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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와라 다이몽(吉原大門) 앞 텐돈식당 ‘제방 옆 이세야’(土手の伊勢屋)

posted Sep 24,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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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 동남부의 구시가지에는 요시와라(吉原)라는 곳이 있다. 지금도 낙후된 시타마치(下町)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요시와라에는 동경에서 제일 큰 인력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이로하(イロハ)시장이라는 재래시장 앞을 지나다 보면 일거리가 없는 일용직 지원자들이 마치 홈리스 부랑자처럼 길거리에 드러누워 있거나 술로 시름을 달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요즘 가보면 일본의 전반적인 불경기 탓인지, 아마도 일용직 인부들이 주 고객을 이루었을 것처럼 보이는 재래시장의 여러 상점들은 셔터를 닫고 있어서 마음이 좋지 않다.

요시와라는 그것 말고도, 남다른 사연이 깊은 곳이다. 이곳에는 에도시대에 에도시 외곽에 만들어진 유곽이 있었기 때문이다. 에도 막부가 개설된 직후인 1617년에 만들어진 요시와라 유곽은 주변에 폭이 3m가 넘는 해자와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오랜 세월동안 요시와라의 유곽에는 얼마나 많은 한숨과 눈물과 사연이 차곡차곡 쌓였을 것인가. 1958년 성매매 방지법이 시행되면서 유곽으로서의 오랜 역사를 정리한 요시와라에서 담장이나 해자는 사라졌지만, 아직도 커다랗게 네모난 과거의 유곽 안쪽으로는 ‘소프랜드(ソープランド)’라고 부르는 풍속업소들이 다수 자리 잡고 있고, 그 주변을 살펴보면 해자의 흔적을 금세 알아볼 수 있다. (유곽지대가 도로면보다 높다.)

지금도 남아 있는 몇 가지 흔적을 찾아보자면, 예전의 해자와 수로 양쪽에 자리잡고 있었던 제방(土手)과 관련된 거리와 상점의 이름이라든지, 예전에 유곽의 입구를 장식하고 있던 대문 자리에 남아 있는 요시와라 다이몽(吉原大門)이라는 이름만의 랜드마크 정도랄 수 있다. 요시와라 다이몽 앞에는 이른바 ‘돌아보는 버드나무(見返り柳)’라는 나무가 한 그루 있고, 그 아래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유곽에서 한바탕 놀고 대문을 벗어난 고객이 그 전날 밤의 즐거움을 잊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는 자리라 해서 나무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쯧쯧.

나는 요시와라에 자주 갔는데, 미안하지만 풍속업소 따위에 취미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요시와라 다이몽으로부터 길 건너편에는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정도의 튀김덮밥(텐돈; 天丼)집이 있어서, 이곳을 종종 찾아간 것이었다. 지하철 히비야선(日比谷線)을 타고 미노와역(三ノ輪駅)에서 내려 아사쿠사(浅草) 방향으로 20분쯤 걷다 보면 ‘덴푸라 이세야(天麩羅 伊勢屋)’라는 옥호가 내걸린 고색창연한 식당을 찾을 수 있다. 이 식당은 얼른 찾기가 쉽지 않은 위치에 있지만 식당을 찾는 일은 간단하다. 영업시간 중이라면 언제나 그집 앞에만 고객들이 기다란 줄을 이루고 서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집이나 사무실에서 가깝지도 않은 이 식당에 일곱번쯤 찾아갔는데, 음식을 먹은 것은 세 번 뿐이었다. 나머지는 식재료가 다 팔려(売れ切り)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거나, 뙤약볕 아래 줄이 너무 길어서 제풀에 포기하고 돌아섰던 것이다. 사람들은 참 귀신같다. 어쩌면 맛이 있는 집은 그렇게도 잘 알고들 몰려드는지.

