 53개국에 지원한 원조금을 모두 합친 것만큼의 금액을 오직 한 국가, 바로 한국에 쏟아 부었다고 추정된다.”(같은 책 p.84) 국제개발이라는 담론에서 우리나라는 많은 이들에게 찬양의 대상이자, 누군가에게는 수수께끼이고, 누군가에는 골치 아픈 예외에 해당할 것이다.

물론 담비사 모요의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것이 지적인 유희나 허영뿐인 것은 결코 아니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아프리카가 경험한 원조의 역사라는, 누구도 감출 수 없는 실증적 실패사례를 자신의 논거로 지니고 있다.

“사하라사막 이남 국가들은 1인당 일일 평균 국민소득이 약 1달러로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지역으로 남아 있다. 오늘날 아프리카의 1인당 국민소득은 1970년대보다 더 낮으며,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은 40년 전처럼 가장 빈곤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루에 1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350만 명이 넘는 사하라사막 이남 지역은 전 세계에서 빈민 비율이 가장 높은 곳으로, 전 세계 빈민의 약 50퍼센트가 이곳에 몰려 있다. 1980년 이후로 세계 인구와 극빈자 비율이 감소했지만, 사하라사막 이남 지역에서 절대 빈곤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비율은 50퍼센트가량 증가했다. 1981~2002년 사이에 아프리카 빈민의 수는 거의 두 배로 증가했는데, 오늘날 아프리카 사람들은 정확히 20년 전보다 평균적으로 더 가난해졌다. 2007년 유엔인간개발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에 사하라사막 이남 지역은 전 세계 빈곤 인구의 거의 3분의 1을 차지하게 될 전망이다. (생략) 평균수명은 50세를 맴돌며, 몇몇 국가들은 1950년대 수준으로 감소했다.(스와질란드의 평균수명은 겨우 30세에 불과하다). 평균수명이 감소하게 된 주된 원인은 HIV/AIDS 때문이다. 아프리카 전 지역에 걸쳐 일곱 명에 한 명꼴로 다섯 살이 되기 전에 죽는다.” p.30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 어떤 부문도(비지니스든 정치든) 이처럼 뚜렷하게 입증된, 반론의 여지가 없는 실패의 증거들을 눈앞에 두고도 지속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오직 원조만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p.87

“원조 덕분에 수원국들은 부패가 부패를 낳는 원조의 악순환에 빠르게 빠져든다. 해외 원조는 언제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현금을 제공함으로써 부패한 정부를 지탱해준다. 이들 타락한 정부는 법치, 투명한 공공제도의 설립, 시민의 자유 수호를 방해함으로써 빈곤국에 대한 국내외의 투자 매력을 떨어뜨린다. 심화되는 불투명과 점점 줄어드는 투자는 경제성장을 감소시키고, 이는 더 낮은 취업 기회와 빈곤의 증가를 불러온다. 이처럼 늘어나는 빈곤에 대한 대책으로 공여국들은 또 다시 많은 원조를 하게 되고, 이는 수원국들이 하강하는 빈곤의 소용돌이 속으로 더 깊이 빠져들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원조의 악순환이다. 절실하게 요구되는 투자의 기회를 앗아가고, 원조에 의존하게 하는 풍토를 뿌리내리게 하고, 체계적으로 만연해 있는 부패를 촉진시키는 순환으로서 이 모든 것들은 성장에 유해한 결과를 가져온다. 사실상 이 순환은 저개발을 영속화하고, 가장 가는하고 원조에 의존하는 국가들의 경제적 실패를 확정짓는다.” p.91

“원조를 제공받는 관리들의 생계가 그런 것처럼 원조를 제공하는 사람들의 생계도 원조에 달려 있다. 대부분의 개발단체들에게 적용되는 성공적인 차관에 대한 평가는 얼마나 많은 원조가 실제로 계획된 목적을 위해 사용되었는지가 아니다. 거의 전적으로 공여국의 차관 포트폴리오 규모에 의해 성공 여부가 평가된다. 그 결과 개발단체의 내부적인 동기로 인해 가장 부패한 국가에도 차관을 제공하는 과정이 영속화된다.” p.97

“공여국들이 절실하게 차관을 제공하려 하고 더불어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시소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한 원조 관계는 부패한 정부에 우호적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다. 수원국이 원조를 받아야 할 필요보다 공여국들이 원조를 제공해야 할 필요가 더 커진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p.98

