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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ark Knight

posted Aug 03,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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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ark Knight

은 슈퍼영웅 이야기라기보다 한 편의 충실한 느와르입니다. 보다는 과 더 닮아 있죠. 자기 삶을 누군가가 조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음모에 대한 공포감은 느와르 영화의 뼈대를 이룹니다. 이 영화에서 배트맨은 스스로 온몸을 던져 싸우고 있는 대상이 자신의 존재 자체를 통제하려 드는 공포를 경험합니다. 죠커는 자기가 배트맨이 있기에 비로소 빛을 발하는 괴물이라고 말합니다. 강력해진 항생제가 세균들의 내성을 길러냈듯이 슈퍼 영웅이 빚어낸 슈퍼 악당. 2008년의 죠커는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즐깁니다.


8년전 로 세상을 놀래켰던 30대 감독 크리스 놀란은 배트맨을 만화책 속에서 끄집어내어, 슈퍼영웅이 혼자 감당키 어려운 고단한 세상 속에 던져놓았습니다. 의 아놀드 슈왈제네거처럼 낯선 세상 속에서 활약해야 하는 영웅이랄까요. 고담(Gotham)시는 더 이상 팀 버튼의 장난기 가득찬 가상세계가 아니라 시카고의 복제물일 뿐입니다.


이 영화에서 9/11의 상흔을 찾아내려는 노력은 부질없어 보입니다. 무관하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당연하기 때문에. 관객들은 테러리즘을 더 이상 신기하고 드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 영화가 그려낸 세상은 진정한 의미에서 탈냉전의 세계입니다. 마피아의 돈을 들고 홍콩으로 ‘튄’ 중국 악당에게 국경이 도피처가 되어주지 못하듯, 정의를 지키겠다는 배트맨의 굳은 의지도 선악의 경계를 뚜렷이 긋는 피난처가 되어주지 못합니다. 배트맨은 그가 배트맨임으로써, 자기가 막으려던 무고한 희생이 되려 늘어나는 걸 지켜봐야 하는 양난에 처합니다. 마치 이라크 독재자의 폭정과 모험을 막으려다 오히려 이라크에 혼란을 초래한 주범으로 지탄받게 된 미국 정부의 난처함이라든지 그걸 지켜보는 미국인들의 혼란스런 심정이 연상되더군요.


죠커로 인해서 반영웅의 길을 강요받는 배트맨의 처지는 모호한 시대정신을 잘 드러냅니다. 토머스 프리드먼이 설명하듯, 세계화의 특징은 무한 경쟁입니다. 패자는 끊임없이 퇴출당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기회를 제공받습니다. 경쟁의 무대는 전세계고 승자가 취하는 열매는 엄청나게 커졌죠. 틀림없이 발전한 세상입니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너무 고단한 세상이기도 합니다. 몸을 숨길 수 있는 벽은 이제 없습니다. 그래서 세계화에 대한 반격은 민족주의의 부활이라는 모습을 띕니다. 후쿠야마가 “역사는 끝났다”고 외친지 불과 10여년 만에, 케이건(Return of the History)과 자카리아(Post-American World)의 지적처럼, 역사는 되돌아온 겁니다. 다른 가면을 쓰고.


요즘 젊은이들은 청춘의 특권을 누리기보다 ‘무한도전’을 강요받습니다. 중국이나 한국의 청년들이 저토록 쉽사리 민족주의 정서에 몸을 맡기는 건 어쩌면 편협한 사고의 결과이기 앞서, 민족이라는 마음속 장벽이 그나마 도피처가 되어주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결정적인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배트맨의 싸움은, 끝이 안 보이는 경쟁의 무한궤도 위에 던져진 오늘의 젊은이들에게 친숙해 보일 터입니다.


