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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초상 / 상실의 시대

posted Mar 0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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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과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는 동시대인이다. 아니,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8개월도 채 나지 않으므로 동갑이라고 말해도 크게 틀린 것은 아니다. (이문열이 48년 5월생, 무라카미가 49년 1월생이다.) 그러나 이 두 걸출한 소설가들의 작품세계는 결코 동시대적이지 않다. 이들의 작품이 구현하는 시대정신이 다르고, 문제의식도 다르며, 작품의 소재나 주제나 문체도 다르다. 하도 달라서, 다르다는 얘기를 굳이 한다는 게 이상할 지경이다.

이 두 작가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그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일 터이므로 섣부른 비교가 큰 의미를 갖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각기 19세에서 20세가 되는 무렵의 주인공을 내세워 쓴 이른바 자전적 소설의 경우는, 한 자리에 놓고 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들기도 한다. 그런 흥미가 생기는 까닭은, 한국의 60년대말과 일본의 60년대말을 비교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그것은 두 사람의 동시대인이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기록한 20년 가량의 시간적 낙차를 느끼게 해 준다.

한국전쟁은 일본에 대입할 수 없는 우리만의 불행한 경험이지만, 우리 사회가 일본의 60년대와 유사한 진폭으로 좌우 이념의 충돌을 경험하게 되는 것은 80년대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의 배경이 되고 있는 한국의 60년대에는 이념적 갈등이 표면화하기에는 너무나 또렷하고 가혹한 전쟁의 상처가 있고, 바꿀 도리가 없는 삶의 조건으로서의 가난이 있으며, 가난한 나라의 청년들이 드러내는 치열하면서도 자학적인 상승욕구가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는 이념적 격동으로부터 소외된 방향감의 상실이 있고, 풍요를 경험하는 세대의 허탈감이 있으며, 그런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겪는 자조적인 우울증이 있다. 두 책이 거의 정확히 같은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 두 소설은 불과 6년의 간격을 두고 출간되었다. (<젊은 날의 초상>은 1981년, <상실의 시대>는 1987년에 발표되었다.) 우리 독서계를 놓고 보자면, <젊은 날의 초상>은 80년대 대학생들의 필독서와도 같은 대접을 받았지만, 요즘은 찾는 이가 드문 책이 되어 있다. 반면, <상실의 시대>는 90년대와 2000년대를 관통하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작품성의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2000년대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하루키 작품 속의 배경을 더 닮아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젊은 날의 초상>은 <하구>, <우리 기쁜 젊은 날>, <그 해 겨울> 세 편의 독립된 중편소설로 이루어진 자전적 소설이다. 열 아홉살 주인공은 방황을 접고 형이 살고 있는 강진으로 내려가 대학입시를 준비하며 무진 애를 쓰고, 대학에 입학해서는 스스로 정신적인 성장을 기하기 위해 또다시 방황에 몸을 맡긴다. 경북 영양군에서 태어난 이문열 자신이 전쟁때 홀로 월북한 아버지를 두었으며(이 경험은 그의 걸작 <영웅시대>를 낳았다), 중학교 이래 모두 검정고시로 학업을 이어갔다. 서울대 사범대 국어교육과를 중퇴한 그는 사법고시를 준비하기도 했으나, 연좌제 등 이런저런 이유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 대신 우리 시대의 가장 뛰어난 소설가들 중 한 명이 되었다.

현실정치에 마음을 쓰는 작가 자신이 그러했듯, <젊은 날의 초상>의 젊은 주인공은 방황과 고난을 마다하지 않으면서도 의미 있는 현실을 끌어안으려고 애쓴다. 주인공이 찾으려고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인데, 그것은 현실세계 속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주체로서의 자신인 것처럼 보인다. 방랑과 고생 속에서도 주인공은 엄청난 양의 독서를 성장의 자양분으로 삼는다. 그래서, 이 책은 실은 평범한 모든 사람들을 대표하는 연대기가 아니라, 지식인들을 위한 성장소설이다.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의 주인공 와타나베 또한 독서광이라는 점은 우연의 일치 치고는 묘하다. 그의 독서는 무언가를 찾기 위한 탐색의 노력이 아니라, 단지 허무를 채우기 위한 몸부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루키의 주인공은 사회를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따위를 고민하지 않는다. 그는 외롭다. 그의 사랑도 외롭다. 그의 외로움은 너무나 절절한 나머지, 그의 외로움의 발현방식이 오늘날의 독자들을 매혹시키는 힘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어려서부터 서양음악과 서양문학에 심취했던 하루키의 소설은, 정확히 말하자면 국적불명이다. 이른바 '세계화 시대'의 소설인 셈이다.

하루키는 뛰어난 작가다. 무심한 듯한 어투에 담긴 감성은 섬세하고, 날렵한 문장은 더할 나위 없이 매혹적이다. <상실의 시대>는 그가 먼저 썼던 단편소설 <반디불이>에 살을 붙여 탄생한 장편인데, 주인공이 옥상에서 반디불이를 보면서 생각에 잠기는 장면을 묘사한 문장은 저 유명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의 도입부를 떠올리게 한다. 하루키의 팬들은 고독하고 우울한 감성을 숭배하게 되는 것인데, 거기에 너무 심취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소설이 아닌 수필을 쓸 때의 하루키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장난스럽고 일상적인 감성을 보여주기도 하니, 그의 소설이 그의 사람됨의 전모를 말해준다고 믿을 필요는 없겠기 때문이다. 그렇다, 안심해도 좋다. 노상 쿨하기만 한 사람이 어디 있겠나.

나의 아들들에게 이 두 편의 성장소설을 다 권하고 싶다. 매우 다른 이 두 권의 소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사실을 일깨워 준다. 젊은 시절에 예민한 정신이 겪는 성장통은 무엇으로 말미암건, 어느 방향으로 발현되건 간에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우면서도 소중하다는 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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