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와 자유 (Capitalism and Freedom)

posted Feb 07,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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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와 자유 (Capitalism and Freedom)

- 2002, Milton Freidman, 2007, 심준보, 변동열 역, 청어람미디어

 

    소설가 복거일은 ‘정의로운 체제로서의 자본주의(2005,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자본주의는 효율적이지만 정의롭지 못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그른 생각이다. 자본주의는 정의로운 체제다. 실은, 그것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어떤 체제보다 정의롭다. 불행하게도, 자본주의가 정의로운 체제라는 사실을 밝히는 일은 쉽지 않다. 자본주의 사회들에서 사람들이 풍요와 자유를 누리지만, 공산주의나 국가사회주의 사회들에선 사람들이 풍요는 말할 것도 없고 자유와 법의 보호를 누리지 못한다는 사실은 이론의 여지가 없을 만큼 명백하다. 따라서 자본주의가 일단 공산주의나 국가사회주의와 같은 체제들보다 정의롭다는 결론은 피할 길 없다. 그러나 자본주의와 그것을 떠받치는 이념인 경제적 자유주의가 정의롭다는 것은 직관적으로 또렷하지 않고 길고 어려운 설명이 따라야 비로소 밝혀질 수 있다. 반면에, 평등을 내세우는 주장들은 직관적으로 옳게 여겨진다. 자본주의의 반대자들이 자본주의의 변호자들보다 늘 목청이 높았고 훨씬 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렸다는 사정이 이상하지 않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는 오묘한 방식을 깨우치는 일은 쉽지 않다. 그것은 게으른 직관과 섣부른 감정의 파도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진리의 등대를 겨냥할 수 있는 지적 수양 속에서만 온전히 모습을 드러낸다. 아담 스미스 이래로,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자유라는 사실을 가르쳐 준 인류의 스승은 많았지만, 밀튼 프리드먼만큼 그 관계를 분명하게 설명해준 스승을 찾기는 쉽지 않다.

 

    밀튼 프리드먼은 1912년 뉴욕에서 태어났고, 시카고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컬럼비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1946년부터 30년간 시카고대학의 교수로 재직했고, 그 후 샌프란시스코의 스탠포드대학 소속 후버연구소의 원로연구원으로 재직했다. 그는 1976년, “소비분석, 통화의 역사 및 이론에서의 업적과 경기안정화 정책의 복잡성”을 설명한 공로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자본주의와 자유’외에 그의 저서로는 ‘미국의 통화사’, ‘미국과 영국의 통화추세’등이 있다.

 

    프리드먼은 ‘자본주의와 자유’에서 확신에 찬 어조로 자유를 옹호하지만, 그는 자유라는 관념에 - 이를테면 프레드리히 하이예크처럼 - 철학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그는 추상적인 관념의 가치를 논증하는 대신, 현실적으로 사회가 누리는 자유의 총량을 가장 크게 만들 수 있는 제도를 설명함으로써 자유의 몸통이 어떤 생김새를 가지고 있는지를 우리 앞에 드러내 보여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경제학이 어째서 사회과학의 정점에 서 있는 학문인지를 독자들이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이 책의 목차를 살펴보자면, 경제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의 관계, 자유사회에서 정부의 역할, 화폐의 통제, 국제금융 및 무역제도, 재정정책, 교육에서의 정부 역할, 자본주의와 차별, 독점 및 기업과 노동자의 사회적 책임, 면허제도, 소득분배, 사회복지정책, 빈곤의 완화, 등으로, 경제학 원론 교과서를 닮아 있다. 사실 이 책은 대중서적으로 저술되었으니 놀라운 일은 아니다. 정작 놀라운 것은, 그러한 목차를 가지고도 정치학 교과서가 다룰 수 있는 거의 모든 중요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라고 하겠다.

 

    촌철살인적인 그의 가르침 중에 인상적인 것들만 인용한다고 하더라도 책 한권을 거의 다 베껴적어야 할 만큼 ‘자본주의와 자유’는 버릴 부분이 없다. 공교육이 갈 길을 모르고 표류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실정에 비추어 볼 때, 교육제도와 관련된 그의 주장들은 깊이 검토해 볼 가치가 그만큼 크다. 무역과 관련하여 보호주의가 무역 당사국 모두에게 해롭다는 자명한 사실도, 새삼스럽게 지역간 FTA의 유행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요즘 한층 큰 울림을 가진다. 사회복지정책이 많은 경우에 불우한 계층의 불행을 더 깊게 만든다는 그의 가르침도 빛을 잃지 않고 있다.

 

    특히, 프리드먼이 기업과 노동자의 사회적 책임에 관해 논파한 내용을, 그보다 더 깔끔하게 설명한 것을 나는 본 적이 없다.

 

     기업경영자들과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주주와 노조원들의 이액에 봉사하는 것을 넘어서는 ‘사회적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견해가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러한 견해는 자유경제의 성격과 본질을 근본적으로 오해하고 있다. 자유경제에서 기업이 지는 사회적 책임은 오로지 하나뿐인데, 이는 게임의 규칙을 준수하는 한에서 기업이익 극대화를 위하여 자원을 활용하고 이를 위한 활동에 매진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노조 지도자들의 ‘사회적 책임’은 조합원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이다.... 나는 공익을 위한다는 사람들치고 실제로 공익에 많은 도움이 된 예를 알지 못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쩐지, 마치 자신들이 ‘공인’이라고 주저 없이 이야기하는 요즘의 배우들을 떠올리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연예인들(celibrities)이 유명세(publicity)와 공적인 일(public affairs)을 혼동하는 것과 흡사한 빈도로, 기업이 기업하는 외에 무언가 다른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매우 해로운 견해를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다. 그런 오해가 어쩐지 ‘직관적으로 옳게’ 느껴진다는 이유로.

 

    밀튼 프리드먼은, 인류가 모실 수 있는 행운을 누렸던 다른 스승들처럼 명징한 사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그가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였다는 이코노미스트의 평가는 결코 허풍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 스스로 서문에서 밝혔듯이 이 책이 1962년 처음 발간되었을 때만 해도 “이 책의 견해는 주류에서 한참 벗어나 있어서... 전국적인 주요 인쇄매체에서는 전혀 소개되지 않았다. 미국의 주요 대학교수가 대중을 겨냥해서 썼으며 그 후 18년간 40만부 이상 판매된 책이 그런 홀대를 받은 것이다. 만약 경제학계에서 그에 비견할 만한 위치에 있는 대학교수가 복지국가나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에 대해 우호적인 책을 냈다면 그렇게까지 무시당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복거일 선생이 지적한 대로, 경제적 자유주의가 정의롭다는 것은 길고 어려운 설명이 따라야 비로소 밝혀질 수 있는, 어려운 길인지도 모른다. 그 길 위에 발을 들여놓기는 수월치 않지만, 그러나 막상 그 길은 잘 훈련된 지성의 사도들이 수호하는, 아름답고 잘 닦여진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