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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시

posted Feb 06,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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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봄베이 태생인 소설가 살만 루시디(Ahmed Salman Rushdie, 1947년생)는 14살에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케임브리지대학 킹스 칼리지 학부에서 역사를 전공했고, 1988년에 발표하어 세계적인 스캔들의 대상이 되었던 <악마의 시(The Satanic Verses)>로 명성을 얻었으며, 2007년에는 영국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그는 인도와 중근동지방의 고전과 현대문학을 절묘하게 결합하는 이른바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독특한 스타일을 구사한다.

 

<악마의 시>는 이슬람 예언자를 불경스럽게 묘사했다 하여 1989년 호메이니는 전세계 무슬림에게 루시디의 처형을 명하는 격문(fatwa)을 발표하고 그의 목에 300만불의 현상금을 걸었다. 루시디는 영국 정부의 보호 아래 숨어 살면서 수필 등을 통해 이슬람에 대한 존경과 사과의 뜻을 표했지만 용서받지 못했다. 1998년 호메이니의 죽음 이후에야 이란 정부는 영국과 관계를 정상화하면서 공개적으로 루시디에 대한 사형 선고를 집행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악마의 시>는 인도와 남아공 등에서 금서로 지정되었고, 세계 여러 곳에서 불태워지기도 했다. 1991년에는 일본어 번역자 이가라시 히토가 정체불명의 인물에게 살해당하고 이탈리아 번역자 에또레 카르리올로가 흉기에 찔려 중상을 입었으며, 1993년에는 노르웨이 출판사 사장이 공격을 받아 부상당하는 일도 있었다. 이런 사정 덕분에, 우리말 번역서(문학세계사)는 2001년에 가서야 연세대 김진준 교수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 책을 둘러싼 정치적 소란은 루시디를 세계적 유명인사로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지만, 그의 작품을 작품 그 자체로서 평가받기 어렵게 만들어버리기도 했다.

 

봄베이발 여객기가 런던 상공에서 폭발하고 두 남자가 살아남는다. 인도의 영화계에서 대스타였던 지브릴은 머리에 후광이 생기는 천사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영국에서 인기 성우였던 인도인 살라딘은 뿔과 염소의 발굽을 가진 악마의 모습으로 변해간다. 이야기는 현실과 환상을, 현재와 과거를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도대체 마무리를 어떻게 지으려고 이야기를 이런 지경으로 벌여놓는지가 내내 궁금한데, 소설은 내 친구의 표현처럼 ‘거장의 면모’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결말이 지어진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 소설의 방점은 종교와 인간의 선악과 같은 존재론적 고민에 있다. 그러나 지브릴과 살라딘의 위험무쌍한 모험담을 읽으면서 이러한 심오한 문제에 대해서 가지는 느낌은 독자마다 다를 것이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실감 나게 느꼈던 것은 이런 큰 주제들과는 좀 다른 부분이다. 이 책은 엄청나게 방대한 문화적 유산을 이어받은 인도 아대륙의 지성인이 어릴 때부터 서구적 정신의 세례를 받고, 영국이라는 제국의 그늘 속에서 살게 되면서 느껴야 했던 자기 정체성의 혼란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악마의 시>에서 루시디는 띄어쓰기를 무시하고, 문장부호를 생략하고, 낱말을 중간에서 잘라버리고, 단어들을 멋대로 합치기도 하고, 문장구조를 일부러 망가뜨리기 위해 동일한 품사 여러 개를 병렬시키기도 한다. 현란한 다변을 통해 해박한 지식과 상징과 은유를 마구 쏟아내기도 한다. 그의 이러한 글쓰기는 작품에 신학적 신비감을 더하는 역할도 하지만, 그보다는 직접적으로 영국에서 교육 받은 인도 작가의 자신에 대한 복잡무쌍한 애증의 표현처럼 보인다.

 

부유하고 영향력이 강한 부친의 슬하를 벗어나 영국에서 세속적인 출세를 하기 위해 영국인들보다도 더 가식적인 영국억양으로 말하는 소설 속 주인공 참차 살라딘은 실은 루시디 자신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막무가내로 구는데도 오리엔탈적인 매력을 풍기면서 세인들의 사랑을 받는 - 그러다가 비행기 사고를 당했는데도 신의 모습으로 변하기까지하는 - 지브릴의 모습은 루시디가 미워하고 벗어버리고 싶어 했던 자기 자신과 동족의 모든 모습을 한 데 모아둔 거였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본다면 이 소설의 결말은 한결 더 인간적이다.