후지TV의 국제부장인 노자키 상은 시타마치의 옛날 식당들을 순례하는 것을 취미로 삼고 있는 나의 벗이다. 맨 처음에 내가 좋아하는 선배와 노자키 상을 따라 이 집을 찾아갔을 때는 솔직히 말해서 조금 짜증도 났다. 사무실에서 너무 먼데다 지하철에서 내린 다음에도 더운 날씨에 와이셔츠가 다 젖을 만큼 한참을 걸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옛날식 격자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간 식당은 앉은 사람의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좁고 낡았다. 옛날식 불투명 유리창이 실내의 어슴푸레한 백열등 빛을 받아 창밖의 풍경을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주문한 음식을 먹어보고 나서야 내눈에 비친 이세야의 모든 것이 멋지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 업소가 영업을 시작한 것은 112년 전이고, 쇼와(昭和) 2년이라니까 1927년에 지어진 현재의 가게 건물은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었다. 나는 동경에서 10년 넘게 살고 있는 사촌동생을 끌고서도 이 가게에 왔다. “형, 무슨 텐돈 같은 걸 먹자고 그렇게 멀리 가요?”라고 묻던 동생이 요즘은 “주말에 시간 나면 요시와라에 텐돈이나 먹으러 가시죠”라고 말하고 있으니 이세야 텐돈의 맛이 일본인에게만 유난히 맛있는 것은 아님에 틀림없다.

이른바 ‘에도 막부풍’이라는 이세야의 텐돈은 참기름으로 튀겨 고소하고, 소스(たれ)의 풍미로 촉족하게 젖어 있으면서도 신기할 만큼 바삭한 식감을 간직하고 있다. 텐돈은 이(イ), 로(ロ), 하(ハ) 세 종류인데, 각각의 가격은 1400엔, 1900엔, 2300엔이니 값이 아주 싼 편이라고는 할 수 없다. 나는 가장 작은 ‘이’만 먹어도 배가 부른데, 밥 위에 튀긴 새우와 오징어, 야채가 얹혀 나온다. ‘로’ 위에는 여기에 붕장어(穴子) 튀김이 추가되고, ‘하’의 경우에는 패주(貝柱)와 생선 따위가 추가된다. 그 밖에도 붕장어튀김 덮밥(穴子天丼)이나 새우튀김 덮밥(海老天丼)이 2300엔에 판매되고 있고, 뎀푸라만도 중, 상, 모듬(盛り合わせ) 등으로 주문할 수 있다.

이세야의 텐돈 위에 올라가는 오징어는 두터운 갑오징어이고, 붕장어는 언제나 산 채로 배달을 받는다고 한다. 이 집에서 따라주는 차는 튀김에 어울리게 짙은 맛이고, 따로 판매하는 국의 국물도 맛있다. 이세야의 낡은 탁자에 앉아 시원한 맥주를 한 잔 걸치면서, ‘풍성한 느낌으로 씹히는’(바꿔 말하자면 ‘볼륨감 있는’) 튀김을 맛보노라면, ‘맥주에 튀김은 건강에 별로’라든지 하는 말은 내뱉을 수가 없게끔 되어버린다.

이세야의 주소는 동경도 다이토구 니혼즈쯔미 1-9-2 (東京都台東区日本堤1-9-2), 전화 03-3872-4886, 영업시간은 11:30-14:00, 17:00-20:00이고, 수요일은 휴무다. 영업시간 내에 가더라도 줄이 길거나 재료가 다 떨어지면 음식 맛을 볼 수 없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가는 편이 좋다. 여담이지만, ‘제방의 이세야’ 주변에는 말사시미(馬刺)를 파는 식당들이 있다. 처음 이 집에 나를 데려가 주었던 후지TV의 노자키 상에게 “말사시미를 파는 집이 많군요.”라고 물어보았다. 덤덤한 표정으로 그가 들려준 대답은 이랬다.

   “옛날에 유곽에 놀러와서 지내다가 좀 더 놀고 싶어지면 자기가 타고 온 말을 파는 사람들이 많았다는군요. 그 말들이 식재료가 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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