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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exus and the Olive Tree / The World is Flat

posted May 27,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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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exus and the Olive Tree : Understanding Globalization

- 1999, Thomas L. Friedman, Anchor Books(Random House, NY)

 

The World Is Flat : A Brief History of the Twenty-first Century

- 2005, Thomas L. Friedman, Farrar, Straus and Giroux(NY)


 

    세상에는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도록 이끄는 힘이 있는가 하면, 서로 다투게 만드는 힘도 있다. 人生世間은 지킬 박사 같기도 하고 하이드씨 같기도 한 것이다. 정치학에서 현실주의와 이상주의, 권력정치이론과 통합이론이 서로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하듯이, 두 가지 면을 고루 보지 못한다면 인간사회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히기 마련이다. <From Beirut and Jerusalem>과 <Longitudes and Attitudes>가 뉴욕타임즈 컬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본 ‘하이드’로서의 세상에 관한 그의 글이라면, <The Lexus and the Olive Tree>와 <The World is Flat>은 그가 본 ‘지킬 박사’ 같은 세상에 관한 책이다.

 

    내가 프리드먼을 만나 본 것은 유엔 회의장에서였다. 그는 2000년 유엔 제2위원회(경제위원회)의 의장인 마부바니 싱가포르 대사의 초청으로 2위원회 특별회의의 연사로서 세계화에 대한 견해를 피력했고 질의와 응답 시간을 가졌다. 글이 좋은 사람들은 말이 어눌한 경우가 많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터여서 나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건만 그의 언변은 부흥회 전문 목사를 연상시킬 정도로 강렬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것이었으며, 컬럼에서 나타나는 재기와 촌철살인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달변이었다. 난다 긴다 하는 각국의 대표들이 던지는 까다로운 질문들을 떡 주무르듯이 답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역시 뉴욕타임즈의 고정 컬럼니스트는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느꼈다. 그보다 중요하게, <The Lexus and the Olive Tree>를 통해서 프리드먼이 몸소 증명한 것은 평생 그침 없이 계속되어야 하는 공부의 중요성이다.

 

    프리드먼은 자신의 책에서 “컬럼니스트로서 살아남기 위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안경(lenz)를 하나씩 더 써야만 했다”고 고백한다. 그는 중동특파원을 마치고 베이커 국무장관의 브리핑을 취재하던 날 브리핑 내용을 전혀 이해할 수 없어 “머릿속이 온통 어지러웠으며, 약자들의 의미도 알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솔직함은 그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인지라, 그는 당시 CONTRA가 ‘우리 편인지 나쁜 편인지’도 구별할 수 없었고 CFE가 Cafe의 오타는 아닌가 생각했다며 능청스레 자신의 당혹감을 회고한다. 그러던 그는 1992년 일본에서 신간센 열차를 타고 토요타 공장을 방문하여 렉서스 자동차를 조립하는 최첨단 기계설비를 견학한 후 자신이 그동안 취재해 왔던 중동의 종족분쟁과는 심각하게 모순되는 어떤 힘이 세상에 작용하고 있는 기미를 느낀다. 그가 ‘세계화“라는 안경을 덧쓰는 순간이었다.

 

    학부에서 지중해연구를 전공하고 중동정치로 박사학위를 받아 중동문제 전문가로 이름을 날린 언론인이었던 그는 자신의 전공분야였던 정치문제를 절반의 진실, 그것도 그냥 절반이 아니라 보다 덜 중요한 절반의 진실로 받아들이고 미지의 분야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하여 세계화 현상에 관한 가장 영향력 있는 저술가 겸 강연자들 중 한 명이 된 것이다. 그는 열정적인 어조로 세계화 현상에 기대감을 표하기 때문에, 세계화의 그늘을 바라보는 사람들로부터 자주 비판의 대상이 된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컬럼은 그를 가리켜 ‘자유무역 근본주의의 대제사장’이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한다. 세계화는 나쁜 것일 수도 있지만, 아침이 되면 새벽이 오듯이 막을 수는 없는 대세이므로 반대할 시간이 있으면 준비하는 데 쓰는 편이 차라리 더 낫지 않겠느냐고.

 

    그는 90년대 후반에 벌써 세계화의 진정한 규모와 폭을 알아차린 소수의 선각자들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구소련의 몰락, 아시아의 금융위기, 브라질 국영기업의 도산, GM과 IBM의 경영난이 모두 다 한 가지 현상의 다른 증상들임을 꿰뚫어 보았다. 그것은 바야흐로 벽(wall)이 붕괴하고 그 자리에 망(web)이 짜여지는 일련의 과정이었다. 벽으로 둘러쌓인 비효율적인 조직이 겪는 증상을 그는 Microchip Immune Deficiency Syndrome(MIDS)라고 이름 붙였다.