체제를 지키려는 배트맨의 노력은 마치 독배를 들면서까지 준법을 가르치던 소크라테스를 사숙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 배트맨을 죠커는 조롱하죠. Why so serious? 이 물음은 버거운 경쟁을 요구하는 체제에 일탈로 반격하고 싶은 우리 마음속 절반의 목소리인지도 모릅니다. 죠커가 상징하는 것은 내재적인 절대악의 피할 수 없는 실존입니다. 볕이 밝을수록 짙어지는 그림자! 제목에서 배트맨의 이름이 빠진 것이 당연하다는 양, 죠커를 연기한 히스 레저는 필생의 호연으로 관객들의 관심을 다 훔쳐버렸습니다. 그리곤 영화가 채 완성되기도 전에, 약관의 아름다운 청년은 악마와의 거래가 완결되기라도 했다는 듯이 세상을 떴습니다. 레저의 첫 주인공 역할이 금발의 기사(A Knight's Tale)였던 것과 유작 제목이 ‘어둠의 기사’라는 사실은 기묘한 공교로움입니다.


이 호주 태생의 미남 청년은 자꾸 그를 꽃미남 역할에만 기용하려는 제작자들의 기호에 줄곧 저항해 왔습니다. 에서 동성애자 역할로 상찬을 받게 된 것도 그런 노력의 소산이었죠. 불면증과 우울증 약물 과다복용이라는 그의 사인과 에서의 역할이 직접 관계가 없을 거라고 믿기엔, 그의 죠커 연기가 너무나도 섬뜩합니다. 1편에서 죠커를 연기했던 잭 니콜슨을 마치 농담(joke)처럼 보일 지경으로 만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레져는 배역에 몰입하려고 호텔에 홀로 몇 달째 머물며 죠커로서 일기를 쓰고 있었다더군요. 배역을 흉내내는 ‘연기(act)’를 하지 말고 완전히 배역이 되어 ‘반응(react)’하라고 가르치는 method acting은 상상외로 위험한 기술인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레져의 죠커에 비견할 만큼 무시무시한 악당을 영화 속에서 다시 보려면 우리는 아마도 한참을 기다려야만 할 겁니다.


이 영화의 러닝 타임은 152분입니다. 두 시간 안쪽의 액션물에 길들여진 관객들이 만화처럼 상투적이고 다소 허탈한 결말을 기대함직한 지점으로부터 이 영화는 30분 정도를 더 흘러갑니다. 어쩔 수 없이 후반부는 좀 지루해 지는데, 놀란 감독은 투 페이스라는 새로운 악당을 등장시킴으로써 긴장감을 지켜냅니다. 투 페이스는 별도의 속편에 주인공으로 내세워도 될 만큼 비중 있는 캐릭터인데다, 이 영화에서는 죠커와 배트맨을 양면에서 비춰주는 거울 같은 역할을 하죠. 그로써 내러티브도 설득력이 높아지고 메시지도 단단해졌습니다.


저는 후반부의 지루함이 감독의 과욕이 불러온 실패라기보다 영화와 잘 어울리는 안배였다고 평하고 싶습니다. 얼른 지옥 같은 사건의 끝을 맺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고 끌려 다니는 배트맨의 지긋지긋한 심정에 관객들을 동참시켜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 말미에 스스로 혐오의 대상이 되기로 자처하는 배트맨의 굳은 의지는 관객들이 그와 더불어 그 모든 아수라를 경험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영웅적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뒷모습을 보이며 사라지는 배트맨을 향해 ‘그는 진정한 어둠 속의 기사’라고 독백하는 고든 경관의 대사가 낯간지럽지 않게 들리자면 152분 분량의 장면들 중 덜어냈어도 좋을 부분은 없었다고 봅니다.


DC 코믹스의 원본보다는 프랭크 밀러의 80년대 ‘그래픽 노블’에 충실한 은 어린 자녀들의 손을 붙잡고 볼만한 영화는 아닙니다. 하지만 과 <007>의 팬들이 함께 즐기면서 서로를 좀 더 잘 이해하게끔 만들어줄 수는 있을 것처럼 보이더군요. 아, 그리고, ‘버스를 넘어뜨리려면 달리는 버스의 다리를 걸면 된다’는 어린 시절의 농담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탄성을 지를 법한 굉장한 장면도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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