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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venting the Abbotts

posted Apr 13,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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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다 할 대박을 터뜨린 적은 없는 팻 오코너라는 감독이 1997년에 만들었던 Inventing the Abbotts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이 영화도 평점이 대단히 높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제목이 급소를 치듯 허를 찌르는 데가 있어서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이 영화는 ‘악의 꽃’이라는 제목의 비디오로 국내에 출시되었는데, 도대체 어디가 악이고 꽃은 또 무엇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이 영화로부터 ‘애보트가(家)를 지어낸다’라는 뜻을 가진 원제목을 빼고 나면 사실 남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에, 지나치게 심오하거나 아무 생각 없이 지어졌거나 둘 중 하나가 틀림없는 ‘악의 꽃’이라는 제목은 더더욱 아쉽습니다.


     제가 당초에 이 영화를 봤던 이유를 정직하게 고백하자면, 제니퍼 코넬리가 제가 좋아하는 배우였기 때문입니다. 14살때 Once upon a time in America에 아역배우로 데뷔해서 줄창 ‘예쁜 어린애’역할을 하다가 80년대에는 미국보다 오히려 일본에서 광고모델로 큰 인기를 누리던 그녀는, 90년대에는 남자들의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순진한 미인의 역할을 도맡아 합니다. 그러던 그녀는 크게 결심한 듯이 2000년에 Requiem for a dream에서 마약중독자 역할로 왕창 망가져 버립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이듬해에 A Beautiful Mind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하고, 더이상 순진하고 예쁜 장식품 같은 역할 전문 배우가 아닌, 역량 있는 중견 연기자로 성장했습니다. 진지한 배우로 대접받기 위해서 그녀가 마치 그려놓은 것 같던 예전의 외모를 일부러 훼손한 것만 같은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이 좀 서운한 부분입니다만, 그래도 제가 응원하는 배우가 잘 성장하는 모습은 보기 좋은 일입니다. 이제 제니퍼 코넬리의 필살기는 예쁜 미소나 몸매가 아니라, 형형한 초록빛을 내뿜는 그녀의 눈빛입니다.


    Inventing the Abbotts는, 그저 가끔 보이던 아역배우 정도였던 조아킨 휘닉스가 To Die For에서 좀 모자라는 문제아 역할로 주목을 받은 직후에 일약 주인공으로 기용된 영화이기도 합니다. 그는 그 후부터 엄청나게 폭넓은 연기로 칼리굴라 황제(Gladiator)에서부터 가수 조니 캐시(Walk the Line)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할을 맡으며 활발하게 활약 중입니다. 그는 아무리 좋게 봐줘도 호감이 가는 첫인상이랄 수는 없는데, 그런 그가 외모를 극복하는 정도가 아니라 도리어 활용해서 성격파 배우로 자리매김 해가고 있는 광경도 2000년대 헐리우드의 관전 포인트입니다. 그는 Inventing the Abbotts에서 주인공 더그 역할을 맡았습니다.


    50년대 일리노이 어느 마을에는 두 형제가 있는 홀트씨네와 세 자매를 가진 애보트씨네가 이웃지간으로 살고 있습니다. 일찍 가장을 여읜 홀트씨네는 형편이 그다지 좋지 못한 편이고, 애보트씨네는 부잣집인데다 세 자매 모두 미인들이죠. 두 형제는 애보트가의 자매들을 마음에 두고 있는데, 수줍은 동생 더그는 감히 셋 중 누구에게도 쉽게 말을 못붙이지만 여자 꼬시는데 일가견이 있는 형 제이씨는 이들 자매를 죄다 넘봅니다. 별로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는 유부녀 앨리스(조안나 고잉), 활달하고 외향적인 엘리너(제니퍼 코넬리), 수줍은 막내 파멜라(리브 타일러) 등이 차례로 형 제이씨한테 매력을 느끼죠.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의 이병헌 같다고나 할까요. 그 영화 속의 이병헌은 파렴치범 치고는 뭐랄까요, Meet Joe Black의 브래드 피트 처럼 딴 세상에서 온 사람 같은 이상한 여유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런 여유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인지 잘 알 수 없어서, 그 영화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도 잘 모르겠더군요. 하여간, 제이씨가 애보트의 자매들을 ‘섭렵’하려고 덤벼드는 것은 이병헌처럼 여유만만한 바람둥이 노릇을 하려는 게 아니라, 애보트가에 복수를 하려는 마음에서입니다.


