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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marillion

posted May 27,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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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마릴리온 (Silmarillion)

- 1977(사후출간), John Ronald Reuel Tolkien, 2004, 김보원 역, 씨앗을 뿌리는 사람

 

    도저히 혼자 힘으로 해낼법 하지 않은 일을 해내는 사람들이 있다. 19세기 말에 태어난 영국 작가 톨킨은 20세기 인류에게 새로운 신화를 선사해 주었다. 언어학자다운 기호학적 신중함이 그의 작품세계를 지배한다. (톨킨이 방대한 작품을 쓰게 된 동기는, 자신이 창조한 엘프어(Elvish)를 구현할 수 있는 가상의 세계를 구축하고 싶어 한 데서 출발했다고 한다.) 그의 문장을 읽는 일은 크나큰 미학적 만족감을 준다. 쉽고 빠르게 읽히는 문장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의 책은 품위 있는 영어의 용례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교과서이기도 하다. 소설을 통해 언어를 배우는 일에 너무 극성스럽게 접근할 필요는 없다고 보지만, 그의 작품이라면 좋은 번역본과 원본을 대조해 가며 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언어학적 도전’에 매몰되기에는 내용이 너무 재미있고, 내용만 건성으로 따라가기에는 그의 문장들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다.

 

    톨킨의 최고 걸작은 의심할 바 없이 <The Lord of the Rings>다. <Silmarillion>은 톨킨의 사후인 1977년 그의 아들인 크리스토퍼 톨킨이 부친의 유고를 정리하여 출판하였다. 보석 실마릴에 대한 이야기인 <Quenta Silmarillion>을 포함하는 네 편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는 <Silmarillion>은 <The Lord of the Rings>의 배경이 되는 middle-earth의 창조신화에서부터 시작한다. 사실 <Silmarillion>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엇갈린다. 부친의 미완성 유고들을 아들이 짜깁기한 아류작이라는 혹평에서부터, 일관된 내러티브가 없는 창작노트에 불과하다는 평까지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he Hobbit>과 <The Lord of the Rings>의 창조적 성취에 도취된 독자라면 <Silmarillion>을 펼쳐들고 일종의 고고학적 황홀경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Silmarillion>의 주인공은 수십년간 자기만의 세계를 조금씩 완성시켜 나가던 작가 자신인 것이다.

 

    가상세계의 역사서라는 점에서, <실마릴리온>은 이중의 신화라는 성격을 가진다. 그런 만큼, <실마릴리온>은 장중하고 아름답다. BC 8세기의 인류가 호메로스를, BC 1세기에 베르길리우스를, 14세기에 단테를 가졌다면, 20세기 인류는 톨킨을 가진 셈이다. 톨킨의 작품은 북구의 설화에 일정한 빚을 지고 있고, 그 가장 큰 수혜자는 자신들의 신화를 하사받은 영국인들일 것이다. 그러나 톨킨의 신화적 세계가 지나친 지방색에 갇혀있는 것은 아니다. 하기야, 지방색을 탈색한 어떤 문학작품이 아름다울 수 있으랴.

 

    톨킨은 고대 켈트족 신화와 북유럽의 신화에서 많은 소재를 얻었다. 특히 베오울프 해석에 있어서 톨킨은 하나의 전환점을 마련한 학자로 인정받고 있다. 북유럽에서 전승되던 신화를 바탕으로 금세기 초에 창작된 또하나의 걸작 <니벨룽겐의 노래>와 톨킨의 <반지의 제왕>이 무시하기 어려운 공통성을 가진다는 점은 흥미롭다. 바그너가 히틀러에 의해 숭배되고 이용되었던 데 반해 톨킨의 반지원정대는 자유를 향한 싸움의 상징이 되었다는 점은 묘한 아이러니처럼 느껴지지만, 당초부터 두 작품이 ‘저주받은 반지’를 다룬 태도는 그만큼 큰 차이를 내포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톨킨이 초래한 문제가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그의 성취가 너무 높고 큰 나머지 환타지 장르 전체가 그의 그늘 아래서 벗어나지 못하게끔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비록 문학적 완성도에 있어서 톨킨과 나란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J.K. 롤링스의 <Harry Potter> 시리즈의 상업적 성공이 가지는 의미는 환타지 장르가 비로소 톨킨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데도 있다고 하겠다.

 

    <Silmarillion>의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이렇다. 먼 훗날 엘프들이 일루바타르라고 부르게 되는 유일자 에루가 창조주로 등장한다. 에루는 가장 먼저 거룩한 존재들인 아이누르를 창조하고 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쳐 주었다. 아이누들은 에루의 선율을 형상화하면서 세상의 피조물들을 만들어냈다. 이들 중 가장 탁월하고 강력한 존재였던 멜코르에게 교만한 마음이 일어나, 그는 에루의 선율과는 무관한 스스로의 선율을 추구했으며, 동료 아이누르 중에서도 멜코르에 동조하는 자들이 생겨났다. 아이누들의 합창(또는 합주?)의 결과물로 창조된 세계는 아르다라고 일컬어지는데, 아르다에 진입한 아이누는 신적 존재인 발라들과, 일종의 반신(demi-gods)인 마이아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후일 검은 적 오르고스라고 불리게 되는 멜코르는 열 다섯 명의 발라 중 한 명이고, 톰 봄바딜을 비롯해서 사우론, 간달프, 사루만 등 제3시대 ‘반지전쟁’에 활약하는 인물들은 마이아에 해당한다.

 

    멜코르에 이끌린 마이아 영들 때문에 최초의 전쟁이 일어나고, 그 후 등불의 시대, 나무의 시대, 암흑의 시대, 별들의 시대를 거쳐 태양의 시대에 이르는 동안 양 진영간의 투쟁은 계속된다. 멜코르는 태양 제1시대 말에 최종적으로 패배하여 영원한 공허 속으로 쫓겨난다. 제2시대부터는 멜코르의 부하 가운데 가장 강력했던 사우론이 멜코르의 뒤를 이어 암흑의 제왕으로 활동한다. 그는 제3시대 말기에 일어난 반지전쟁에서 패배하고, 비로소 신화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인간의 시대가 도래하게 된다. 이런 대략의 역사를 바탕으로, <Silmarillion>에는 엘프와 인간 종족에 속한 여러 인물들의 모험과 사랑과 희생과 배신과 전쟁의 드라마가 담겨 있다.

 

    노파심에서 덧붙이자면, 2001년에서 2003년 사이에 만들어진 피터 잭슨 감독의 <The Lord of the Rings> 삼부작은 비교적 성실하게 잘 만들어진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행여나 이 영화들만 관람하고 나서 톨킨의 작품세계를 맛보았다고 여긴다면 그건 천만부당한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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