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료마가 간다(竜馬がゆく)

posted Jan 15,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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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6, 시바 료타로 (2005, 이길진 역, 창해)

이웃나라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를 아는 일은 얼른 생각하기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특히 그 이웃이 속내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품위 없는 일로 간주하는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두 사람이 마주보면서 이야기를 나눈다고 해서 전부 다 의미 있는 대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의 사고방식이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그 사고의 전개가 어떤 지점을 가리키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어야만 대화는 비로소 의미있는 것이 될 수 있다.

2011년 겨울, 일본 방송사에서 조사한 설문의 결과를 보니 일본인이 “가장 존경하는 위인”으로 꼽은 사람들 중 1위는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 1836-1867)였다. 2위부터 그 이하의 면면을 비교하는 것이 의미가 없겠다고 느껴질만큼 압도적인 지지였다. 이것은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다.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가 1962년에서 1966년에 걸쳐 소설 <료마가 간다(竜馬がゆく)>를 발표하고 난 이후부터 생겨난 현상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일본인이 생각하는 사카모토 료마는 시바 료타로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이 소설은 일본인의 사고방식을 잘 관찰할 수 있는 도구로서의 가치가 있다.

만들어진 이야기를 신화처럼 받아들이는 경향에 관한 한 일본인은 확실이 남다른 구석이 있다. 1987년에 구리료헤이(栗良平)라는 작가가 발표한 <한 그릇의 가케소바(一杯のかけそば)>라는 단편소설이 있었다. 애잔하면서도 뿌듯한 미담을 그린 이 소설은 80년대 말 일본 전역에서 마치 실화처럼 부풀려져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 ‘이야기’가 일본 열도를 눈물바다 속에 빠뜨리는가 싶더니, 소설 속 주인공 찾기 운동이 대대적으로 벌어지고, 결국 소설 내용이 실화가 아닌 ‘사기극’으로 밝혀지면서 열기는 식고 말았다. 이어령 선생은 이 현상의 특이함에 주목했다. 그는 “일본의 집단주의를 움직이는 힘의 원천은, 이렇게 허구를 사실로 만들고 신화를 역사로 믿게 하는 특성 가운데 있다”고 지적하면서, “일본의 검객에 대한 무용담이라는 것은 대개가 다 이런 신화 만들기의 소산”이라고 덧붙인다. (이어령 저, <축소지향의 일본인 그 이후>)

물론 소설 속의 사카모토 료마는 매료될 만한 성품을 지니고 있다. 인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우며, 자기가 속한 시대의 정신을 넘어서는 통찰력을 가졌다. 역사적 인물로서의 사카모토 료마는 이러한 신화 만들기의 소재로서 부족함이 없는 비극성을 지녔다. 당시로서는 아무나 감행하기 어려웠던 탈한(닷판, 脱藩)을 감행하고, 근왕당 지사들과 어울려 활발한 활동을 벌이다가, 메이지 유신의 성공을 눈앞에 두고 암살당한다. 살해당했을 때 그의 나이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처럼 서른세 살이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시바 료타로의 소설이 픽션이라는 표식은 감춰지키는커녕 소설의 도처에서 확연히 눈에 띈다.

우선 작가 자신이 료마의 이름을 龍馬라고 표기하지 않고 竜馬라고 표기한 것은 그가 어디까지나 픽션의 주인공임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렇게 친절히 밝히지 않더라도, 소설가가 근거 없이 료마의 생각을 1인칭으로 서술한 부분이 주관적인 상상력의 소산이라는 점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료마를 만나는 여성들이 모두 그에게 매료되고 그의 여자가 되고 싶어 하는 대목은 작품의 품위를 손상시킬 만큼 무협지적인 발상의 산물이다. 그렇다. 이 작품은 역사적 사실에 상당히 바탕을 둔 고품격 무협지인 셈이다. 그러나 대다수 일본인의 머리속에 들어 있는 사카모토 료마는 실존인물이 아니라 소설 속의 주인공인 것처럼 보인다.

시바 료타로는 산케이 신문 석간에 1962년 6월 21부터, 1966년 5월 19일까지 <료마가 간다>를 연재했다. 그 이후 발간된 소설의 서문에서 그는 “패전한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하여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밝혔다. 자신의 주인공을 일본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만들었으니, 그는 성공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을 충분히 염두에 두더라도, <료마가 간다>를 읽고 나면 별안간 눈이 밝아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인간 사카모토 료마의 발견은 둘째 치더라도, 오늘날 일본이 빚어지게 된 가장 커다란 시험과정이었던 에도 말기와 메이지 유신을 과연 일본인 자신들이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지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료마가 간다>가 선사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에도막부 말기인 1835년, 사카모토 료마는 도사번(土佐藩, 현 코우치현) 하급무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는 변변치 않은 아이였지만, 에도로 가서 검술 수업을 받으면서 시국에 눈을 뜬다. 소설 속에서, 그는 특이한 인물로 묘사된다. 어리숙해 보이면서도 한없이 낙천적이고, 검술은 고수였다. 당시의 여느 존왕양이(尊王洋夷)지사들과는 달리, 그는 "일본은 외국의 발달한 지식과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설파한 카츠 카이슈(勝海舟)의 영향을 받아 해운 무역의 필요성을 느끼고 해운 무역회사 ‘가메야마샤츄(龜山社中)’를 설립했다.

료마가 이룩한 최대의 업적은 사츠마번(薩摩藩, 현 가고시마현)과 죠슈번(長州藩, 현 야마구치현)이 맺은 정치적 군사적 동맹인, 이른바 삿쵸동맹(薩長同盟, 1866)을 실현시킨 것이었다. 일개 낭인에 불과하던 료마가 사츠마번의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와 조오슈번의 기도타카요시(木戶孝允) 사이를 오가면서 중재를 한 것이다. 삿쵸동맹의 결과로 결국 메이지유신(明治維新, 1868)이 단행되고 에도막부 시대는 막을 내렸다. 그러나 료마는 메이지 유신 1년 전에 막부측 자객의 습격을 받고 살해당했다.

시바 료타로의 소설 이후, 료마의 일대기는 1965년, 1968년, 1982년, 1997년, 2004년에 걸쳐 거의 10년에 한 번 꼴로 대하드라마로 제작되고 있다. 이 드라마들도 시바 료타로의 소설에 기초하고 있거나, 그것의 미세한 재해석에 해당한다. 메이지 유신의 뒷이야기를 읽는 것은 현대 일본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다. 예컨대, 유신 이후 조슈번은 일본육군의 핵심세력이 되고, 사쓰마 번은 해군의 핵심세력이 되었는데, 유신 이전 폭주하던 죠수번의 역사를 알고 나면 일본 관동군의 확전과정을 한결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시바 료타로는 러일전쟁의 배경을 묘사한 <언덕 위의 구름(坂の上の雲)>이라는 소설도 썼다. 이 책 또한 일본인이 지닌 역사관의 적어도 한 단면을 보여주는 작품이지만,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편한 마음으로 읽을 수는 없는 책이다. 작가가 일본의 조선 병합을 바라보는 시각은 “일본은 당시 정상적인 모든 국가들이 하는 것처럼 행동했을 뿐이고, 그러지 않았다면 러시아의 위협에 의해 일본의 국익이 결정적으로 침해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야스쿠니 신사의 박물관인 유슈칸(遊就館)이 일본의 과거를 설명하는 자세이기도 하다. 굳이 입 밖으로 내서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일본인의 상당수가 그런 관점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한국과 일본 두 나라는 그 사이에 존재하는 물리적 거리보다 멀리 떨어져 있다. 안타깝지만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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