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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adeus(1985), Holiday Inn(1942)

posted Nov 21,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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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크리스마스다

<나의 성탄절 영화, Before>

소개팅을 하면 결혼을 해야 하는 줄 알았다, 라고 말하면 거짓말이 되겠다. 하지만, 대학 1학년 때 소개팅에서 처음 만난 동갑내기 여학생과 사귀다가, 그녀와 결혼해 지금은 어엿이 중고등학생인 두 아들을 두고 있다는 건 거짓 없는 사실이다. 우린 열아홉살이던 1985년 여름에 처음 만났다. 쑥스런 얘기지만, 그녀에게 '나한테 시집오면 어떻겠냐'고 처음 물어본 게 그해 성탄절 무렵이었다. 스무 살 풋내기의 만용이었다. 지금 스무 살짜리들을 보면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처럼 위태로워 보이기만 한다. 하지만 정작 그 시절엔 세상이 어찌나 만만해 보이던지.

패기에 차서 세상을 쉽게 보았다는 뜻이 아니다. 1985년도의 대학 신입생은 좀처럼 그런 사치를 누리지 못했다. 그 무렵의 캠퍼스는 대체로 황폐하고 침울했다. 전경들이 수시로 가방을 검사했고, 최루탄의 혹독한 향기를 피할 수 있는 날은 드물었다. 괴로왔다. 군인들이 총검으로 권력을 차지한 현실을 쉽사리 참아 넘길 수 있는 젊음은 없었다. 화도 났다. 학교에서 공공연히 유행하던 민족주의적 좌파 논리도 한심스럽긴 매한가지였다. 민족주의적 사회주의라니? 마치 '결혼한 총각' 같은 얘기 아닌가! 답답했다.

세상이 나아지려면 자신이 아니라 남들이 변해야 한다고, 남들만 변하면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만 득실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이질적인 것을 참아내는 우리 사회의 능력은 낙제점이었다. 국어사전에 버젓이 다른 뜻으로 적혀 있는 '다르다'와 '틀리다'라는 표현이 마구 뒤섞였다. 다르면 저절로 틀린 것이 되었다. 그무렵, 20대 청춘들은 즐거움을 죄스러워 했다. 심지가 굳은 몇몇은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지내기도 했지만, 그들은 기이한 예외였다. 어쩌면 우리 내외가 6년간의 연애기간을 별 탈 없이 나누고 결혼에 이를 수 있었던 건, 우리가 서로에게 칙칙한 대학생활을 밝혀주는 등불이었던 덕인지도 모른다. 스무 살 내 눈에 비친 세상이 만만해 보였다는 건, 쉬워 보였다는 게 아니라 시시해 보였다는 뜻에 가깝다.

대체로 시시하고 답답하던 1985년 겨울에도 성탄절은 어김없이 다가왔다. 그 무렵 대학생들에게는 성탄절이라고 값비싼 선물을 주고받는 풍조도 없었다. 당시 대통령이던 분께서 사교육 부담 해소를 위한 과감한 대책으로 모든 과외를 정말 과감하게 불법화 시켜버렸기 때문에, 대학생들이 용돈을 벌 길이 막혀있기도 했다. 우린 영화 한 편을 보기로 했다.

성긴 눈발 내리던 을지로 3가 명보극장. 우리는 모짜르트의 생애를 그린 <아마데우스>를 보았다. 8개부문의 오스카를 거머쥔 영화였다. 모짜르트 역의 탐 헐스와 살리에리 역의 머레이 에이브람이 둘 다 남우주연상 후보로 지명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는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살리에리가 모짜르트를 눌렀다. 이 영화는 천재에게 바치는 찬가였다. 살리에리는 자신에게 천재를 알아볼 정도의 재능밖에 없음을 한탄하고, 질투심에 눈이 멀어 그를 죽음으로 내몬다. 살리에리는 모짜르트가 "달랐기" 때문에 그를 "틀린"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통쾌하게도, 만년의 살리에리는 죄를 참회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할만큼 괴로와하고 있었다.

나와 아내는 음악을 무척 사랑한다. 이 영화는 우리 두 사람 다에게 좋은 성탄선물이 되었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음악을 왜, 얼마나,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지를 잘 그려냈기 때문이다. 그 소중한 느낌을 둘이서, 또 객석에서 스크린과 양방향으로 공유하는 건 달콤한 즐거움이었다. 영화 속에서, 모짜르트의 죽음은 살리에리의 참회로 보상받고 있었다. 즐거움과 죄스러움, 그 두 가지는 80년대 젊은이들에게는 낯익은 짝패였다. 따지고 보면, '즐거운' 성탄절의 본뜻도 '속죄'에 관한 것이 아니던가.