 

이 책이 품고 있는 이슬람교에 대한 모독적 풍자는, 무슬림 신도가 아닌 독자들에게는 그다지 신랄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그를 지켜주고 보호해준 영국과 영국인들에 대한 모진 조롱과 풍자가 거기 들어있다는 점은 아이러니컬하다. 영국인의 문제점을 날씨에 빗대어 말하는 지브릴의 너스레가 재미있어서 따로 메모해 보았다. 루시디는 이 한 문단으로 영국과 인도를 싸잡아서 조롱한다. 어느 세계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 자, 영국인들의 문제점은 그들의:

그들의:

한마디로 말해서 - 지브릴은 엄숙히 선언했다 - 그들의 날씨다.

  구름을 타고 둥실 떠 있던 지브릴 파리슈타는 영국인들의 흐리멍덩한 윤리 의식이 기상학적 요인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의 논리는 다음과 같았다.

  "낮이 밤보다 따뜻하지 않을 때, 빛이 어둠보다 밝지 않을 때, 땅이 바다보다 건조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틀림없이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모든 것이 - 정당이든 섹스 파트너든 종교적 신념이든 - 그저 '비슷비슷 엇비슷', '둘러치나 메치나', '엉덩이나 궁둥이나' 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냐! 진실이란 극단적인 것이므로 '이것'은 '저것'이 아니고 '그 남자'는 '그 여자'가 아니다. 진실은 관람용 스포츠가 아니라 유격전이다. 간단히 말해서 '화끈하다'. 도시여!

  그의 외침은 천둥 소리처럼 대도시를 뒤흔들며 퍼져나갔다.

  "나는 너를 열대로 만들겠노라."

  지브릴은 런던을 열대 도시로 바꿨을 때의 이점들을 하나하나 열거했다: 윤리적 명확성이 증진되고, 시에스타가 국가적으로 제도화되고, 국민든 더 활달하고 대범해지고, 대중음악도 고급화되고, 나무 위에는 새로운 새들이 살고 (마코앵무새, 공작새, 코커투앵무새), 새들 밑에는 새로운 나무가 자란다 (코코야자, 타마린드나무, 수염을 늘어뜨린 반얀나무). 거리의 생활도 좋아지고, 대단히 화려한 빛깔의 꽃들이 피고 (자홍색, 주홍색, 네온그린색), 떡갈나무숲에는 거미원숭이들이 뛰논다. 에어컨과 천장 선풍기와 모기향과 살충제의 국내 소비량이 급증한다. 코이어(coir : 야자 껍질의 섬유로, 밧줄이나 돗자리 등을 만듦) 및 코프라(copra: 야자의 과육을 말린 것) 산업이 등장한다. 런던은 국제 회의 등등의 중심지로서 더 큰 매력을 갖게 되고, 더 우수한 크리켓 선수들이 배출되고, 프로 축구 선수들의 제구력도 더욱 강조되고, '높은 작업률'을 고집하던 영국의 무자비한 전통은 더위 때문에 힘을 잃는다. 종교열도 고조되고, 정치 소요도 늘어나고, 지식 계급에 대한 관심도 되살아난다. 영국인들의 냉정한 성격도 사라지고, 탕파는 영원이 추방되고, 그 대신에 퀴퀴한 밤마다 느릿느릿 향기로운 사랑을 나눈다. 사회적 가치관도 달라진다: 친구들은 약속도 없이 서로의 집을 불쑥불쑥 찾아가기 시작하고, 양로원들은 문을 닫고, 대가족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음식맛이 더 강해지고, 영국 화장실에서도 휴지뿐만 아니라 물도 사용하게 되고, 첫 장마비가 내릴 때 옷을 입은 채 달려보는 즐거움도 생긴다.

  단점은: 콜레라, 장티푸스, 재향군인병, 바퀴벌레, 흙먼지, 소음, 무절제한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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