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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ree Men in a Boat

posted May 13,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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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ome.jpg

 

 

Three Men in a Boat - to say nothing of the dog

- 1990, Jerome Klapa Jerome, Penguin Popular Classics

 

    주로 ‘해학’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humor의 어원은 ‘in bad humor’라는 표현이 ‘기분이 나빠서’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사례에 그 흔적이 남아있듯이, 실은 ‘기질’이라는 넓은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니까 유머란 동정(sympathy), 관용(tolerance), 온정(kindliness), 부조리(absurdity) 등과 함께 비해(pathos)를 느낄 수 있는 일종의 총체적인 능력을 말한다. 웃음을 유도하는 도구는 크게 보아 과장(exaggeration)과 반어(irony) 두 갈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과장은 부조화스럽고(incongruous), 말도 안되고(ludicrous), 우스꽝스러운(comical) 것들에 관한 놓치기 쉬운 웃음의 기미를 크게 확대해 보여주는 반면, 반어의 요체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시침을 뚝 떼는 데 있다고 하겠다.

 

    웃음이란 참 묘하다. ‘거의’ 인간의 전유물이라고 할 수 있는 웃음은 대단히 미묘한 것이어서, 과장이든 반어든 간에 선을 조금만 비켜나면 곧바로 불쾌감을 초래한다. 그 아슬아슬한 선의 위치는 여러 문화들에서 아주 미묘한 차이를 보이긴 하지만, 웃음을 선사하는 말이나 행동이 아주 작은 범위를 지닌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번득이는 총명함을 뜻하는 기지(wit)조차, 조금만 도를 지나치면 금새 냉소(sarcasm)로 전락하고 만다. 감정을 해치고 조롱하는 잔인함을 담게 되는 것이다. 자연히, 웃음을 주는 기술은 난이도가 높은 재능이다.

 

    유머 감각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점에 있어서, 앵글로 색슨의 전통을 능가하는 다른 문화를 나는 알지 못한다. 영미권보다 훨씬 더 활기차고 느슨한 분위기를 지닌 다른 문화권에서 웃음은 훨씬 더 흔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1) 웃음의 질을 고도로 정제하여 지성적인 순도를 높인다는 점과 (2) 유머감각을 필수적인 소양으로 취급한다는 점에서 영미 문화는 가히 선두주자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영국 정치인에게 촌철살인적인 반어를 구사할 능력은, 흡사 조선조 선비들에게 身言書判이 꼭 갖춰야 할 소양이었던 것만큼이나 중요해 보인다. 미국인들은 유머감각에 대한 일종의 강박관념을 가진 것처럼 보이기조차 한다.

 

    20세기초 영국작가인 제롬 K. 제롬은 비록 많은 작품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그의 소설 <Three Men in a Boat : to say nothing of the dog>은 - 약간의 논란을 감수한다면 - 감히 지금껏 쓰여진 가장 유머러스한 책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은 그 소략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영미 작가들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소설 <Have Space Suit - Will Travel> 속의 등장인물은 제롬의 책을 달달 외우고 있다. 제롬의 책에 반한 코니 윌리스는 그 제목의 일부를 따온 걸작 SF소설 <To Say Nothing of the Dog>을 쓰기도 했다. 넘치는 유머감각으로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른 빌 브라이슨의 <A Walk in the Woods>, 피터 메일의 <A Year in Province>, 존 베런트의 <Midnight in the Garden of Good and Evil> 등을 읽다 보면 어디서나 제롬 K. 제롬의 흔적과 발자취를 발견하게 된다.