“아프리카에도 중산층이 있다. 그러나 원조 환경에서 정부는 기업을 육성하고 중산층의 발전을 도모하는 일보다 자신의 이득을 증진시키는 일에 더 관심이 많다. 강력한 경제적 목소리가 없는 상태에서 중산층은 정부의 역할을 촉구할 힘이 없다. 현금을 쉽게 확보할 수 있을 때 정부는 전능해지며, 오직 원조 공여국들에게만 명목상의 의무를 다하게 된다. 이처럼 성장과 발전이 억제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한 국가의 경제적, 정치적 성공을 위해 중산층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역사적으로 입증된 임계량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 pp.100-101

“해외 원조는 정부의 부채를 늘리고 개인의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빈곤을 영속화하고 시민사회를 약화시킨다. 원조 중심적 경제는 또한 국가 전체를 정치화시킨다. 비록 그 수가 적을지라도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중산층의 성공이나 실패는 전적으로 정치적 충성에 달려 있다. 그 정도가 너무 심해서 바우어가 말한 것처럼 원조는 한 국가의 사회 구성을 치명적으로 약화시키며 "사람들의 관심을 생산적인 경제활동에서 정치적 삶으로 돌린다."” p.101

“해외 원조는 사회자본을 강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약화시킨다. 책임 체제를 가로막고 지대추구 행위를 조장하며, 고용시장에서 소중한 인력을 빼돌리고 비효율적인 정책과 제도를 개혁하라는 압력을 제거함으로써 원조에 의존적인 정권의 사회자본이 계속해서 허약한 상태로 남아 있도록 만들며, 국가 자체를 가난하게 만든다. 원조의 세계에서는 이웃을 믿을 필요도 없고, 이웃이 당신을 믿게 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원조는 원활하게 돌아가는 사회에서 사람들 간에 필요한 신의라는 근본적인 구조를 침식시킨다.” p.102

“지난 50년간 약 4000만 명의 아프리카 사람들이 대륙 전역에서 일어난 분쟁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구와 맞먹는 수다(제2차 세계대전에서 사망한 러시아인들의 두 배에 해당한다.) 정치 환경의 정치화를 넘어서 원조는 군사 문화 또한 조장한다. 내전은 본질적으로 군사적 탈선이다. 누가 승리를 거두든 군대의 충성을 통해서만 권력에 머물 수 있다. 따라서 집권자는 권력을 놓치지 않기 위해 경쟁관계에 있는 이해집단과 분파들을 통제하려고 전전긍긍한다. 따라서 군부가 계속해서 충성할 수 있도록 그가 가지고 있는 자원을 가장 먼저 그들의 주머니 속에 넣어준다.” p.104

“대체 가능한 것으로 악명 높은 유혹적인 원조금이 제공되는 상황에서 소수의 사람들은 그 돈을 저축하는 대신 소비재에 써버린다. 저축이 줄어들면 국내 투자를 위한 현지 은행들의 대출금도 줄어든다. (생략) 크라우딩아웃효과는 원조로 촉진된 소비가 늘어나면서 훨씬 더 많은 돈이 수요에 미치지 못하는 재와로 몰리는 상황을 낳을 수 있다. 이는 거의 예외 없이 물가 상승, 즉 더 높은 인플레이션을 불러일으킨다.” p.105

“국내 상품 구입에 쓰이는 원조 유입금은 국내에서 공급이 제한된 자원(가령 숙련된 노동자)의 가격을 올린다. 그래서 전 세계와 경쟁을 하면서 그 자원에 의존하고 있는 산업들(주로 수출 부문)의 경쟁력을 더욱 떨어뜨리고, 마침내는 필연적으로 망하게 만든다.” pp.107-108

“실제로 빈곤국들이 부유한 국가들이 증여한 원조를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매우 빈번하게 일어난다. 개발의 초기 단계(상대적으로 국가 재정 및 제도 구조가 충분히 개발되지 않은 시기)에는 단순히 숙련된 인력이 부족하거나 갑작스레 생긴 막대한 원조금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투자 기회가 별로 없다. 경제 연구원들은 재정 발전이 낮은 국가들에서 해외 원조를 흡수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생략) 이는 더 높은 인플레이션의 위험을 증가시킨다. 이러한 강력한 충격이 경제에 미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아프리카의 정책 임안자들은 과도한 현금을 어떻게든 처리해야만 한다. 그러나 여기에도 비용이 든다. 국가가 빌려온 원조금에 대한 이자 외에도 원조 유입을 무효화하는 과정(경제에 과도하게 유입된 원조금을 흡수하기 위해 국채를 발행하는 일)은 정부 재정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수 있다.” pp.109-110

