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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문 3부작(射鵰三部曲)

posted Mar 31,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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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문 3부작(射鵰三部曲)

- 1957-1961, 金庸, 2003-2007, 임홍빈/이덕옥 역, 김영사

 

   세상은 무협소설을 읽는 사람들과 읽지 않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구분 속에는 동어반복 이상의 뜻이 담겨 있다. 그 양 극단에 “무협지 나부랑이나 읽는 사람들을 깔보는” 부류와 “무협지보다 고상한 척 하는 소설들은 위선적이라고 믿는” 부류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자식들이 자기가 경험해보지 못한 즐거움의 뜻을 함부로 폄하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김용의 삼부작을 권한다. 섣부른 탐독을 경계할 수 있다면, <사조영웅전>은 초등학교 고학년에, <의천도룡기>는 중학교때, 이성간의 성애적 복선이 짙은 <신조협려>는 고등학교때쯤 읽어도 좋으리라.

 

    우리 주변에 늘 있어 온 ‘무협지에 도가 튼’ 친구들은, 그 분야로 남들보다 좀 깊이 빠져본다 해도 매력적인 인성 형성에 큰 해악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입증한다. 적어도 내 경험에 따르면 그랬다. 게다가 김용의 작품들은 기본적으로 역사공간 속에서 펼쳐지는 내용이어서, 중․근세 중국사의 몇몇 장면들을 인상 깊게 떠올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무엇보다, 최근 들어 과학소설을 멀리 젖히고 청소년층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환타지 장르가 모두 서구의 환상소설임을 생각한다면 동양적 환상소설의 명맥을 유일하게 잇고 있는 무협소설에 대해 야박하게 굴기 어렵다는 점이 드러난다. 우리나라의 젊은 환타지 작가들조차 <봉신방>, <서유기>에서 발원하여 <구운몽>까지 흘러왔던 동양적 전통을 저버리고 ‘드래곤’과 ‘마법사’들이 뛰노는 소설을 쓰고, 그것들이 널리 읽히고 있는 것이 현실인 터에야!

 

    이렇게 쓰고 보니 마치 내가 사조삼부곡을 ‘쓰지만 몸에 좋은 약’처럼 권하고 있는 것 같아 첨언하지 않을 수 없다. 김용의 작품들은 매력적이고 독특한 캐릭터들로 가득차 있고, 이들은 작품 전체를 통해 일관성을 잃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모든 인간에게 가장 큰 약점은 자신의 가장 큰 장점이라는 역설을 이 책들은 보여준다. 또한, 어느 정도는 한문 번역소설이라는 특성에서 말미암겠지만, 저자 김용은 작중인물들을 감정이입 없이 바라보는 시점을 견지한다. 비록 등장인물 내면세계의 복잡함을 묘사하지 않는다는 한계를 명확히 안고 있기는 하지만, 그의 건조한 문체는 매우 독특한 울림을 가지기 때문에 그의 소설을 읽는 것은 그 자체로써 특이한 경험이다.

 

    이른바 <사조삼부곡>이라고 일컬어지는 세 개의 연작소설 <사조영웅전(射鵰英雄傳)>, <신조협려(神鵰俠侶)>, <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 등은 중국 절강성에서 태어나 홍콩에서 작품활동을 한 1924년생 작가 김용의 대표작이다. 이른바 '김학'의 연구가 중국 문화사의 가장 낭만적인 한 페이지가 되었을 만큼 그의 성취는 독보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사조영웅전>은 송-금-원 교체기라는 난세에 한족 영웅 곽정이 몽고족 영웅 테무친을 도와 빛나는 업적을 이루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곽정은 “독수리를 화살로 쏜” 진정한 영웅이지만, 천하를 얻는 것은 그가 아니다. 주인공 곽정은 순박하고 우직하며 진솔하다. 그의 아내인 황용은 꾀와 재치가 넘치고 인간적이다. 이 두 쌍의 남녀가 서로의 빈 곳을 메우며 성장하는 과정이 비장미 넘치게 그려지는 와중에, 동사, 서독, 남제, 북개, 중신통이라는 개성 만점의 절세고수들의 활약이 중원 무용담의 날줄과 씨줄을 이룬다. 성실하지만 우둔한 인물의 성공담에 박수를 치지 않을 자, 우리 중 누구이겠는가?

 

    <신조협려>는 송이 몽고족의 침입을 당하던 시기를 배경으로 어려서 부모를 여읜 소년 양과와, 그의 스승이 된 소용녀, 그러니까 두 사제간의 사랑 이야기를 기둥 줄거리로 삼고 있다. 양과는 정규학업과는 거리가 멀지만 세상물정에 밝은(street-smart), 천부적인 꾀돌이다. (아줌마 황용과 소년 양과의 머리싸움이 긴장감을 더해준다.) 반면 소용녀는 이를테면 남성들의 가장 치기어린 성적 환타지를 구현한다고나 할까, 절세고수이자 절세미녀이면서도 세상물정에 대해서는 백치에 가까운 무심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 한쪽 팔을 잃는 고난을 겪으면서도 의젓한 초고수 협객으로 성장하는 주인공 양과의 성장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원-명 교체기 직전의 시대를 배경으로 삼은 <의천도룡기>에서는 후일 명나라의 기틀을 이루는 명교 세력이 등장한다. 전설의 고수 곽정과 황용이 무림비급을 봉인한 의천검과 도룡도를 함께 취하는 자는 중원무림을 지배한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도룡도의 행방을 함구한 탓에 피살된 의리의 사나이 장취산의 아들 장무기가 주인공이다. 우유부단하지만 여복도 많은 장무기(양조위가 그의 배역에 딱 어울렸다)는 주지약, 은리, 서역의 여자 소소, 몽고족 왕녀 조민 사이에서 좀처럼 마음을 정하지 못한다. 그런 그가 명교의 교주에 오르고, ‘무림지존’의 진정한 의미를 밝힌다. 의천검과 도룡도는 중원무림의 “절대반지”였던 셈이다. 도룡도를 품에 안고 도움을 거부하며 죽어가던 노고수의 모습은 골럼의 모습과 겹친다.

 

    김용의 여러 작품들 중 몇 가지를 더 권한다면, 소오강호(笑傲江湖, 1967)와 녹정기(鹿鼎記, 1972)를 우선 꼽을 수 있겠다. 다시 말하지만, 멀린과 랜슬롯을 알고 간달프와 프로도를 알면서 곽정과 장무기, 양과를 알지 못한다면 환상이라는 인간의 독특한 사고활동에 관해서 협량한 태도를 피하기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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