 

    제롬은 자신의 해학을 주로 풍자(satire)로 여겼다. (Satire란 본래 그리스 신화의 반수반인인 satyr에서 유래한 말로, 연극적인 익살이 그 특징이다.) <Three Men in a Boat>와, 그 후속편인 <Three Men on the Bummel>은 100년 전의 작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현대적인 유머감각으로 가득차 있다. 바꾸어 말하면, 영어로 표현되는 풍자적 익살은 빅토리아 시대에 이미 그로부터 한 발짝도 더 세련되게 발전하기 어려울 정도로 완성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더러 <Three Men in a Boat>의 줄거리를 “멍청하고 게으른 세 남자와 한 마리의 개가 템스강을 여행하며 겪게 되는 우스개”정도로 소개한 것을 보게 되는데, 이것은 고급 유머란 받아들이는 편에서도 상당한 소양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해 준다. 이 책에 대한 이러한 오해는 마치 제롬의 책 속에 묘사된, 풍자를 알아듣지 못하는 그의 동시대 사람들을 연상시킨다. <Three Men on the Bummel>의 한 대목에는 남의 자전거를 고쳐준답시고 분해해서 망가뜨려 놓은 사람에 대한 농담조의 설명이 나온다.

 

    He said: “Something has happened to this front wheel of yours.”

    “It looks like it, doesn’t it?” I answered.  But he was the sort of man that never understands satire.

 

    <Three Men in a Boat>의 주인공들이 얼핏 게으르고 멍청해 보이는 이유는 주로 저자가 반어적 과장을 1인칭 화자인 주인공(즉, 자기 자신)을 향해 사용한데서 비롯된다. 이 책 속에는 타인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포착하는 그의 능력과, 자기 자신도 그런 부조리 속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는 그의 지혜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 “J”는 타인들의 어리석음을 한탄한 다음, 그보다 조금 더 편안한 태도로 두 친구들의 실수를 질타하고, 종종 그보다 더 한심한 스스로의 실수를 짐짓 의뭉스럽게 설명한다. 어리석음을 가장하는 그 의뭉스러움 속에 제롬식 유머의 비결이 숨어있다. 예컨대, 아내의 어리석음을 한탄하는 가운데 자신이 아내보다 한 수 아래임을 드러내는 것과 같은 대목에서 그의 어법은 반어적 풍자의 극치를 보여준다. 스스로를 희화하는 농담 속에는 수준 높은 성찰적 지성(reflective intellect)의 기미가 번득인다. 그 펀치라인을 놓친다면, 이 책은 그야말로 바보들의 여행기로만 보일 것이다.

 

    이 재미난 책을 이렇듯 지루한 어조로 소개한 것은 사죄를 구해야 마땅한 일이겠으나, 섣불리 제롬의 책을 풍자조로 소개한다면 그거야말로 마치 노래로써 가수를 소개하는 것처럼 외람되고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 품위 있는 기지가 담겨있는 그의 문장들을 인용하여 주제별로 정리해둔 사이트가 있다.(http://www.jkjquotes.com/) 그의 문장들 중 인용하고 싶은 것들을 다 추려내자면 책 전체를 베껴야 할 테지만.

 

< 추신 >

 

    제롬의 <Three Men in the Bummel>이 1900년에 출간된 사실을 감안한다면, 그가 독일인들을 다음과 같이 꿰뚫어 보고 있었다는 사실은 섬찟한 느낌을 줄 정도다. 아마도 그가 영국인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The curious thing is that the same man, who as an individual is as helpless as a child, becomes, the moment he puts on the uniform, an intelligent being, capable of responsibility and initiative.  The German can rule others, and be ruled by others, but he cannot rule himself.  The cure would appear to be to train every German for an officer, and then put him under himself. (생략) Their everlasting teaching is duty.  It is a fine ideal for any people; but before buckling to it, one would wish to have a clear understanding as to what this “duty” is.  The German idea of it would appear to be: “blind obedience to everything in buttons.” It is the antithesis of the Anglo-Saxon scheme; but as both the Anglo-Saxon and the Teuton are prospering, there must be good in both methods. Hitherto, the German has had the blessed fortune to be exceptionally well governed; if this continue, it will go well with him. When his troubles will begin will be when by any chance something goes wrong with the governing mach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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