 

    2001년에 벌어진 9/11 테러사건은 세계화가 재화와 용역의 시장만을 넓혀준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우쳐 주었다. 중동정치는 프리드먼의 전공분야였으므로, 그의 컬럼의 영향력은 더 커졌다. 이라크의 현 상황은 세계화에도 불구하고 올리브 나무를 둘러싼 분쟁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라는 그의 전망을 증명하고 있는 중이다. 그가 2005년에 출간한 <The World Flat>은 <The Lexus and the Olive Tree>가 끝났던 지점에서 다시 이어가는 그의 세계화론의 속편에 해당한다. 책의 제목을 설명하는 첫머리에서 그는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그 옛날 콜롬부스의 목적지였던(그러나 도착하지 못했던) 인도를 방문한 프리드먼은 콜룸부스가 지구가 둥글다는 믿음을 가지고 동쪽으로 항해해서 인도가 아닌 신대륙을 발견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자신은 더 지름길인 서쪽으로 비행하여 인도에 정확이 도착했지만 방갈로어의 첨단산업시설을 보고 나서 어느새 지구가 평평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능청스러우면서도 간명한 수사는 그의 장기다.

 

    이 책에서 그는 세상을 평평하게 만든 동력으로서 (1) 베를린 장벽의 붕괴 - 벽이 사라지고 창(MS Windows)이 나타나다!, (2) 웹브라우저의 출현, (3) Work Flow Software, (4) Onpen-Sourcing, (5) Outsourcing, (6) Offshoring, (7) Supply-Chaining, (8) Insourcing, (9) In-forming, (10) The Steroids(무선통신기술 등 부가적 기술혁신) 등을 꼽는다. 우리 경제상황과 연관지어서도 곱씹어볼 내용이 아닐 수 없다.

 

    프리드먼은 최근 들어서 정치와 경제를 아우르는 자신의 입장을 ‘미국의 에너지 절약정책’으로 집약시킨 것처럼 보인다. 화석연료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미국인들을 석유소비 감소의 길로 유도하는 것이 환경보호에도 유리할 뿐 아니라, 미국의 대중동정책의 지렛대(leverage)도 키워주고, 테러리스트에게 흘러들어가는 자금줄도 차단시키는 길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 그 요지다. 중요한 논지일 뿐 아니라 설득력도 크고 방향도 올바른 것으로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동의 정세를 논하면서 그가 보여준 통찰력의 깊이라든지, ‘세계화’라는 거대담론(그의 표현을 빌리면 ‘Super-story’)에 접근하는 그의 자못 비장한 태도를 생각한다면, 에너지 절약론은 정치와 경제를 아우르는 프리드먼 식의 변증법적 결론 치고는 어딘가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 같다는 느낌을 지우기는 어렵다. 나는 프리드먼의 팬으로서, 그의 그러한 논지가 혹시나 ‘보이지 않는 손’의 위력을 보아버린 리버럴로서 그가 선택한 궁색한 피난처는 아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도 그의 활약을 지켜볼 일이다. 컬럼니스트는 자신의 내공을 오로지 컬럼으로써만 보여줄 테지만.

 

■ 첨언

 

10여년 전 <The Lexus and the Olive Tree>를 선배동료들과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눴을 당시, 우리의 관심을 모았던 질문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 지역문화(이른바 Indegenous culture)의 보존 문제, 즉 현명한 ‘Glocalization’의 조리법은 무엇인가?, 가령 21세기 한국어의 운명은 무엇인가? (참고, 복거일 저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

- 마치 우주가 한없이 팽창한다는 물리학자들의 견해처럼, 기술의 진보가 이끄는 시장의 팽창은 한계점이 없는 것인가?

- ‘올리브 나무’는 시대적 폐물인가? 이른바 ‘베스트팔렌 조약 체제’라고 부를 수 있는 Nation state 체제의 장래는 무엇인가? 우리의 ‘올리브 나무’는 어떤 성격의 것인가?

- 세계화에 걸맞는 정치철학은 어떠한 것인가? 우리 민족은 cosmopolitan이 될 것인가?

- 시장 참여자의 도덕적 해이, 새로운 종류의 투기 등 확대된 시장이 야기하는 새로운 위험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가? (당시 우리는 주로 마이클 밀켄의 정크본드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지만, 돌이켜 보면 이 질문은 최근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와도 관련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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