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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것의 역사 (A Short History of Nearly Everything)

posted Mar 04,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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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것의 역사 (A Short History of Nearly Everything)

- 2003, Bill Bryson, 2003, 이덕환 역, 까치글방

 

 

    모든 독서는 주관적 체험이다. 그러나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유독 별나게 주관적인 독서체험을, 나는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읽는 동안 가졌다. 어쨌든 과학사 책으로부터 마음의 평화와 위안을 얻었으니까. 마음에 무거운 것들을 올려놓고 지내던 2006년 겨울, 빌 브라이슨이 쉬운 말로 펼쳐 보여주는 우주의 크기와 시간의 역사는, 내 마음에 올려진 것들의 미미함을 간단히 증명해 주었다.

 

    이 책을 읽은 직후, 나는 식구들과 함께 옐로스톤 국립공원을 방문했다. 옐로스톤은 60만 년마다 대폭발을 겪었고, 폭발이 일어날 때마다 용암은 50만 제곱킬로미터를 뒤덮었다고 한다. 일부 학자들은 그 폭발이 공룡멸종의 원인이 되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브라이슨의 친절한 설명 덕분에 그곳에서 지난번 폭발이 있은 지 이미 63만년이나 지나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일종의 종말론적인 기분으로 공원을 통과했었다. 되도록 땅을 살살 밟으며.

 

    미국 아이오와 주 출신 여행작가 겸 수필가인 그는 더없이 재기 넘치는 이야기꾼이다. 그의 베스트셀러 <나를 부르는 숲(A Walk in the Woods)>에는 애팔래치아 산맥 종주를 시도했던 자신의 경험담이 담겨 있는데, 그는 여행과 글쓰기 양쪽 모두에서 색다르면서도 훌륭한 전범을 보여준다. 성인시절의 많은 부분을 영국에서 지냈고 (그의 부인은 영국인이다) 영국 독자들로부터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브라이슨의 또다른 장기는 영어 언어학이다. 비록 어학 전문가들로부터 일부 오류를 지적받고 있긴 해도, 언어학에 대한 그의 관심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브라이슨은 무릇 좋은 글은 글쓴이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야 한다는 점과, 좋은 글은 쉬운 글이라는 평범한 사실을 솔선하여 보여주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빌 브라이슨이 - 그리고 우리들 대부분이 - 어린 시절 딱딱한 과학교과서에 주눅이 들어 호기심을 접어 두었다가 작가가 된 후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모으고 정리한 자연에 관한 지식을 담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유년기의 호기심을 잘 간직하는 일의 소중함을 드러낸다. 거창한 제목에 어울리게, 이 책은 우주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우주의 광대함이 어째서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는지 보여주기 위해 그는 독자들의 상상력을 최대한 자극한다. 다시 지구의 크기로, 소립자의 세계로, 생명의 경이로움으로 이어지는 목차 속에서 고전 물리학과 지질학, 화학은 물론 20세기의 열역학, 양자론, 상대성 이론, 초끈 이론까지도 가볍게 소개되고 있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교양도서의 소임이 일반인들을 전문지식으로 유혹하는 데 있다는 점도 잘 보여준다. 대단한 재기발랄함으로. 그 몇 대목의 대략을 소개한다.

 

    실제로 상대적인 크기까지 고려해서 태양계를 그림으로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교과서에 여러 쪽을 펼칠 수 있는 면을 만들거나, 폭이 넓은 포스터용 종이를 사용하더라도 불가능하다. 상대적 크기를 고려한 태양계 그림에서, 지구를 팥알 정도로 나타낸다면 목성은 300미터 정도 떨어져 있어야 하고, 명왕성은 2.4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어야 한다.(더욱이 명왕성은 세균 정도 크기로 표시되어야만 하기 때문에 눈으로 볼 수도 없다.)... 목성을 이 문장 끝에 있는 마침표 정도로 표시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축소하면, 명왕성은 분자 정도의 크기가 되어야 하지만 여전히 10미터 떨어진 곳에 표시되어야만 한다.

 

    당신의 몸 속에 있는 원자들은 모두 몸 속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몇 개의 별을 거쳐서 왔을 것이고, 수백 만에 이르는 생물들의 일부였을 것이 거의 분명하다. 우리는 정말로 엄청난 수의 원자들로 구성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죽고 나면 그 원소들은 모두 재활용된다. 그래서 우리 몸 속에 있는 원자들 중의 상당수는 한때 세익스피어의 몸 속에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런 원자의 수가 수십억 개에 이를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부처와 칭기즈 칸, 그리고 베토벤은 물론이고 여러분이 기억하는 거의 모든 역사적 인물로부터 물려받은 원자들도 각각 수십억 개씩은 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윤회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죽고 나면, 우리 몸 속에 있던 원자들은 모두 흩어져서 다른 곳에서 새로운 목적으로 사용된다. 나뭇잎의 일부가 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몸이 될 수도 있으며, 이슬방울이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원자들은 실질적으로 영원히 존재한다.

