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
- 1962, Thomas S. Kuhn, 1996(The Third Edition),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언어학에서 ‘어형의 표준예’를 의미하던 ‘패러다임(paradigm)’이라는 용어는 토머스 쿤 이후로 다른 뜻을 지니게 되었다. 정확히 말해서 쿤이 바꿔놓은 것은 단어의 뜻만이 아니라 인간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다. 패러다임은 이론적인 틀을 의미하므로, 새로운 패러다임이 발생하는 과정을 설명한 쿤의 저서 <The Structure of Scentific Revolution>
1922년 미국 신시내티에서 태어난 쿤은 1940년에 하버드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모교에서 비전공 학생들에게 자연과학의 핵심 방법론을 가르치는 조교가 되었다. 이 때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 개념이 현재의 과학적 전제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개념 위에 서 있고, 그 위에서 바라보면 매우 합리적인 이론이라는 점을 깨달았다고 한다. 패러다임 이론이 발아하는 순간이었다. 쿤은 과학에서 이상(anomaly) 상황이 증가하면 위기(crisis)가 발생하고, 혁명을 거쳐 새로운 정상과학(normal science)가 탄생하는 과정을 설명했다. 또한 그는 서로 다른 패러다임 사이에는 과학적 소통 불가한 사정을 드러내 보여주었다. 과학혁명이란, 두 개 이상의 패러다임이 정상과학의 자리를 두고 다투는, 또는 혼재하는 기간을 말한다.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
그런 사정 때문에 쿤의 이론은 그것이 가진 정확한 함의와는 다소 무관하게, 과학도 마치 왕정이 붕괴하고 공화정이 세워지는 것 같은 사회적 혁명과 유사한 과정을 거쳐 발달한다는 취지로 더 자주 인용되었고, 때로는 급진적 사회혁명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뒷받침하는 이론으로 동원되기도 했다. 단순히 ‘아이디어’ 또는 ‘의견’이라고 써야 옳을 경우에까지 남용되고 있는 패러다임이라는 용어는 아마도 오늘날 가장 인기 있는 비유의 대상이 되고 있는 추상명사에 해당할 터이다.
쿤의 패러다임 이론이 가지는 또다른 중요한 함의는 ‘단 하나의 절대 불변의 진리는 없다’는 점이다. 그것은 인간이 추구하는 진리가 발전의 과정 자체에 내재한다는 믿음이다. 이것은 겸손한 믿음이고, 윤리학적으로 易地思之를 가능케 하는 믿음이다. 예컨대
이 책이 인문학과 사회과학에 압도적인 영향을 미친 이유는 그것이 과학서적이라기 보다 철학서적이기 때문이다. 철학은 크게 논리학, 미학, 윤리학, 정치학, 형이상학이라는 다섯가지의 분야로 이루어진다. “인식론은 근대철학을 유괴하여 거의 그 몸을 파멸시켜 버렸다”는 윌 듀란트의 관찰처럼, 현대철학은 유독 형이상학, 그 중에서도 인식론의 범주에 대부분의 노력을 할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패러다임 이론은 현대를 특징짓는 대표적인 인식방법론이다. 거짓 예언자들을 경계하자, 그것을 통해서 바라볼 때 세상이 완전히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면, 어떤 주의/주장이나 개념은 - 아무리 용해 보이더라도 - 패러다임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