“일단 원조는 아프리카의 정책 입안자들을 게으르게 만든다. 이는 수많은 아프리카 지도자들이 아프리카의 중대한 문제들을 개선하는 데 왜 태평하기만 하고 절박함이 없는지 어느 정도 설명해준다. 원조를 영구적인 수입원으로 여기는 정책 입안자들은 자국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 자금을 마련할 더 나은 혹은 다른 수입원을 찾아낼 동기를 갖지 않는다.” p.111

“서구 국가들(특히 프랑스와 미국)은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 다른 나라에 식량을 의존하게 될까봐 두려워한다. 게다가 서구의 선출된 정치가들은 그들의 농업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강력한 농업계의 압력단체로부터 지지를 받는다. 그 최종 결과는 아프리카(그리고 다른 개발도상국들) 상품을 막아내는 보호무역과 서구를 둘러싼 장벽이다. (생략) EU의 보조금은 농부들의 전체 수익의 약 35퍼센트에 달한다. 이는 EU에 속한 국가의 소 한 마리당 하루에 2.5달러의 보조금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이 금액은 10억 인구(그중 다수가 아프리카 사람들)의 하루 생활비보다 많다. (생략) 서구의 농부들은 자신들의 생산품을 소비할 수밖에 없는 내국인들에게는 국제시장가보다 비싸게 팔고, 여분의 생산품은 헐값으로 해외에 판매한다.  변변치 않은 생계를 수출 소득에 크게 의지하며 고군분투하는 아프리카 농부들보다 싼 가격에 생산품을 공급하는 것이다. 보조금 혜택을 받은 수백만 톤의 수출품들이 매우 저렴한 값으로 시장에 쏟아져 나오면 아프리카 사람들은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다.” pp.174-176

모요는 민주주의가 번영의 기초라기보다는 그 열매라는 점을 주장하는 데도 망설임이 없다. 이러한 관점은 다수 서구 국가들의 입장에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논란에서, 우리나라는 “민주주의도 성취한 나라”로서보다는 “경제발전을 먼저 이룩한 나라”로서 더 각광을 받는다. 그게 기꺼운 상황인지 아닌지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리나라의 어떤 경험에서 더 의미 있는 경험을 도출하느냐는 우리를 관찰하는 사람들의 몫일 터이다.

“민주주의가 경제성장의 필수 요건은 아니다. 민주주의 정권은 경쟁하는 정당들과 상충하는 이해관계 사이에서 경제적으로 이득이 되는 법률을 밀고 나가기가 어렵기 때문에 되레 발전을 저해할 수도 있다는 것은 불편한 진실이다. 완전한 세상에서 경제발전의 가장 낮은 단계에 있는 빈곤국이 필요로 하는 것은 다수당이 이끄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사실상 경제를 움직이는 데 필수적인 개혁들을 밀고 나가는 결단력 있는 선한 독재자다(불행하게도 너무나 많은 국가들이 선하지 않은 독재자로 인해 몰락한다). 서구의 사고방식은 다수당이 이끄는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높은 수준의 제도(효율적인 법치주의와 재산권의 보호, 독립적인 사법부)와 동일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둘은 동의어가 아니다. 이는 아시아 국가들(중국, 인도네시아, 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대만, 태국)의 역사를 살펴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일이다.” p.80

“분명한 것은 원조 옹호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민주주의가 경제성장을 위한 필요조건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나 반대로 경제성장은 민주주의를 위한 필요조건이다.  그런데 경제성장에 필요하지 않은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이 바로 원조다. (생략) 민주주의가 매우 중대한 가치라는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타이밍이다. 개발 초기 단계에서는 굶어죽는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투표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사실상 중요하지 않다. 나중에는 그렇지 않겠지만, 그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지금 당장을 위한, 그리고 내일을 위한 식량이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경제가 성장해야 한다.” pp.81-82

말하자면, 담비사 모요의 <죽은 원조>는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는 소년의 외침과도 같다. 원조는 그것을 가능케 한 선의와 그밖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이 분명한 사실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요를 비판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우선, 그녀의 진단은 영리하지만 처방을 결여하고 있다고 비난할 수 있다. 모요는 “원조의 중단” 자체가 처방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밖에도 그녀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국제자본시장에 대한 접근, 외국인직접투자, 무역, 소액대출, 자국민의 해외송금 등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권장한다.