 

    만약 45억 년이 되는 지구의 역사를 하루라고 친다면 최초의 단순한 단세포 생물이 처음 출현한 것은 아주 이른 시간인 새벽 4시경이었지만, 그로부터 열여섯 시간 동안은 아무런 발전을 보여주지 못했다. 하루의 6분의 5가 지나버린 저녁 8시 30분이 될 때까지도 지구는 불안정한 미생물을 제외하면 우주에 자랑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밤 9시 4분에 삼엽충이 헤엄치며 등장했고.... 밤 10시 직전에 땅 위에 사는 식물이 느닷없이 출현했다. 그리고 하루가 두 시간도 남지 않았던 그 직후에 최초의 육상동물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공룡은 밤 11시 직전에 무대에 등장해서 약 45분 동안 무대를 휩쓸었다. 그들이 자정을 21분 남겨 둔 시각에 갑자기 사라지면서 포유류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인간은 자정을 1분 17초 남겨둔 시각에 나타났다.

 

    지구에 존재했던 생물종 중에서 99.99퍼센트는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 않다. 시카고 대학의 데이비드 라우프가 즐겨 이야기하듯이, “모든 생물은 멸종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다.”..... 오로도비스기의 멸종(4억4,000만 년 전)과 대본기 멸종(3억6,500만 년 전)에서는 각각 80~85퍼센트의 생물종이 사라져버렸다. 트라이아스기의 멸종(2억1,000만 년 전)와 백악기 멸종(6,500만 년 전)에서는 각각 70~75퍼센트가 사라졌다. 그러나 정말 규모가 컸던 것은 오랜 공룡 시대의 막을 열어주었던 2억4,500만 년 전의 페름기 멸종이었다. 페름기에는 화석 기록으로 확인되는 동물종 중에서 95퍼센트가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곤충의 3분의 1도 사라져 버렸는데, 곤충이 그렇게 대량으로 사라진 것은 그때가 유일했다. 당시의 멸종은 완전한 소멸에 가장 가까이 갔던 경우였다.

 

    8대정도를 거슬러올라가서 찰스다윈과 에이브러햄 링컨이 태어난 시절로 돌아가면, 당신의 존재를 결정한 사람들의 결합에 참여한 선조의 수는 250명이 넘게 된다. 셰익스피어와 메이플라워호에 오른 청교도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당신 몸 속에 가지고 있는 유전 정보를 전해준 선조의 수는 16,384명에 이르게 된다. 20대를 올라가면, 당신의 출생에 기여한 사람의 수는 1,048,576명이 된다. 그보다 5세대를 더 올라가면 무려 33,554,432명의 남자와 여자가 헌신적으로 결합한 덕분에 당신이 존재하게 되었다. 30대 전으로 올라가면, 선조의 총 수는 10억명을 넘는, 1,073,741,824명이나 된다. 이들은 모두 사촌이나 삼촌이 아니라 별 수 없이 당신의 직계 선조들이다. 로마인들이 살던 64대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당신의 존재를 결정하는 데에 참여했던 사람의 수는 지금까지 지구에서 살았던 모든 사람들의 수를 합친 것의 몇 천배가 넘는 1018명이나 된다.... 약간의 근친상간이 없었러다면 당신은 도대체 지금 이곳에 있을 수가 없었다.

 

    빌 브라이슨이 우주의 크기, 생물 멸종의 역사, 지구의 위험 등을 설명하면서 독자들에게 촉구하고 있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 평소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우리를 둘러싼 것들에 대한 놀라움을 잃지 말 것. 둘째, 그 앞에서 겸허한 마음을 되찾을 것. 그에 더하여, 그는 무릇 지성인이 걸어야 할 끝없는 공부의 모범을 보여준다. 브라이슨은 이 책을 쓰기 전까지 ‘양성자가 뭐고, 단백질이 뭔지도’ 몰랐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3년 동안 세계의 여러 과학자들을 찾아가 설명을 듣고 현장을 답사하면서 지식을 모으고 소화해서 이 책을 썼다는 점은 그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감동적이다.

 

    자연과학은 우리가 “어떻게” 오늘날 현재와 같이 존재하게 되었는가라는 물음의 답을 찾는 노력에 다름 아니다. 그 물음 앞에서 궁금증을 품지 않는 정신은 지성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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