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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

posted Apr 11,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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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

- 1962, Thomas S. Kuhn, 1996(The Third Edition),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언어학에서 ‘어형의 표준예’를 의미하던 ‘패러다임(paradigm)’이라는 용어는 토머스 쿤 이후로 다른 뜻을 지니게 되었다. 정확히 말해서 쿤이 바꿔놓은 것은 단어의 뜻만이 아니라 인간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다. 패러다임은 이론적인 틀을 의미하므로, 새로운 패러다임이 발생하는 과정을 설명한 쿤의 저서 <The Structure of Scentific Revolution>은 일종의 메타-페러다임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이 책은 시카고대학 출판부가 발간한 학술서 가운데 가장 널리 읽힌 책이 되었고, 24개 국어로 번역되어 모두 100만부 이상이 팔렸다.

 

    1922년 미국 신시내티에서 태어난 쿤은 1940년에 하버드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모교에서 비전공 학생들에게 자연과학의 핵심 방법론을 가르치는 조교가 되었다. 이 때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 개념이 현재의 과학적 전제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개념 위에 서 있고, 그 위에서 바라보면 매우 합리적인 이론이라는 점을 깨달았다고 한다. 패러다임 이론이 발아하는 순간이었다. 쿤은 과학에서 이상(anomaly) 상황이 증가하면 위기(crisis)가 발생하고, 혁명을 거쳐 새로운 정상과학(normal science)가 탄생하는 과정을 설명했다. 또한 그는 서로 다른 패러다임 사이에는 과학적 소통 불가한 사정을 드러내 보여주었다. 과학혁명이란, 두 개 이상의 패러다임이 정상과학의 자리를 두고 다투는, 또는 혼재하는 기간을 말한다.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은 묘한 책이다. 과학자가 과학에 관해서 쓴 책이지만, 과학자들에게 영향을 주기보다는 과학의 발전이 사회혁명을 닮았다는 은유로써 더 열광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정상과학이라는 지배적 독트린이 보수적인 성격을 띄는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문제풀이 방식에 골몰하는 과학자들이 끊임없이 나타나는 이유에 대한 쿤의 설명은 왜 사회가 변화하는가를 연구하는 모든 사회과학자들에게 오늘도 영감을 불어넣어 준다. 쿤은 아리스토텔레스 패러다임과 뉴턴 패러다임 사이에, 혹은 뉴턴 역학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사이에 ‘공약 불가능성’(incommensurability)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공약 불가능성이란 두 패러다임이 같은 척도로 비교될 수 없다는 뜻인데, 합리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한다. 이를테면 공산주의와 자유주의 두 사상이 인간사회를 바라보는 방식들 사이에도 그런 식의 ‘공약 불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으므로, 과학이 발전해온 방식은 정치사상의 대결이 전개될 양식에도 일정한 예측가능성을 제공한다는 식의 영감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런 사정 때문에 쿤의 이론은 그것이 가진 정확한 함의와는 다소 무관하게, 과학도 마치 왕정이 붕괴하고 공화정이 세워지는 것 같은 사회적 혁명과 유사한 과정을 거쳐 발달한다는 취지로 더 자주 인용되었고, 때로는 급진적 사회혁명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뒷받침하는 이론으로 동원되기도 했다. 단순히 ‘아이디어’ 또는 ‘의견’이라고 써야 옳을 경우에까지 남용되고 있는 패러다임이라는 용어는 아마도 오늘날 가장 인기 있는 비유의 대상이 되고 있는 추상명사에 해당할 터이다.

 

    쿤의 패러다임 이론이 가지는 또다른 중요한 함의는 ‘단 하나의 절대 불변의 진리는 없다’는 점이다. 그것은 인간이 추구하는 진리가 발전의 과정 자체에 내재한다는 믿음이다. 이것은 겸손한 믿음이고, 윤리학적으로 易地思之를 가능케 하는 믿음이다. 예컨대 는 백인들에게 신대륙의 ‘발견’에 해당하는 것이 원주민의 패러다임에서 보면 잔학무도한 침략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 영화였다. 현대인들은 이러한 패러다임의 전환에 비교적 익숙하다. 때로는 지나치게 익숙한 나머지 도덕적 판단을 기댈 대들보를 잃어버리기도 한다. ‘何如歌’는 현대인의 윤리를 상징하는 노래가 되었다.

 

    이 책이 인문학과 사회과학에 압도적인 영향을 미친 이유는 그것이 과학서적이라기 보다 철학서적이기 때문이다. 철학은 크게 논리학, 미학, 윤리학, 정치학, 형이상학이라는 다섯가지의 분야로 이루어진다. “인식론은 근대철학을 유괴하여 거의 그 몸을 파멸시켜 버렸다”는 윌 듀란트의 관찰처럼, 현대철학은 유독 형이상학, 그 중에서도 인식론의 범주에 대부분의 노력을 할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패러다임 이론은 현대를 특징짓는 대표적인 인식방법론이다. 거짓 예언자들을 경계하자, 그것을 통해서 바라볼 때 세상이 완전히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면, 어떤 주의/주장이나 개념은 - 아무리 용해 보이더라도 - 패러다임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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