“무역 소득은 수천 명의 수출업자들에게 돌아가고, 송금액은 셀 수 없이 많은 가계에 축적되지만 해외 원조는 거의 독점적으로 '운 좋은' 소수에게만 전달된다. 아주 간단하게 말하면 투자금은 원조금처럼 훔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pp.209-210

그러나 그 어느 것도 모든 원조의 중단을 메울 수 있는 충분한 대책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이 책의 말미에서 모요의 고민스러운 시선이 자연스럽게 향하는 곳은 중국이다. 약간의 과장을 한다면, 이미 아프리카는 중국의 대륙이 되었다고까지 할 수 있다. 아프리카 곳곳에서 중상주의적인 중국의 경제정책에 대한 반발이 느껴지기 시작했음에도, 일반적으로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중국은 위협이기보다 기회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서구와는 달리, 중국은 이것저것 따지지 않는다. 어찌 보면 이것은 하나의 역설이다. 시장이 그 어떤 인위적인 정책 개입보다 참여자의 효용을 증가시키는 데 유능하다는 점을 다른 그 누구도 아닌 중국이 증명해주고 있는 셈이니까.

아프리카의 상처는 너무 오래되고 깊어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지경인데, 이렇게 된 데는 서구가 식민주의 시절에 악의적으로 행한 일, 냉전 시절에 모른척하면서 한 일, 심지어 그 이후에 순수한 선의를 가지고 한 일이 모조리 다 기여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설령 누군가가 중국의 무역 행태를 나쁜 무역이라고 이름 붙이고 손가락질한다 해도, 그것보다 더 나은 현실적 대안을 들고 나오는 이가 없는 이상 나쁜 무역이 가장 덜 나쁜 대안으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 나쁜 무역은, 나빠봤자 무역이라는 게 담비사 모요의 생각이 아닐까. 아프리카가 중국의 무역을 환영하는 것은 수용자가 되고 싶어서가 아니고 행위자가 되고 싶어서일 것이다. 아프리카를 수용자로 만드는 것은 원조라는 점. 불행히도 그것은 지금도 변함 없는 사실이다.

“에너지자원을 받는 대가로 공공기반시설을 건설해주는 교환 시스템은 중국과 아프리카 모두가 잘 이해하고 있는 문제다. 이러한 맞교환에서 누가, 무엇을, 누구에게, 왜 하는지에 대한 오해나 환상은 없다. 중국이 단지 자국의 정치적, 경제적 목적을 위해서 아프리카를 이용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놀라운 속도의 경제성장을 지속하기 위해 중국은 연료가 필요하고, 아프리카는 그 연료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프리카에게 그것은 생존에 관한 문제다. 아프리카는 즉각적으로 필요한 것(실제 투자를 위한 양질의 자본, 현지인들을 위한 일자리, 참으로 이루기 힘든 성장률)을 얻고 있다. 열거한 이 모든 사항들은 원조가 해결해주기로 약속했던 것이지만 계속해서 실패하고 있는 것들이다.” pp.168-169

“서구는 이 모든 것을 무시해버릴 수 있다. 그러나 좋든 싫든 중국이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중국의 세계 지배 계획은 바로 아프리카에서 확고해질 것이다. 자본 환경을 먼저 장악하고, 아프리카 전역에서 은행과 땅 그리고 자원들까지 소유하게 되면 그들의 십자군 원정은 끝이 날 것이다. 그들이 승리하는 것이다. 중국의 지배가 오늘날 아프리카의 보통 사람들의 관심 대상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생략) 중국은 오늘 식탁에 오를 음식, 내일 그녀의 아이들이 받을 교육, 가까운 미래에 그녀가 자신의 사업을 위해 의지해야 할 공공기반시설들을 약속해준다.
서구가 저지른 실수는 쓸데없이 엄청난 것을 주었다는 것이다. 중국의 성공 비결은 아프리카 진출이 전적으로 사업의 일환이었다는 데 있다. 서구는 아프리카에 원조를 제공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결과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바로 이것이 소수 엘리트 집단을 만들어냈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부에서 배제되었기 때문에 정치적 불안은 계속된다.
  반면 중국은 아프리카에 돈을 주고 수익을 요구한다. 그 수익으로 인해 아프리카 사람들은 일자리를 얻고, 음식을 얻고, 점점 더 잘살게 된다. 그리고 (적어도 당분간만이라도) 정치적 안정에 대한 희망을 얻는다. (생략) 아프리카에서 중국의 움직임은 현재 진행 중이다. 서구는 모든 위험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한다.” pp.223-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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