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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홋카이도 오샤만베(長万部)의 에키벤(駅弁) 카니메시(カニ飯)

posted Dec 28,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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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2일. 나를 싣고 도쿄에서 출발한 밤차는 홋카이도의 삿포로(札幌)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회의가 있어 출장을 가는 길이었는데 기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도쿄-삿포로 구간 ‘카시오페아’라는 특급열차가 있었지만 그보다 가격이 저렴한 ‘호쿠토세이(北斗星)’라는 이름의 침대차였다. 어딘가 소녀 취향의 열차 이름에서 보듯이, 기다란 일본 열도를 기차로 통과해 해저를 터널로 통과하는 여행은 일본인들에게도 낭만적인 행위다.

막상 나는 혼자 떠나는 업무상 출장이어서 낭만에 젖을 마음의 여유는 없었다. 그저 침대칸이 좁지만 제법 편리하게 만들어져 있구나 라든지, 역시 일본인들은 열차에서 떠드는 법이 없네 라는 정도의 느낌. 회의자료를 읽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에 잠이 깨어 보니 벌써 해저터널은 지나온 것인지 기차는 해변을 따라 안개 속을 달리고 있었다. 아침에는 할 일이 있었다. 도쿄에 함께 근무하는 후배가 “열차가 홋카이도의 오샤만베(長万部)를 통과하기 전에 차장에게 그곳의 도시락을 주문해서 사먹어 보시라”고 권해주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도시락 천국이다. 특히 열차 도시락을 가리키는 에키벤(駅弁)은 일본식 휴대음식 문화의 총체적 상징물이다. 일본의 전통음식, 지방 특산물은 물론, 전 세계의 음식이 일본식 도시락 속에 흡수되고 있다. 재료별로 특색은 말할 필요도 없고, 예컨대 달이나 바다 같은 자연을 테마로 삼은 것, 인물을 기리는 도시락 같은 것도 있다. 도시락 통도 대나무, 차상자, 나무통, 버들상자 등 명품이 즐비하다.

도시락의 기원에 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지만, 유력한 것은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전쟁터에서 병사들에게 식량을 골고루 나눠주려고 고안했다거나, 에도 시대 연극 막간에 먹은 것이 시초라는 설이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도시락이 발달한 것은 음식을 휴대하겠다는 강한 욕구에서 비롯되었을 터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도시락이 워낙 발달하다 보니 간소성이나 휴대성이라는 의미가 역설적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웬만한 고급 요리 뺨치게 비싼 도시락도 있을 뿐 아니라, 사람들은 식당에 와서도 도시락을 주문해서 먹는다.

일본에서 도시락이 발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일본 음식이 국물을 별로 중시하지 않는 마른 음식이라는 데도 있었을 것이다. 한국인에게 도시락은 “국물도 없는” 야박한 음식이지만, 일본에서는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받았을 때 속된 말로 “도시락을 받았다”라고 말한다. 도시락은 워낙 좋은 것이라는 뜻이다. 일본에서는 판매되고 있는 약 2500여 종류의 에키벤이야말로 작은 나무통 속에 구현된 일본 요리의 우주인 셈이다. 누군가가 진정한 일본음식은 도시락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게 틀렸다고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오샤만베라는 희한한 이름의 혼카이도 도시는 가니메시(カニ飯)라는 에키벤으로 유명하다. 밥 위에 홋카이도 특산물인 게살을 얹고 양념을 가미한 도시락인데, 전국적으로도 언제나 높은 순위를 유지하는 인기상품이다. 나는 잠이 덜 깬 얼굴로 차장을 찾아가 가니메시 에키벤을 주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차장의 대답은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열차에서 오샤만베 가니메시를 주문할 수 있는 것은 홋카이도 JR 뿐이라는 것. 다시 말해 도쿄에서 출발한 침대차에서는 가니메시 주문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깟 도시락 못 먹어봤대서 큰일 날 것도 없지만, 안된다니까 도리어 아쉬움은 더 커졌다. 일본에 2년간 살면서 배운 것을 실천해 보기로 했다. 첫째, 일본사람들은 음식을 대단히 중시한다. 둘째, 일본인들은 일본문화를 경험해 보려는 외국인에게 친절하다. 셋째, 식당을 영업하는 일본인은 장사치보다는 장인에 가깝다. 열차 안에서 오샤만베의 가니메시 에키벤 상점으로 전화를 걸었다. 도쿄발 호쿠도세 열차를 타고 가는 외국인인데 귀사의 에키벤을 꼭 먹어보고 싶었는데 차장의 설명을 들으니 안된다고 한다. 한 시간 후에 오샤만베 통과 예정인데 무슨 방법이 없겠는가. 공손히 물어보았다.

“무슨 방법이 없겠습니까”라는 의미의 “난또까 데키마센데쇼우카?(何とかできませんでしょうか?)”라는 표현은 일본에서는 종종 큰 소리로 난동을 치는 것보다 확실하게 상대방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는 힘을 지닌 문장이다. 수화기 너머로 잠시 망설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11호차라고 하셨습니까? 오샤만베에 도착하면 열차 승강구까지는 좀 나와 주실 수 있겠습니까? 거스름돈이 필요 없는 1300엔을 준비해 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열차는 예정보다 5분 일찍 오샤만베에 도착했다. 열차가 플랫폼에 미끌어져 들어가고 있을 때 저만치서 누군가가 비닐봉지를 들고 기차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열차의 승강구에서 그는 숨을 몰아쉬며 나에게 가니메시 도시락을 전해주었다. 그것을 받아든 나는 의기양양하게 아까 그 차장을 찾아가서 안된다던 도시락을 구입했노라고 자랑했다. “잘 되었군요.” 무뚝뚝하던 차장이 얼굴에 함박웃음을 띄웠다.

어렵사리 손에 넣은 에키벤이어서 그랬을까? 오샤만베의 카니메시는 상상했던 것보다 더 맛이 좋았다. 이것을 추천해 준 후배에게도 자랑할 만한 소소한 무용담이 생겨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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