<나의 성탄절 영화, After>

대학시절을 회고하면 가슴 답답하고 눈 따갑던 일들이 한가득인데도, 막상 성탄절에 관한 영화에 대해서 쓰려니 <Amadeus>가 먼저 떠오르는 이유는 뭐란 말인가. 칙칙하던 시절이라도, 지나간 젊음은 찬란한 기억으로 남는 모양이다. 이십 수년전 가슴 설레며 영화관에서 데이트를 했던 처녀는 이제 살림살이와 아이들 교육에 지친 마누라가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명절이 오건 생일이 가건 우리 내외는 영화 한 편 함께 보러 가는 일이 드물다. 그녀가 이 땅에서 최고로 바쁜 프로페셔널 중고생 엄마 겸 전업주부인 탓도 있고, 원래 나만큼은 영화를 즐기지 않는 탓도 있다. 나로선 고맙기도 하고 외롭기도 한 노릇이다.

나이가 들수록 성탄절에 기분이 들뜨는 일은 어쩔 수 없이 드물어진다. 그게 싫은 건 아니지만, 크리스마스! 하면 공연히 싱숭생숭하던 어린 시절의 흥분이 간혹 그립긴 하다. 그럴 때 내가 하는 일은 둘 중 하나다. 앤디 윌리엄즈의 캐롤 CD를 틀어놓거나, 어빙 벌린이 음악을 맡은 1942년 영화 <Holiday Inn>을 꺼내 보는 거다. 이 영화는 유쾌하다. 빙 크로스비와 프레드 아스테어가 함께 활약하는 장면을 구경하는 재미도 각별하다. 성탄절 최고의 인기가요 <White Christmas>가 첫선을 보인 게 여기서였다.

짐 하디(크로스비)와 테드 해노버(아스테어), 라일라 딕슨(버지니아 데일)은 무대공연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3인조 연예인이다. 짐의 장기는 노래고, 테드는 타고난 춤꾼이다. 짐은 크리스마스 공연을 끝으로 연예계를 은퇴할 예정이다. 그는 라일라에게 청혼을 해 둔 상태였고, 그들은 코네티컷의 농장에서 여생을 보내자는 약속을 했다. 하지만 테드도 라일라에게 연정을 품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의 무용 파트너를 호락호락 잃어버릴 수 없었다. 결국 짐은 테드에게 연인을 빼앗기고 혼자 시골로 내려가서 농장을 경영한다. 그는 자신의 넓은 시골집을, 공휴일에만 공연을 여는 "Holiday Inn"으로 운영하기로 결심한다. 또다시 크리스마스 이브가 찾아오고, 연예인 지망생 처녀 린다 메이슨(마저리 레널즈)이 오디션을 보겠다며 이곳을 방문한다. 둘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 해 송년의 날부터 시작된 Holiday Inn 공연은 성황리에 끝난다. 하필 그날, 라일라로부터 버림받은 테드는 만취한 상태로 Holiday Inn 행사장에 나타나, 린다와 짝을 이뤄 멋진 춤을 춘다. 다음날 술에서 깬 그는 어렴풋이 기억나는 그녀를 찾아 헤매기 시작한다. 또다시 테드에게 연인을 빼앗기기 싫은 짐은 그녀를 감추느라 무진 애를 쓴다.

예전엔 세상살이가 좀 더 단순했던 걸까?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경쾌하게 시련을 극복한다. 40년대 미국이라고 인생이 쉽고 즐겁기만 했을 리 만무하겠지만, 적어도 예전의 인간관계가 요즘보다 좀 더 직선적이고 명쾌했던 건 사실처럼 여겨진다. 여성 권리 향상, 인종차별 철폐, 아동권리 증진, 세대간 예절의 변화, 세계화 등등의 영향으로 의사소통의 폭과 깊이가 커지면서, 사람들은 오히려 단순하고 명쾌한 관계를 맺기가 어려운 복잡한 세상에 살게 되어버린 게 아닐까?

흑백 영화를 다시 보면서 즐거움을 재충전한다는 얘기를 청승맞게 여길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비아그라로 청춘을 되찾느니 하는 남사스런 얘기도 공공연히 지상에 등장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마당에 이정도야 뭐. 지난 주말에도 <Holiday Inn>을 다시 봤다. 그 덕에 다가오는 성탄절이 좀 더 즐겁게 느껴진다면, 그건 그것대로 또 좋은 일이리라. 성탄절은 즐거워도 되는 날, 즐거워야 마땅한 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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