    무슨 얘기냐 하면, 돌아가신 자기 부친의 특허권을 애보트가의 가장인 로이드 애보트씨가 부당하게 탈취해서 그 덕에 부자가 되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자기 어머니 헬렌이 로이드와 정분이 나서 아버지로 하여금 로이드와 무모한 내기를 벌여 결국 목숨을 잃게까지 만들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이씨가 애보트네 딸들을 넘보는 것은 애정행각이기 보다는 부당하게 잃은 재산을 만회하려는 노력이자 그 자체로서 복수행각인 것이죠.


    정작 사실은 사정이 좀 달랐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목숨을 잃게 되었던 무모한 내기(얼음판 위를 자동차로 가로지르기)는 본인이 만용을 부렸던 것이고, 그의 특허권은 재산가치가 크지 않은 것이었으며, 로이드도 그가 생각한 것 같은 괴물은 아니었습니다. 내심 로이드는 정숙한 학교 선생님이자 심지가 굳은 홀트씨네 부인 헬렌을 혼자서 연모하고 있었던 데다가, 그녀 남편의 죽음에 대해서도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홀트씨가 죽은 뒤 필요 이상으로 자주 헬렌을 방문해서 위로했던 것인데, 이 사실을 알아챈 로이드의 부인이 월마트 한복판에서 동네사람들 앞에서 헬렌에게 한바탕 소란스런 강짜를 부리는 바람에 그녀는 억울하게 동네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게 되었던 거죠. 나중에 로이드씨는 더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나 같은 사람이 네 어머니 앞에서 기회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너는 어머니를 전혀 모르고 있는 게다.”


    홀트네 둘째 아들 더그와 애보트네 막내딸 파멜라는 서로 말이 통하는 친구사이였는데, 성장할수록 두 집안 사이의 묘한 불화가 그 둘이 더 가까와지는 것을 방해합니다. 특히 형 제이씨가 너무 많은 것들을 망가뜨렸던 겁니다. 제이씨와 엘리너의 애정행각 이후 로이드씨는 둘째딸을 외지의 병원으로 보내버립니다, 제이씨는 펜실베니아 대학으로 진학을 하지요. 그 한바탕 난리법석 이후에야 마을에 쓸쓸한 평화가 찾아옵니다. 애보트씨네 마당에서는 계속 파티가 열리고, 더그는 소란한 사춘기를 마감합니다. 영화 끝 무렵 어른이 된 더그의 목소리가, 결국 홀트네 아들 하나(자기)가 애보트네 딸 하나(파멜라)를 아내로 맞는, 불가능한 일이 일어났다고 후일담을 회고하면서, 형 제이씨에 대해서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이 몇 마디가 영화 전체를 요약하고 있는 셈입니다. “어머니와 로이드씨에 관한 진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것도 제이씨를 평안하게 만들어주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제이씨에게 그 진실은 자기가 계속 믿어왔던 거짓만큼이나 불공평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어머니 말씀처럼, 만일 애보트가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도, 제이씨는 자신만의 애보트가를 지어냈어야만(invent) 했을 것이다”


    아하, 그래서 제목이 ‘애보트가 지어내기’인 것입니다. 불행히도, 제이씨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언제나, 어디나 있습니다. 자기 불행이 다른 누군가의 탓이라고 믿고, 그 미움에서 삶의 추진력을 얻는 사람들 말이죠. 증오는 쉽게 연소되지만 심한 그을음을 내는 질 낮은 기름 같은 감정입니다. 게다가 그것은 손쉽게 정의감이라는, 대단히 제어하기 힘든 자기합리화의 가면을 쓰기 때문에 사람을 한없이 뻔뻔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물론, 분노할 줄 아는 능력은 중요하죠. 분노는 그것을 잘 가려 쓰는 사람에게 존엄과 고결함을 지킬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러나 삶의 낯선 골목길에서 자신의 분노와 마주치게 되면, 그 뒤에 증오라는 감정이 교묘히 숨어있지 않은지 찬찬이 살펴볼 일입니다. 미움에 힘입어 이루어지는 일들은 대체로 예외 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고, 그럼으로써 자신에게도 해롭습니다. 미움이라는 연료의 궁극적인 첨가제는 스스로의 고결함(integrity)이기 때문이죠.


    살아가다가 제이씨 같은 사람에게 미움의 대상이 되는 일을 당하면 그건 무척이나 피곤한 일입니다. 운수 사납게도 그런 일이 생긴다면, 안됐지만 뾰족한 해결책은 없습니다. 무한정 미움을 쏟아내는 상대방과 함께 비슷한 몰골로 추락하지 않도록 중심을 잡고, 자신의 고상함을 지켜내는 수양의 기회로 삼을 도리 밖에 없는 것이죠. 제이씨 같은 사람들 입장에서 보자면, 어차피 세상이란 적이 필요한 사람들과 그 적들로 이루어져 있는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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